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간직하긴 아까운) 레체와 함께 하는 시간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것에는 오디오 매거진에 보낸 사연이 당첨되어 방송을 타게 된 경험이 컸다. 다음은 김혜리의 <조용한 생활>의 ‘슬퍼지려 하기 전에’ 반려견 특집에 보냈던 원고 전문.
우리 집 가족이 된 ‘레체’는 2020년 2월 코로나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항상 강아지를 너무나 키우고 싶어 했던 동생이 드디어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입양 공고에 올라온 (당시 ‘우유’라는) 하얀 강아지를 데려온 것이었죠. 저는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늘 본인이 cat person이라고 주장하며 강아지의 그 에너지와 무조건적인 애정공세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말하고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강아지를 데려온다고 했을 때 저는 내 방의 문지방을 넘지 않게 해달라고 사뭇 진지하게 부탁했던 게 생각이 나네요. (물론 지금은 레체의 온기가 없으면 선잠을 잘만큼 침대에서 꼭 붙어 자고 있지만요).
우리 레체는 자랑스러운 시고르자브종이고 어떤 아빠와 엄마로부터 나왔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아마 스피츠와 진도의 피가 흐르지 않을까 유추하고 있어요. 눈처럼 하얗고 토끼처럼 쫑긋 선 큰 귀가 아주 매력적인 아이입니다.
제일 먼저 자랑할 것은 우리 레체의 우월한 미모인데요. 길을 걷다 보면 ‘고놈 참 잘 생겼다’는 피드백을 심심치 않게 듣곤 합니다. 저희 가족 중에는 이렇게 비주얼로 승부할 만한 사람은 없어서 처음에 레체와 함께 다니기 시작할 때 ‘연예인이 이런 기분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몸매도 날씬하고 기럭지도 늘씬해서 가끔은 정말 우리 가족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레체 자랑하는 재미에 여러 사진 콘테스트에 응모하는 재미를 붙이기도 했고 한 번은 ‘보듬’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에 당첨되어 켄넬을 타기도 했어요. 물론 외모가 다는 아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강아지가 우리 가족이 되어 아직도 조금은 얼떨떨한 마음으로 감사히 사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자랑은 레체의 착한 마음씨입니다. 보통 어릴 때는 많이 짖고 엄살도 많이 피우기도 하는데 레체는 어렸을 때부터 수의사 선생님이 꽤 아픈 주사라고 놔주시는 것도 신음소리 하나 없이 맞고 오는 조용한 강아지였어요. 산책하다 다른 강아지를 만나도 짖는 경우는 거의 없고 조용히 인사하다가 상대 강아지가 갑자기 짖거나 으르렁대도 조용히 물러서서 가던 길을 갑니다. 물론 쫄보라고 표현할 수 도 있지만 저희는 그냥 배려심이 많은 착한 강아지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어렸을 때 구조되었던 경험 때문에 아직도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것일 수도 있고 저는 사실 저처럼 조심성 있는 MBTI가 I로 시작할 것 같은 이런 성격이 마음에 드는데요. 가끔은 우리 집에 오기 전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엄마 아빠가 보고 싶진 않을까 안쓰러운 마음도 들긴 합니다. 암튼 이런 착한 레체의 성품에 더욱 마음이 쓰이고 끌리는 건 비단 제가 레체의 누나여서만은 아닐 거예요.
사실 자랑하고 싶은 것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소개하자면 저는 레체의 현재를 즐길 줄 아는 삶의 태도를 꼽고 싶어요. 처음으로 강아지와 함께 생활하면서 저는 사실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부분에서 큰 위로를 받았는데요. 매일 걷는 똑같은 산책길도 매일 새롭게 집중해서 냄새를 맡으며 좋아서 활짝 웃는 레체의 모습을 보며 저도 이런 삶의 태도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던 상대가 자기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면 바로 쿨하게 포기하고 갈길을 가는 모습에 저는 경탄하며 마음속으로 ‘쿨하지 못해 미안해’를 외쳐야 했어요. 레체가 아니라 제가 ‘분리불안’이 있어서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면 마음이 초조해지는 증상을 아직도 겪고 있는데요. 그러다 집에 가면 매번 정말 너무나 반갑게 뛰쳐나와서 핥아주는 레체에게 무한한 감사함을 느낍니다. 사실 이는 애견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하셨을 텐데요. 저는 ‘동물이 사람보다 낫다’라는 말이 웃어넘겨서는 안 될 진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물이 주는 힐링과 치유의 힘은 정말 위대한 것이고 이를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제 인생을 더 낫게 바꿔놓았습니다.
가끔 레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도 타고난 비관적인 성향 탓에 나중에 이 부재를 견딜 수 있을까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주변에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자기보다 먼저 떠난다는 사실 때문에 키우기 겁난다고 고백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에 벌써부터 침울해지고는 했는데요. 그러다 얼마 전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누구 하나가 먼저 떠나야 한다는 건 가슴이 아프지만 굳이 둘 중 누가 먼저 떠날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차라리 제가 좀 더 남아서 뒤를 봐주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이 충성스럽고 착한 아이를 놔두고 먼저 떠나는 마음 또한 찢어질 것 같거든요. 항상 제가 상처받기 싫어서 좀 덜 아픈 쪽으로 선택을 하고자 했던 저의 작은 사랑이 언제나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는 레체의 커다란 사랑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