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미혹, 사모, 비련 너머의 영원한 순간

영화 <화양연화(2000)> 리뷰

by 더 레터박스

역설의 미학

'동질감'으로부터의 도피

우리는 살면서 ‘해야 할 행동’과 ‘하고 싶은 행동’ 사이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두 가지 선택지 중 무언가를 향한 결정을 내딛을 때, 우리는 선택받지 못한 갈림길로 나아가는 상상을 한다. 우리는 스스로가 내린 선택에 끝없이 반추하며 후회하고 갈망한다. <중경삼림>의 파인애플 통조림 속에 포장된 사랑과도 같이, 사랑에 관한 아쉬움이라는 감정은 유통기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내린 모든 선택은 논리적으로 서로 어긋나는 표상의 결합. 즉, 양가감정을 가진다. 우리는 이것을 ‘역설’이라 부른다.
왕가위 감독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도덕적 억압과 욕망의 변증법’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의 카메라 안에서 숨쉬는 인물들은 현실과 욕구 사이의 표리에서 끝없이 방황한다. <화양연화>는 사회의 시선과, 그 시선의 그림자 속의 담배 연기처럼 천천히 피어오르는 사랑의 배덕감을 그린다. ‘금기시’되는 이러한 사랑은 배우자의 불륜이라는 공통의 상처로부터 잉태되나, 역으로 그 동질감 때문에 서로를 갈망하면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원죄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동질감’이라는 감정의 달콤쌉싸름한 순간을 예찬하면서, 그 감정을 선물해 준 상대방과, 그이가 존재했던 시간과 장소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말라고 경고한다. 단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끝맺음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다. 동질감이 우리를 가득 채운 순간, 너와 나를 ‘우리’라는 단어에 가두고 자물쇠를 걸어버리는 바로 그 순간, 영원하기만 바랬던 그 순간에 두 사람은 떠나야 한다는 것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두 연인의 인생에 다신 오지 않을 가장 아름다운 순간. 즉, ‘화양연화(花樣年華)이기 때문이다.



시놉시스

같은 날,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온 차우(양조위 역)와 첸 부인(장만옥 역). 두 인물은 이웃으로써 가끔 스쳐 지나가며 간단한 안부를 물으나, 차우의 넥타이와 첸 부인의 가방이 그들 배우자들의 것과 똑같음을 깨닫고, 그들의 관계를 눈치챈다.
이후, 그 관계의 시작이 궁금해진 차우와 첸 부인은 각자의 배우자들의 음식 취향을 묻는 등 비밀스러운 밀회를 이어나가며 감정이 깊어지지 않게 노력하나, 차우의 부인이 그를 속이고 첸 부인의 남편을 따라 일본까지 가는 등 상황은 악화되어 간다. 차우는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무협 소설 집필을 시작하며 동방호텔 2046호에서 첸 부인과 만나 저녁 시간을 보내고, 차우와 첸 부인은 자신을 배신한 남편의 곁을 떠나지 못한 채 슬퍼하는 첸 부인을 위로하며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자신들을 배신한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차우는 그들처럼 부도덕한 관계에서 사랑을 느끼는 자신에게 회의감이 들어 그는 싱가포르로 향하기를 결심하는데…


미혹(迷惑)

