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으로 말해요
함께 살기 전에는 나 역시 말이 안 통하는 반려견과의 소통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레체 덕분에 1) 조화로운 동거 생활에 언어적 소통이 필수 불가결한 것은 아니다는 점과 2) 강아지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자기만의 대화를 시도한다는 점을 배웠다. 이런 비언어적 소통 방식의 힘을 배우며 100% 서로를 이해하지 않아도 이렇게 서로를 좋아하게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 알아듣지 못해도 배려하는 것이 느껴지는 몸짓과 가끔은 어떻게든 알아들어 보려고 귀 쫑긋 고개 갸우뚱하는 모습을 보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 갸륵한 시도 중의 으뜸은 풍부한 표정인데 사진첩을 보면 정말 같은 개 맞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표정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한껏 집중한 (노즈워크) 표정
반항기 어린 (지금 그게 말이 돼?) 표정
간절한 (바라는 게 있는) 표정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봐) 표정
자아도취 (나 좀 멋진 것 같아) 표정
치명적인 (섹시도발유혹) 표정
손석구 님 표정
이렇게 다양한 표정의 레체 덕분에 거의 무표정으로 지내는 날들이 많았던 나 또한 덩달아 표정이 살아나게 되었다(가끔 레체랑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 이런 내 모습에 깜짝깜짝 놀란다). 여러모로 행복한 기운을 전파하는 착한 아이다. 이렇게 함께 지내는데 언어 따위(?)는 필요 없지만 전 세계 무수한 반려인들의 소원은 아플 때는 말 좀 해줬으면 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아픈 것을 숨기려고 하는 것이 본성인 이 배려심 깊은 아이들이 말을 하게 된 들 솔직히 말해줄까 싶기도 하다. 너의 몸짓과 손짓 표정을 더 잘 살피고 아픈 기색이 없는지 내가 더 잘 살필게. 계속해서 이렇게 너와 나의 공감의 영역을 넓혀 나가다 보면 나도 언젠가 너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지 않을까? 그때까지 지금처럼 관대하고 여유롭게 사랑스러운 표정들을 지으며 기다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