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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이라는 자유

포기하고 돌아설 때 맛보는 평온함

by 푸르름

우리가 ‘포기하고 돌아설 때,’ 즉 대상적인 경험에서 평온함과 만족감을 찾아 헤매던 것을 멈출 때. 그리하여 방향이 없는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고, 마음의 근원인 알아차림의 중심으로 더 깊이 가라앉을 때. 이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평생 갈망해 온 평온함과 만족감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 루버트 스파이라,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 -


포기하고 돌아설 때, 그만둘 때, 멈출 때 비로소 평온함을 마주할 수 있다.

참 오랫동안 내려놓지 못했던 나의 욕심을 이제 내려놓고 조금 더 편안해지려 한다.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조금은 더 기대하며 덜 불안해하며 맞이하려 한다.


그동안 나는 내 욕구가 아닌 남의 기대, 남의 시선에 맞추는 삶을 사느라 힘들었다고 생각했다. 언뜻 보면 그랬다. 나는 ‘착한 아이’라는 기대에 갇혀서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못하고 사는 희생양과 같았다. 하지만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고. 나는 생각보다 고분고분하지 않았고 어쩌면 나는 이미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봤을 수 있다고. 그것이 내 삶의 욕심 때문이었든 불안 때문이었든 나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결국 하지 못했고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은 어떻게든 했다. 대학 때 연극 동아리 활동이 그랬으며 대학원 때 유럽 여행이 그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이제는 오히려 내 욕구를 좀 내려놓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 하는 때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짧게나마 이제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 행복의 순간들이 분명 나를 평화롭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고통은 그때 행복의 일부일 수 있다. 물론 여전히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아닌 척 해도 그러면 나는 결국 탈이 나곤 했다). 다만 내가 무용지물처럼 존재하는 그 시간이 있어도 괜찮음을 난 이미 나름의 치열함을 경험했고 더 이상 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됨을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다.


급체로 간만에 극한의 고통에 시달릴 때, 불안할지 언정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그리웠다. 마음이 가라앉을지 언정 제대로 가눌 수 있던 사지가 간절했다. 시간이 다르게 잊히지만 제발 끊임없이 상기하자. 난 이미 충분하고 내려놓은 만큼 더욱 온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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