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 수사관 22화

by BlackBearLeo


2025년 10월 초.


서울 외곽의 폐쇄된 정신병원 '한울 정신재활원'. 김도윤은 간신히 병실을 빠져나와 복도 벽에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고, 코피는 멈출 줄 몰랐다. 붉은 핏줄기가 그의 셔츠를 적셨고, 낡은 병원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강재혁 경감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부축했다.

"김 검사님, 괜찮으십니까? 설마… 이 병원에서 당신마저… 뭔가에 홀린 것 같았습니다."

강재혁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함께 김도윤의 능력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그는 김도윤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단순히 피곤해서 쓰러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김도윤은 고개를 저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그의 폐는 여전히 타는 듯 아팠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다만… 감지된 사념이 너무 강력해서… 잠시 휘청거렸을 뿐입니다. 곧 회복될 겁니다."

그는 강재혁에게 자신의 능력이 '역공'을 당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 이 새로운 형태의 악이 자신의 존재마저 위협한다는 것을 강재혁이 알게 되면, 불필요한 혼란만 가중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자신의 초능력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할 일이었다.

김도윤은 곧바로 사무실로 돌아와 유하준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절박함과 함께 미세한 떨림이 묻어 있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상태를 전화 목소리만으로도 짐작했는지, 평소의 시니컬한 태도 대신 진지하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당신 목소리가 좋지 않군요. 이번 사건…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까? 당신의 능력이 이번에도 발동했습니까?"

김도윤은 한울 정신재활원에서 감지했던 모든 사념을 유하준에게 설명했다. 외부 침입 흔적 없는 밀실 살인, 피해자들의 극심한 공포, 그리고 결정적으로 '최면'의 흔적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느낀 육체적, 정신적 고통까지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 앞에서 그는 자신의 약함을 드러낼 수 있었다.

"유하준 씨, 이번 사건은 단순히 물리적인 범죄가 아닙니다. 범인은 '최면'을 이용했습니다. 피해자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극한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어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만든 겁니다. 그들의 잔류 사념 속에서 '죽어라', '영원히 잠들어라'라는 섬뜩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념이 저의 정신을 직접적으로 침범하려 했습니다. 마치 저를 파괴하려는 듯이 말입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설명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그의 천재적인 두뇌는 김도윤의 비현실적인 능력과 연결하여 이 새로운 형태의 악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은 어느새 키보드 위를 빠르게 오가고 있었다.

"최면이라… 물리적인 접촉 없이 정신을 지배하는 능력. 그리고 당신의 능력을 역공하는 사념… 흥미롭군요. 아니, 위험하군요. 이건 당신의 능력과 대척점에 있는 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잔류 사념을 읽는다면, 그 녀석은 사념을 주입하는 능력일 수도 있겠군요."

유하준은 이전에 수집했던 '블랙 스크린' 범인들의 데이터베이스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 그들과 연관된 조직이 있을까 해서였다. 그는 인터넷의 숨겨진 모든 정보를 훑어보고 있었다.

김도윤은 감지된 사념 속에서 '최면'이라는 키워드를 확신했다. 그는 피해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통해 범인이 최면을 이용해 살해했음을 어렴풋이 파악했지만, 범인의 얼굴이나 명확한 정황은 여전히 불분명했다. 잔류 사념은 흩어져 있었고,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교란하려는 듯한 흐릿함이 존재했다. 그는 몇 번이고 다시 잔류 사념을 감지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고통만 심해질 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는 듯했다.

'이건… 범인이 의도적으로 남긴 혼란스러운 사념인가? 나를 교란하기 위한… 함정인가? 아니면… 나를 유인하려는 수단인가? 나의 능력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인가?'

김도윤은 섬뜩함을 느꼈다. 자신이 잔류 사념을 읽는 것을 아는 범인. 그리고 그 능력을 역이용해 자신을 공격하고 교란하려는 범인. 그 악마는 자신의 존재를 이미 눈치채고 있는 듯했다. 김도윤은 자신이 추적하는 사냥꾼이 아닌, 오히려 사냥감을 자처하고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이 싸움은 단순히 범인을 잡는 것을 넘어, 그의 정신력을 시험하는 전쟁이 될 것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를 느꼈다.

능력을 사용할수록 김도윤은 최면에 걸린 듯한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잠 못 이루는 밤은 물론, 낮에도 순간순간 집중력을 잃는 일이 잦아졌다. 그의 일상은 지옥으로 변했다. 그의 삶은 점점 더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그의 눈앞에는 불현듯 한울 정신재활원의 낡은 병실이 섬뜩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귀에서는 피해자들의 공포에 질린 비명 소리와 함께 알 수 없는 속삭임이 끈질기게 들려왔다.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넌 결국 실패할 거야… 너도 결국 고통 속에서 절망할 거야… 모든 것을 포기해….'

그것은 범인이 주입한 최면의 잔류 사념이 그의 정신에 스며들어 그를 잠식하려는 시도였다. 그 목소리는 김도윤의 가장 깊은 불안과 절망을 파고들었다.

