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본능으로써 망각하려는 의지

영화 <메멘토(2000)> 리뷰

by 더 레터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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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없는 복수

뒤집혀버린 인과관계 앞에서

세상에는 수많은 앙갚음이 존재해왔다. 함무라비 법전에서의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부터, 고조선의 8조법까지. 인간들의 사회는 여러 앙갚음들을 체계화하고 문서화하여 피해받는 자가 스스로 복수를 이루지 않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속한 사회라는 무형의 존재에게 신탁을 받는 행태로 발전했다. 하지만, 인구가 늘어나고 세계가 고도화됨에 따라, 갈등은 더욱 빈번해지고, 그로 인한 사적인 복수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인사불성으로 벌어진 복수는 ‘보복’으로써 벗어나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피해자의 심리를 가학적으로 압박하여, 그들을 가해자로써 변모하게 만든다. 물론 피해자로써의 피해의식마저 가진 채로 말이다.
‘복수심’이라는 단어는 허황되기 짝이 없는 단어다. 마치 땔감과도 같이, 회광반조하듯 피어오른 복수심은 스스로를 불살라버려 그 사람의 모든 마음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는 손 위에 차갑게 굳어버린 핏자국만 남긴 채 이 모든 일들을 허사로써 치부하게끔 중용한다. 즉, 복수심은 인과관계를 뒤집고, 이 모든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심지어는 자신이 태어난 곳이었던 ‘기억’마저 뒤틀리게 만들어 스스로를 세뇌하기까지 이른다.
<메멘토>는 기억 없는 복수. 그러니까, 마음이 다 타버린 사람이 습관과 기억 그리고 본능으로써 목적 없이 움직이는 방랑자가 되기 위한 여정이다. 놀란 감독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컬러 필름으로써 가이 피어스의 푸른 동공에서 슬픔만이 보이게끔 만든다. 그러나 사실은 오프닝 씬의 그가 들고 있는 바래진 빛의 사진처럼, 대과거이자 원죄로부터 출발한 흑백 필름 속 추악한 과거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흔들리는 눈동자만이 카메라의 상에 맺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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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레너드(가이 피어스 역)는 아내를 강간하고 살해한 남자를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아내의 살인범을 찾는 것이 쉽게 풀리지 않고, 거기다 희괴하고 치료까지 불가한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어서 상황은 더욱더 악화 되어 간다. 그는 사고 전 삶에 대한 기억만 갖고 있을 뿐, 15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또 그가 어디로 가고 있고 왜 가고 있는지 이유를 기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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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하는 플롯

되감기는 필름을 따라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마치 자동차 사고가 나기 5초 정도 전의 시간을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비추는 느낌이 든다. 대과거에서부터 출발한 흑백의 순행적 플롯, 현재로부터 되감기된 컬러의 역순행적 플롯. 이 두 개의 서사 구조가 충돌하면서- 정확히는, 퍼즐이 맞춰지는 모양새이나 컬러와 흑백의 교차를 겪고 나면, 대과거이자 원죄로써의 진실이었던 ‘절정’ 부분의 진실로부터 얼마나 멀리 도망가려 애썼는지를 기록한 컬러의 역순행적 서사를 곱씹게 된다- 발생하는 ‘충돌 후의 피해’. 즉 그가 직접 죽여버린 모든 이들과 그로 인해 간접적으로 피해받은 자들을 더욱 곱씹게 만든다.
컬러 필름으로 촬영한 장면의 레너드는 우측에, 흑백 필름으로 촬영한 레너드는 좌측에 존재한다. 이는 충돌하는 시간선을 대조하는 특징에 시각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또한, 테디(조 판토리아노 역)나 나탈리(캐리엔 모스 역)도 레너드의 단기 기억 상실증이 반복되며 그들이 진정으로 어떤 존재이며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를 관객들이 알아차릴 때, 그들은 레너드의 원경에서 기존에 서 있던 자리의 반대편으로 이동한 채로 극을 진행한다.
펜과 문신이라는 오브제는 <메멘토>의 플롯을 관통하고, 결말의 반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써 등장하는 ‘기억’을 관장하는 유일무이한 메타포이다. 이 오브제들은 종이와 몸에 글씨와 문신으로 기록을 남긴다. 그 기록은 ‘잉크’로부터 새겨지며, 잉크는 작중 등장했던 대사와 같이, ‘기록을 기억으로 해석’한다. 즉, 객관적인 진실이라는 기록마저도 기억으로부터 태어나게 되며, 펜은 이를 의도적으로 덧칠하고, 수정한다. 그의 글씨체는 결국 10분마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정확히는 진실로부터 도피하려 하는- 레너드에게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미궁을 선사한다. 그는 필름 롤을 따라 복수가 낳은 복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끝없이 손에 피를 묻힌다. 작중 반복적으로 손을 씻으며 죄의식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은유적인 그의 몸짓은 ‘세미(새뮤얼 R. 잰키스 역)를 기억해라’는 스스로가 건넨 손목의 잉크 자국이라는 세뇌에 기꺼이 몸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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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

망각하려는 자의 기억

이 작품을 전부 보고 나면, 레너드는 총 두명의 존. G를 살해하게 된다. 즉, <메멘토>는 두 개의 복수로써 이루어진 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복수는 진짜 존 .G를 죽인 일부분의 진실로부터 태어난 복수임에 반해, 두 번째 복수는 자신을 조작하여 끝없는 살인의 연쇄 속으로 떠밀어버리는 새로운 존. G를 처단하는 복수이다. “너도 존. G니, 나의 존. G가 될 수 있어. 만족을 위해 자신을 속인다고? 테디 너 같은 놈에겐, 그렇게 해 주마.”라는 마지막 시퀀스 속의 레너드가 뱉는 대사는, 그의 손에 피를 묻히게 한 사람으로부터 스스로의 삶을 구원하는 행위이자, 아이러니하게도 이 또한 꼬리를 무는 살인이기에 그는 원죄로부터 한 발자국 더 도망친 것과 다름이 없게 된다. 기억과 기록은 각자의 파편으로 서로를 만들게 되며, 이는 복수를 성공하나 원죄에 더욱 가까워지게 되는 이 작품의 아이러니를 지탱하는 요소이자, 이 영화를 이루는 근간으로써 변모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메멘토>를 통해 ‘기억’과 ‘기록’ 사이의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억과 기록은 결국 ‘신념’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느냐의 문제이다. 레너드와 같이 ‘습관과 느낌’으로써 기억의 공백을 채우는 자들은, 사실 기억의 공백이 위치한 빈자리에 잊고 싶은 진실을 다른 내용으로 덮어 씌운 채 새로운 기억의 증표(=’메멘토’)를 새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본능이라는 매우 간단한 몸짓을 기억함으로써,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비극적인 기록이자 진실인 ‘고통’에게 ‘도피’라는 진정한 망각을 선사하는 이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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