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 정호승, <산산조각> -
분명 내 자유의지에 따른 결정이었는데도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건가 한참을 생각한다.
나는 살기 위해 결정을 했지만 그 후에도 삶은 쉽지가 않다.
물론 안다. 나는 여전히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감사할 일이다.
산산조각인 삶도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결국 억 겹의 시간 속에 모두 산산조각 나기에 이미 벌어진 일은 받아들여 보자.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는 법.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야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