김도윤은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머리가 찢어질 듯 아파왔고, 시야는 흐릿해졌다. 그는 평범한 일상생활조차 유지하기 어려웠다. 검찰청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중에도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며 정신병원의 환각이 나타났고, 동료 검사와 대화하는 중에도 귀에서는 환청이 들려왔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썼지만, 그의 창백한 얼굴과 떨리는 손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동료들은 그에게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김 검사님,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번 사건은 잠시 다른 검사에게 맡기고 휴식을 취하는 게 어떻습니까? 당신 상태가 이대로는 위험해 보입니다."

선배 검사의 걱정스러운 말에 김도윤은 애써 웃어 보였다. 그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아닙니다, 선배님. 괜찮습니다. 잠시 피곤해서 그렇습니다. 이번 사건은 제가 직접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불미스러운 사건이니만큼 제가 책임을 지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무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이 악마를 잡지 못하면,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고통은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밤이 되면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그는 잠자리에 들면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는 한울 정신재활원의 환자가 되어 있었다. 범인의 최면에 걸려 자신의 가장 깊은 공포와 직면했고,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악몽 속에서 그는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아침에 깨어나면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심장은 격렬하게 뛰었다. 그의 잠은 더 이상 휴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또 다른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는 잠시도 평온함을 느낄 수 없었다.

김도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얼굴은 뼈만 남은 듯 야위어 있었다. 눈 밑에는 검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의 대가가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절감했다. '잔류 사념'이 그에게 축복을 넘어 저주가 되고 있었다. 그의 몸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고, 그의 정신은 악마의 최면에 의해 서서히 잠식당하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언제 무너져 내릴지 알 수 없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상태를 온라인으로 확인하며 극도로 걱정했다. 김도윤이 보내는 메시지의 오타가 잦아졌고, 응답 시간도 느려졌다. 심지어 불규칙적으로 정신을 잃는 듯한 반응도 감지되었다. 그는 김도윤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유하준은 김도윤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의 장난기 없이, 오로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검사님, 괜찮으십니까? 당신의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 최면 사념이 당신을 갉아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무리하다가는 당신마저 피해자가 될 겁니다. 당신이 쓰러지면 누가 이 사건을 해결합니까?"

유하준의 얼굴에는 드물게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눈빛은 김도윤의 건강을 진심으로 염려하고 있었다. 그는 김도윤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도윤은 영상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의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나는 괜찮습니다, 유하준 씨. 이 악마를 잡아야 합니다. 더 많은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 악마는 저의 능력을 아는 것 같습니다. 저를 교란하려 합니다. 마치 저의 가장 깊은 곳을 파고들 듯이 말입니다."

김도윤은 자신이 느낀 범인의 의도적인 교란 시도에 대해 유하준에게 털어놓았다. 그 악마가 자신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말을 듣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손가락은 더욱 빠르게 키보드 위를 오갔다.

"당신의 능력을 아는 범인이라… 그렇다면 이 녀석은 평범한 범죄자가 아닙니다. 사이코패스일 가능성도 있지만, 당신의 능력과 관련된 초능력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잔류 사념' 능력과 반대되는 '정신 지배' 능력을 가진 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녀석의 공격에 매우 취약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정신 에너지가 고갈되면… 위험합니다."

유하준의 분석은 김도윤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느꼈던 섬뜩한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자신의 능력이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꼈다.

유하준은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를 찾아 나섰다. 그는 지금까지 수집했던 모든 범죄 데이터베이스와, 초능력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미제 사건들을 다시 한번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울 정신재활원의 과거 기록을 샅샅이 뒤졌다. 그는 오래된 신문 기사, 폐기된 병원 문서, 심지어 내부 직원들의 익명 제보까지 파고들었다.

"김 검사님, 한울 정신재활원에는 과거 '정신 조작' 또는 '심리 실험'과 관련된 비밀스러운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공식적인 기록은 없지만,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쉬쉬하던 이야기였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비인도적인 실험이 이루어졌다는 흉흉한 소문도 있었습니다. 혹시 이 사건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곳에 어떤 '존재'가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 '존재'는 실험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요."

유하준의 말에 김도윤의 눈빛이 흔들렸다. '비밀스러운 연구'라니. 그것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선 거대한 음모의 냄새를 풍겼다. 이 사건의 뿌리가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어둡다는 것을 직감했다.

유하준은 계속해서 김도윤에게 경고했다.

"당신은 지금껏 악을 추적하는 사냥꾼이었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이 악마는 당신을 유인하고, 당신의 능력을 역이용하여 당신을 파괴하려 들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감입니다. 조심하십시오, 검사님. 당신이 무너지면, 우리가 잡으려 했던 모든 악이 다시 고개를 들 겁니다. 우리는 반드시 협력해야 합니다. 이 녀석의 약점을 찾아야 합니다."

유하준의 경고는 김도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한계와 직면했고, 이번 싸움이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위험한 게임임을 깨달았다.

정신병원의 비명은 이제 김도윤 자신의 정신을 잠식하는 공포가 되어 그를 짓눌렀다. 그는 유하준이라는 조력자가 있었지만, 결국 이 싸움의 최전선에 서야 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새로운 악의 형태는 그의 모든 것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의 '잔류 사념' 능력의 대가는 끝없이 심화될 것이고, 강재혁 경감의 추격은 더욱 집요해질 터였다. 김도윤은 지쳐가는 몸을 이끌고, 새로운 악마와의 대결을 준비해야 했다. 그의 앞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고통스러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지만, 그만큼 더 큰 위험에 노출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싸움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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