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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지평선으로 보내버릴 수 있다면

그 혹은 그녀가 내 향기를 맡고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by 푸르름

나의 새로운 장래희망은 한 떨기의 꽃이다. 비극을 양분으로 가장 단단한 뿌리를 뻗고, 비바람에도 결코 휘어지지 않는 단단한 줄기를 하늘로 향해야지. 그리고 세상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송이가 되어 기뻐하는 이의 품에, 슬퍼하는 이의 가슴에 안겨 함께 흔들려야지.

그 혹은 그녀가 내 향기를 맡고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내 비극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다.

- 조승리,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


감사하지만 괴롭고 고요하지만 마음속은 시끄러운 무채색인 날들이 무성영화처럼 지나가고 있다. 이것도 저것도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는 그저 웅크리고 있어 보기로 한다. 할 수 있는 것들만 하며 하루하루 보내보기로 한다. 언제 어떻게 돌파구가 생길지 모른다고 기다려보기로 한다. 나의 친구는 힘든 시간은 빨리 가고 좋은 시간은 천천히 가기를 기원한다며 시계를 선물해 주었다. 이 말을 부적처럼 여기며 오늘 하루도 보낸다.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고난을 헤쳐 나가면서도 단단하고 대범한 조승리 작가를 생각한다. 그녀의 글은 그런 삶의 태도를 반영해서 더 감동적이고 또 아름답다. 종종 손 안 대고 코 풀고 싶어 하는 못된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온몸으로 세상을 껴안는 용기를 생각한다. 기쁨과도 슬픔과도 함께 온몸으로 흔들리는 그 모습을 상상한다. 내 비극 또한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결국 나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저 너머 세계의 것이 되어버릴 수 있을까.


나의 기록이 남을 위로할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이 많은 이들을 쓰게 한다. 물론 쓴다는 행위 자체가 치유의 힘이 되기도 한다. 인생의 교차로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자꾸만 느껴지는 불행은 나를 쓰는 삶으로 인도하는 것일까. 그래야 비로소 드러나고 이루어질까. 나 또한 작가처럼 새로운 장래희망을 찾으며 우선은 오늘도 포기하지 않은 나를 쓰다듬어 준다. 용기가 필요하다면 그게 내 삶이 되게 하자.


산불 참사로 희생되신 모든 분들을 깊이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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