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하지 않은 것들을 내려놓는 지혜
아침에 목걸이를 하고 나가려다 줄이 꼬인 것을 발견했다. 곧 풀리겠지 하며 고개 숙이고 풀기 시작했는데 풀면 풀 수록 어째 줄이 계속 더 꼬이는 것만 같다. 몇 십분 넘게 씨름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검색해 보니 오일 등으로 사이를 매끄럽게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된단다. 오일을 떨어뜨리고 아예 주저앉아 마구 비벼보니 좀 풀리는 것도 같아 멈출 수가 없었다. 풀릴 듯 풀릴 듯 안 풀리는 매듭을 가지고 씨름하다 시계를 보니 세상에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급한 것도 아닌데 쓸데없이 집착해 나가려던 시간에 못 나간 내가 너무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중독자처럼 미련을 못 버리다 결국 나가서 계속하자고 나를 다독인 후 목걸이를 휴지에 싸서 주머니에 넣고 서야 나올 수 있었다(정작 나와서는 열어보지도 않았다).
살다 보면 그렇게 작정하고 풀 땐 안 풀리다가 한참 후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시도하면 훅 풀리는 경우를 맞닥뜨린다. 레체는 이러한 삶의 지혜를 진작부터 알고 있는 듯하다. 재미나게 놀던 장난감도 맛있게 씹던 커피츄도 ‘이제 그만’이라는 사인을 주면 미련 없이(가끔 한 두 방울의 미련을 흘릴 때도 있지만) 이내 돌아선다. 산책하다 알아보고 싶은 친구가 생겨 인사를 하다가도 상대방 반응이 영 시원치 않거나 적대적이면 바로 고개를 돌린다.
물론 시도조차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시도해보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지 나에게 맞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또한 언젠가는 될 것 같은 희망고문 때문에 끈기 있고 집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집착의 굴레에 빠지기 쉽다. 누가 나의 한계를 규정지을 것인가? 해도 안될 거라는 것을 누가 아는가? 이런 논쟁에 스스로 빠지기 시작하면 포기하는 내가 나약해 보이고 무조건 끝까지GO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수 있다. 레체 또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여럿이 산책을 하다 한 명이 안 보이면 레체는 그 일행을 찾을 때까지 두리번두리번거리며 한참을 헤맨다. 그런 레체가 귀여워 가끔은 (못되게도) 일부러 숨기도 하는데 그러면 당황함과 더불어 잃어버린 우리 동료를 찾겠다는 결연함이 역력하다. 그러다 짠 하고 나타나면 꼬리를 마구 흔들며 환하게 웃는 그 행복한 표정은 찐으로 사랑스럽다. 너의 기준은 ‘소중함’이구나. 나에게 소중한 것이 아니면, 또한 해내겠다는 집착이 나의 소중한 것들을 갉아먹는다면 힘들어도 집착을 멈추고 내려놓아야 할 때가 아닐까.
그래서 그 목걸이 매듭은 결국 풀렸을까? 며칠 뒤 여유롭게 앉아서 푸니 몇 분 만에 풀렸다. 물론 그전에 한 시간 동안 한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일 수 도, 그동안 노하우를 알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마음이 급할 때 밀어붙이기 보단 조금 시간을 두고 여유로울 때 다시 돌아와서 본 것이 컸다. 무엇보다 한 시간 넘게 땀을 뻘뻘 흘리며 받은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생각하면 집착은 하지 않는 것이 옳았다. 최근 가수 윤종신도 포기의 미학을 설파한 바 있다. 포기하고 대신 그 에너지를 다른 데 쏟을 줄 아는 지혜. 집착과 집념을 구분하고 미련을 남기지 않는 자세. 때로는 포기가 더 어렵지만 포기가 현명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