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남매
내 동거인과 나는 지극히 현실남매라 늘 퉁탕거리며 살아가지만 레체가 오면서 이 단순한 관계에도 새로운 스펙트럼이 생겼다. 막내 남동생으로서 레체는 나에겐 한없이 귀여운 (어마어마한 나이차의) 아기동생이었고 내 남동생에겐 꿈에 그리던 똘망똘망한 남동생이었다. 형아 형아 말은 못 하지만 레체는 동그랗고 맑은 눈과 살랑살랑 꼬리로 누나와 형을 따르며 막내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레체는 하루가 멀다 하고 티격태격하던 우리 남매를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훨씬 화기애애하게 바꿔 놓았다. 살벌해지는 분위기가 레체에게도 스트레스와 불안을 주는 것을 알고 우리가 더 조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물론 이는 카톡설전으로 이어졌지만…). 예전에는 소리를 지르거나 문을 쾅 닫고 들어갈 일도 레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open door policy가 적용된 이후에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한편 레체 때문에 더 부딪힐 일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강아지가 없을 때는 둘 다 외출이 잦아 사실 마주칠 일이 많이 없었는데 레체가 온 이후엔 주말에도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또한 레체의 존재 자체가 때 아닌 ‘사랑싸움’을 불러일으키도 했다. 레체를 가운데 두고 서로 관심을 독차지하기 위해 애쓰던 ‘선의의 경쟁’이 그 발단이었다. 동생이 제1보호자이자 견주임에도 내가 이것저것 참견하고 자꾸 쓸데없는 장난감을 사 오는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레체의 등장은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궁극적으로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믿는 이유는 레체가 예전에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가능케 해 주었기 때문이다. 가족 모두 오순도순 둘러앉아하는 삼시세끼, 레체의 재롱에 덕에 웃음이 넘치는 단톡방, 더욱 단단해지고 여유로워진 나의 정신 상태 등등… 레체 덕분에 얻은 수만 장의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추억이 앞으로 10년 뒤의 우리에겐 또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