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초.
늦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서울 외곽의 폐쇄된 정신병원 '한울 정신재활원'을 뼈아프게 휘감았다. 한때 환자들의 비명과 몽유병 환자들의 발소리로 가득했던 이곳은, 이제 끔찍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공간이 되었다. 이곳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은 도시 전체를 경악시켰고,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수군거렸다.
사건 현장은 기괴함 그 자체였다. 폐쇄된 지 3년이 넘은 병원이었지만, 관리인 세 명이 숙직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것이다.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었고, 모든 출입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 마치 유령에게라도 습격당한 듯한 밀실 살인 사건이었다. 세 명의 피해자는 모두 병실에서 사망했으며, 그들의 얼굴에는 극심한 공포와 고통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눈은 크게 뜨여 있었고, 입은 마치 비명을 지르다 굳어버린 듯 일그러져 있었다. 육체적인 외상은 거의 없었지만, 부검 결과 사인은 모두 심장마비로 밝혀졌다. 그야말로 미스터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 이들의 표정은 마치 살아있는 악몽 속에서 질식한 듯 보였다.
"강 경감님, 현장 검증 결과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도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완벽한 밀실 살인입니다. 게다가 피해자들의 몸에 외상은 거의 없는데, 얼굴의 표정은… 마치 정신적으로 고문당한 것 같습니다."
현장 담당 형사의 보고에 강재혁 경감의 미간은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 그는 이번 사건이 범죄 수사의 상식을 벗어나는 일임을 직감했다. 그 어떤 물리적인 범죄보다도 섬뜩한 기운이 현장을 감돌고 있었다.
CCTV 영상은 더욱 수사를 미궁에 빠뜨렸다. 병원 내부를 비추는 낡고 노이즈 낀 CCTV에는 의문의 그림자만이 희미하게 잡혔을 뿐, 범인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는 마치 유령처럼 벽을 통과하는 듯했고, 순간적으로 형체가 일그러지는 듯한 잔상만을 남겼다. 화질이 너무 좋지 않아 식별이 불가능했지만, 그 희미한 그림자는 알 수 없는 공포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경찰은 범인이 초인적인 능력을 가졌거나, 혹은 다중 인격자가 교묘하게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유령 살인사건', '저주받은 정신병원'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사건을 보도하며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시민들은 한울 정신재활원을 '죽음의 병원'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강재혁은 밤새도록 CCTV 영상을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아무리 봐도 물리적인 침입자가 없다는 사실은 그의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는 자신의 수사 경력 통틀어 이런 류의 사건은 처음이었다. '이건… 인간의 소행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김도윤 검사의 능력이 이번에도…?' 그의 머릿속에 김도윤이 떠올랐다.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졌고, 결국 서울 중앙지방검찰청은 '블랙 스크린' 사건을 성공적으로 해결한 김도윤 검사를 이 사건의 담당 검사로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검찰 상부에서는 김도윤의 비상한 '직감'과 비상식적인 사건 해결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김도윤은 한울 정신재활원 사건 브리핑을 받으며 깊은 불안감을 느꼈다. 외부 침입 흔적 없는 밀실 살인, 극심한 공포 속에서 사망한 피해자들, 그리고 CCTV에 찍힌 의문의 그림자. 이 모든 것이 그의 '잔류 사념' 능력을 자극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불러일으켰다.
"김 검사님, 이번 사건은 정말 기묘합니다. 피해자들의 얼굴에 나타난 공포는 단순한 살해 위협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마치… 정신이 파괴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어떤 종류의 범행인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수사 보고를 마친 강재혁 경감이 김도윤에게 직접 설명했다. 강재혁은 김도윤의 '비범함'을 알고 있었기에, 내심 그에게 이 사건의 실마리를 기대하고 있었다. 동시에 김도윤의 능력에 대한 의심과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김도윤의 눈빛을 주시했다.
김도윤은 현장 검증을 위해 한울 정신재활원으로 향했다. 낡고 스산한 병원은 음산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병원 복도에는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약품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삐걱거리는 마루 소리는 마치 유령의 발소리처럼 느껴졌다. 피해자들이 사망한 병실에 들어선 김도윤은 싸늘한 공기와 함께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다. 벽에는 낡은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침대 시트는 구겨진 채 그대로였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했지만, 그 속에는 폭풍 전야의 고요함이 숨어 있는 듯했다.
김도윤은 피해자들이 사망한 병실의 물건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낡은 테이블과 침대 시트,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부서진 안경에 닿자, 강력한 잔류 사념이 폭주하듯 밀려왔다. 과거 그가 감지했던 아이들의 순수한 공포나 억울한 죽음의 잔상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번 잔류 사념은 훨씬 더 복잡하고, 깊고, 어둡고, 뒤틀려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악의 촉수처럼 그의 정신을 파고들려 했다.