역설적 사랑의 아련함을 주색과 녹색 빛으로 투영한다

영화는 감독이 관객에게 질문을 건네는 말과 같다. 모든 말에는 화법이 존재하듯, 영화도 그것이 가진 이미지와 소리로써 직간접적으로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특히, 색조는 우리의 전언어적(prelinguistic) 본능으로부터 느끼는, 유전자에 각인된 ‘느낌’ 으로부터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화양연화>는 필름 톤의 필터를 통해 촬영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적색(赤色)은 붉기보다는 주황빛이 도는 주(朱)색에 가까운 빨간색이며, 흰 색은 녹색 빛이 배어 있다. 이 작품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예상하는 이미지의 색을 변형함으로써 독특한 스타일과 감정을 전달한다. 필름 영화를 주로 보았던 이들에게는 과거의 향수를, 디지털 상영 방식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복고풍이라는 차별화된 느낌을 준다. 하지만 <화양연화>는 ‘붉은 색’을 통해 얻는 정열적인 사랑의 이미지라는, 전 세대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본능적인 감각이 주는 메시지를 비틀어버린다. 그들의 배우자가 어떻게 부적절한 만남을 갖게 되는지 궁금하다는 일념으로부터 피어난 미혹(迷惑)은, 필름 톤의 붉은빛 주색과 초록빛 흰색 대비를 통해 관객에게 ‘아련함’ 이라는 감정을 느끼도록 만든다. 이러한 영화의 이미지 톤과 배경의 색조는 그들이 눈치채지 못한 채 어느 새 두 사람의 주위를 가득 채워 버린 사랑을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 없는 두 인물의 과묵한 입과는 대조적이게, 강렬하고 직관적인 느낌의 ‘비언어적 표현’을 선사한다.
미혹으로부터 피어난 사랑은, 굳게 닫힌 차우의 마음과는 반대로 자유로이 그의 주위를 에워싸는 담배 연기와도 같다. 답이 없는 대화 속 유일한 본심을 나타내는 담배처럼, 미혹은 역설을 품고서 사모(思慕)로써 변모해 간다.


사모(思慕)

스쳐 지나감으로써 억제된 욕망, '서로'를 숨기려는 필름

차우와 첸 부인은 분절된 공간의 프레임 속에 갇힌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들의 시선은 서로를 향하고 있으나, 영화는 두 인물의 ‘집’을 통해 차우와 첸 부인의 시선이 서로를 향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이들이 같은 복도를 거닐 때는 프레임의 전경에 위치한 벽을 화면 안으로 들여옴으로써 그들이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카메라는 이들이 반복적으로 지나가는 같은 장소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필름 속에 담아내며 둘 사이의 지속적인 접촉을 부정한다. 이러한 연출 기법은, 미혹으로부터 이어받은 감정이 외로움을 만나 그것의 몸집을 점점 키워 가는 것을 ‘스쳐 지나감’의 시각적인 빈도가 증가하며 나타난다. 그들의 감정은, 스스로 꺼내 보일 수 없는 마음은 ‘억제된 욕망’ 으로써 그들의 외로움을 채워 나갈 뿐이다.
차우와 첸 부인이 서로의 마음을 눈치챈 순간부터, 두 사람은 마침내 ‘서로’ 로써 필름에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한 화면 속에 떳떳이 등장하는 순간은 ‘타인’이기에, 차우와 첸 부인은 사회의 따가운 시선 속 그림자에서만 ‘서로’라는 대명사 속에 포함될 수 있다. 카메라는 이들의 경계심을 반영하듯, 두 명이 같이 존재하는 프레임의 전경에는 항상 창살이나 유리창, 문틈 등 여러 오브제가 두 사람의 여백을 채우며 그들의 간접적인 만남을 주선한다. 이 오브제들은 단순히 그들의 불편한 심상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배우자들의 불륜이라는 타의적 요인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가까워진 둘의 관계가 이어지면서, 좁아져버린 프레임을 반복적으로 지켜본 관객들의 심상에 익숙함으로부터 이끌어진 ‘안정감’을 무심코 던져준다. 왕가위 감독은 내러티브를 표현하는 연출 방법에서 단순히 두 인물을 숨기려 할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도 깊어져 가는 사랑의 원죄를 그려내어 역설이라는 주제를 녹여낸 것이다.
‘서로’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난반사되는 유리창과 관찰을 불편하게 만드는 창살들은 어느새 차우와 첸 부인이 존재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존재로써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상황에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것 처럼, 두 명의 사람은 서로의 손끝이 스쳐 지나가는 좁은 틈 속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며, 그 속에서 서로를 ‘사모(思慕)’함으로써 두 연인이자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존재가 된 차우와 첸 부인은, 예정된 사랑의 죽음. 즉, 비련(悲戀)을 향해 같이 발을 내딛는다.


