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행복한 생각은 아니라서
내가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나는 결백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 그건 행복한 생각은 아니라서 디멘터가 빨아들이지는 못했지만, 그 생각이 내가 정신을 차리고 있을 수 있도록 했고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내 힘을 지키도록 도와줬지.
I think the only reason I never lost my mind is that I knew I was innocent. That wasn't a happy thought, so the dementors couldn't suck it out of me... but it kept me sane and knowing who I am helped me keep my powers.
- 조앤 K. 롤링,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
오래간만에 해리포터에서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존재인 디멘터를 생각한다. 끔찍한 유령같이 후드와 가운을 입은 형체로 나타나 주변 공기의 평화, 희망, 그리고 행복을 빨아들이는 디멘터는 인간에게서는 긍정적 감정을 빨아먹고 부정적인 것만 남긴다. 디멘터가 가진 최악의 무기는 ‘디멘터의 입맞춤’인데 이렇게 디멘터에게 영혼을 빨리고 나면 살아는 있지만 생명을 다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빈 껍데기만을 남게 된다. 이에 대항해서 쓸 수 있는 것들 중 하나가 패트로누스 마법인데 해리 포터는 이 마법(Expecto Patronum)으로 사슴을 소환해 스스로를 지켰다(선택할 수 있다면 나의 패트로누스는 희고 멋진 개, 아니면 우아한 백조가 될 것 같다). 패트로누스 마법을 쓰기 위해서 안간힘을 써서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데 보통은 이렇듯 소중히 간직한 행복한 기억을 통해 디멘터를 없애버릴 힘을 얻을 수 있다.
한편, 디멘터들이 지키는 감옥에서 시리우스 블랙이 오랫동안 디멘터에게 굴복하지 않았던 이유는 행복한 기억, 긍정적인 생각을 해서가 아니라는 것은 흥미로웠다. 사실 디멘터는 행복한 생각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억지로 행복한 생각을 하면 오히려 흡수되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시리우스 블랙을 지킨 것은 본인이 순수하고 결백한innocent 존재, 다시 말해 죄를 짓거나 (스스로 가하는 자책을 포함한)죄책감의 고통을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한 생각이 아니라 중립적인 것이었기에 디멘터의 입맞춤을 피하면서 오래 견뎌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스산한 기운을 풍기는 디멘터는 사실은 우울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사람들이 행복한 기억을 통해 갑작스러운 우울의 공격에 맞설 힘을 얻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반면 지속되는 우울 속에서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보다 때로는 중립적인 생각이 나를 지키는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늘 행복한 생각 만이 행복한 기분을 낳는 것은 아니다. 자기 연민과 과거회상에 빠지지 않고 버티기 위해서는 이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는 일종의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결백하다는, 즉 나는 죄가 없다는 생각이 때로는 스스로를 지키고 하루하루를 더 버티게 해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