그것은 성인들의 극심한 정신적 고통, 절망, 그리고 강렬한 자살 충동의 잔류 사념이었다.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이 붕괴되는 듯한 고통이었다. 그들의 뇌리에는 알 수 없는 환각과 왜곡된 현실이 강제로 주입된 듯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장 깊은 공포와 맞서 싸우다 결국 심장이 멎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김도윤은 기이하고 섬뜩한 '최면'의 흔적을 감지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극한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어 자멸하게 만든 듯한 강력하고도 교묘한 사념이었다. 피해자들의 눈에 비쳤던 공포는 바로 그 '최면'에 대한 필사적인 저항과 결국 맞이한 정신적 붕괴의 결과였다.
'이건… 단순한 살인이 아니야. 누군가 정신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괴물이다.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정신을 파괴하는 악의 존재. 이 힘은… 마치 내 능력과 유사해… 아니, 반대야. 나는 사념을 읽지만, 이 악마는 사념을 주입해.'
김도윤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는 지금까지 물리적 공간에 남아있는 잔류 사념만을 감지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감정의 잔상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능력'에 의해 변형된 정신 상태의 잔류 사념까지 읽어낸 것이다. 마치 피해자들의 뇌 속을 들여다본 듯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이것은 그가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범죄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형태의 악이자, 자신의 능력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었다.
이번 잔류 사념은 과거와 달리 김도윤의 정신을 직접적으로 침범하려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강력한 '최면'의 흔적은 마치 살아있는 에너지처럼 김도윤의 정신을 파고들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사념 속의 최면에 동조하려는 듯한 충동을 느꼈다. 눈앞에서 현실이 일그러지고, 병실의 풍경이 기괴하게 변형되기 시작했다. 낡은 침대 시트가 마치 피에 젖은 해골처럼 보였고, 벽의 그림들은 그를 비웃는 듯한 악마의 얼굴로 변했다. 환청이 그의 귓가를 때렸다.
'죽어라… 죽어라… 고통 속에서… 네 모든 것을 버려라… 어둠 속으로… 영원히 잠들어라….'
알 수 없는 속삭임이 김도윤의 뇌리를 강타했다. 그것은 피해자들이 들었던 최면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깊은 절망과 강렬한 자살 충동을 주입하려 했다. 김도윤은 순간적인 환각과 극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휘청거렸다. 그의 정신은 마치 폭풍우 속의 작은 배처럼 흔들렸다. 코에서는 선명한 핏줄기가 흘러내려 그의 얼굴을 적셨고, 그의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의 무릎이 꺾이는 듯했다.
"김 검사님! 괜찮으십니까?! 김 검사님!"
현장에 있던 강재혁 경감이 김도윤의 이상 반응을 보고 깜짝 놀라 달려왔다. 김도윤은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고,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의 눈빛은 초점을 잃은 듯 흔들리고 있었다. 강재혁은 김도윤이 이 사건 현장에서 뭔가 '특별한 것'을 감지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의 '직감'이 다시 발동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대가가 너무나도 커 보였다. 김도윤의 몸이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다.
김도윤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처음으로 '역공'을 당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그가 일방적으로 잔류 사념을 읽어왔지만, 이번에는 사념 속의 에너지가 그의 정신을 공격하고 지배하려 들었다. 이것은 '잔류 사념' 능력의 새로운 한계이자, 그가 직면할 가장 큰 위협임을 암시했다. 그 악마는 단순히 육체를 파괴하는 것을 넘어, 정신 자체를 파괴하려 들었다. 그의 능력으로는 이 악마의 공격을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재혁은 김도윤을 부축하여 병실 밖으로 나왔다. 김도윤은 숨을 헐떡이며 복도 벽에 기대어 섰다. 그의 이성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결의가 타올랐다. 그는 이 악마를 반드시 잡아야 했다. 물리적인 증거를 남기지 않고, 정신을 파괴하는 새로운 형태의 악. 이전에 상대했던 그 어떤 범죄자보다도 위험하고 교활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는 이 악마가 자신의 능력과 어떠한 방식으로든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섬뜩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김도윤은 유하준과의 **'비밀스러운 유대'**를 떠올렸다. 유하준이라면 이 '정신 최면' 능력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 악마의 디지털 흔적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의 능력이 더 이상 만능이 아님을 깨달았다. 새로운 형태의 악에 맞서기 위해서는 유하준의 천재적인 분석력과 정보력이 절실했다. '비질란테'로서의 싸움은 더욱 복잡하고 위험해질 것이었다. 그의 능력의 대가는 더욱 커질 것이고, 강재혁의 의심은 더욱 깊어질 터였다. 정신병원의 비명은 이제 김도윤 자신의 내면의 비명이 되어 그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그는 앞으로의 싸움이 그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