비련(悲戀)

미완이기에 아름다운 그 순간들

“울지 말아요. 연습일 뿐인데.” 라는 대사를 내뱉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현실이 되어 사랑의 끝을 고한다. 예정된 사랑의 죽음 앞에서, 이전까지 타인 앞에서의 고고한 품행으로 자신의 빈자리를 억눌러 온 첸 부인은 마침내, 차우와의 사랑이자 ‘서로’라는 대명사를 지탱해 주던 프레임 전경의 오브제가 사라진 넓디 넓은 밤거리의 풍경은 그들을 ‘타인’으로 변모하게끔 만들었다. ‘미완’으로써 ‘완성’된 사랑의 끝은 두 사람,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던 유보된 관계의 종말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 라디오에서 ‘화양연화’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며 다시금 타인으로써 갈라진 두 연인은, 그들 사이를 가로막는 벽 너머의 서로를 체념하고픈 마음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후 풀 샷으로 이어진 카메라의 패닝은 동방호텔의 복도에서 상념에 빠진 차우를 담아내고, 그는 이 장소를 떠난다. 그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화양연화'의 순간에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첸 부인은 본명인 ‘소려진’으로써 ‘주모운’이 되어 싱가포르로 떠난 차우와의 공간이었던 동방호텔 2046호에서 그와의 기억을 되짚으며 슬퍼한다. 이후 소려진은 주모운을 찾아 그가 살고 있는 곳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전화를 걸어 아무 말도 나누지 않은 채 헤어지게 된다. 소려진과 주모운이 등장하지 않은 작품의 마지막 15분을 차지하는 대다수의 장면은 이전의 시간대에 비해 현저히 빠르게 이어지다가, <화양연화>에서 사랑의 메타포로 사용되는 스텝 프린팅과 슬로우 모션이 장면들의 템포를 조절하며 천천히 늘어지게 된다. 이후 앙코르와트의 구멍에 영원한 사랑이라는 비밀을 속삭이며 그 구멍을 막은 차우는, 이 순간이 미완이기에 아름다운 순간이었음을 직감하게 된다.


영겁동안 기억될 찰나

동질감에서 태어난 사랑은 미련으로 돌아간다

<화양연화>는 양조위 영화에서 가장 정제된 영화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떨쳐냄으로서 정제된 것이 아니라, 마치 그의 스타일을 농축하듯, 작중 내내 흘러나오는 느린 재즈에 맞춰 속삭이는 양조위와 장만옥의 눈에 비친 수려한 아픔과 고뇌는, 감출 수 없는 그들의 감정을 있는 힘껏 억누름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을 압도한다.

소려진의 립스틱이 남은 담배는 연기로써 유리창 너머를 가득 채우지 않고도 미련을 보여줬다. 그러나 첸 부인은 왜 차우가 들고 간 그녀의 실내화를 가져갔을까. 그녀는 왜 미련을 보여줌과 동시에 미련을 지워버렸을까. 형광등 아래의 담배 연기가 형체를 잃고 사라지는 상실의 순간을 안타까워한 첸 부인이 두 인물이 과거에 살던 집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키듯,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결말 앞에서, 끊겨 버린 그들의 관계와 옅어져 버린 유대 앞에서 유일하게 ‘서로’로써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는 영원히 오늘을 아파한다’는 ‘동질감’이 아닐까. 소려진을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비밀을 털어놓는 순간, 주모운은 ‘차우’에게 영겁동안 기억될 찰나를 선물한다. 차우가 사랑한 ‘첸 부인’에게도, ‘서로’의 ‘화양연화’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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