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최악은 무엇이었는가
영어회화를 다니기 시작했다. 나간 건 3번, 주에 2번 간격으로 나가게 됐다.
사람들도 너무 좋고, 여러 가지 다양한 관점에 대해서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런데 저번 마지막 만남 때 질문은 나를 조금 불안하게 만들었다. 폭력적인 상황이나 범죄에 관한 경험을 알고 있는 스토리가 있는지, 그걸 공유할 수 있는지…
나는 그냥 내가 겪었던 경험 한 가지를 공유했다.
혼자 집에 가고 있는 길이었고,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날 따라왔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혹시 여긴 어떻게 가는 거예요? ”
“아, 이렇게 가시면 돼요. ”
“아, 그래요? ………근데 혹시 저 이 돈이랑 통장 드릴 테니까 저랑 같이 놀아주시면 안 돼요? ”
그 남자는 돈다발과 통장을 들고 나한테 내밀었다. 너무 공포스러웠다.
“아니요. 너무 싫어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제발 가주세요. 제발, 제발.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가주십시오. 부탁드려요.”
한참을 망설이며 몇 번을 내게 물어보던 그 아저씨는 결국 알겠다며 그 자리를 떠났다.
나는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었고 주변은 어두웠고 아무도 없었다. 공포에 떨다가 집에 가서 경찰을 불렀지만 그 남자를 잡지 못했다. 나에게 세상과 남자는 조금 이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3일 뒤, 오늘의 질문.
Q 당신은 애인의 어떤 행동에 더 정이 떨어지나요?
A. 변명하며 징징거리는 사람.
B.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화내며 뻔뻔하게 구는 사람.
나는 어떤가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는 어떤 것이 더 최악이었었나?
근데 나에게 최악이었던 건 그 둘 중에 하나가 아니었다.
나에게 최악이었던 건
자신이 잘못했을 때 나를 비난하며 모든 것은 나의 때문이라고 말했다가
다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했다가
다시 나를 비난하고 자신이 잘못한 것은 있지만 너의 잘못은 왜 인정 안 하냐고 하는 것
심지어 내 가족이 돌아가셨을 때조차도 왜 자신과 준비한 여행과 자신을 우선시하지 않냐고 나를 탓했다.
왜 우울해하고 힘들어하냐고 나를 탓했다.
그리고 이것을 1, 2주 간격으로 4년 동안 당하는 것.
가장 사랑하고 가장 믿고 싶었던 사람에게서….
이것이 나의 답변이었다.
행복한 하루였다. 대전에서 하는 와인페어에서 친구와 잔뜩 꾸미고 로맨틱하고 완벽한 하루를 보냈었다.
그 질문을 확인하고 생각한 순간 무너져 내렸다.
갑자기 너무 불안하고 무서워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숨도 간신히 헐 떡 헐 떡, 심장이 두근두근.
온몸이 차가워지고 벌벌 떨리는 느낌. 요즘 정말 잘 해내고 있었는데, 정말 하루하루 내가 원하는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와서 차로 들이박은 느낌이었다.
간신히 헐떡이다가 혼자 공포 속에서 한 시간을 보낸 후 조금 움직일 기운이 났다.
그래도 물도 마실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탈력감에 쌓여서 멍하니 폰을 봤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족들한테는 절대 알리고 싶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이미 충분한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나까지 이런 짐을 지어드리고싶진 않았다.
나는 성인이니까.
결국 나의 일은 내가 짊어져야 하는 게 맞으니까.
가장 친하고 가족보다 가까운 나의 친구. 다행히도 그 친구가 아직 자고 있지 않았다. 그때는 새벽 3시? 2시쯤이었다.
나 지금 이런 상태인데 너랑 통화를 할 수 있니?
그녀는 나에게 당장 전화를 걸어주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들을 해주었다.
일단 병원을 가서 의사와 상담을 받아라. 너는 네가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너는 지금 그런 상태가 아니다. 도움을 받아라.
그리고 영어회화의 질문을 주도하는 모임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너무 제가 힘들어서 그러는데 실례이고 이기적인 거 알면서도 이런 부탁을 드린다. 범죄와 관련되고 이성 간의 갈등에 대한 질문은 빼주실 수 있냐? 저는 여기 분들이 너무 좋고 영어회화에 가장 집중하고 있다. 근데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해 그런 질문을 받으면 극도의 공포와 불안감을 겪는다.
(이글도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정리해서 만들어주었다.)
다행히도 모임장님은 너무 좋으신 분이셨고 충분히 나를 배려해 주실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올해 안에 모든 걸 이겨낼 거라고 장담을 했다.
왜냐면 나는 정말 소중하니까, 내가 이렇게 불안감과 공포에 쌓여 시간을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우니까, 거울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나를 보고 있으면 이대로 사는 건 옳지 않다.
나는 회복해 낼 것이다. 이겨낼 것이다. 예쁘고 가장 반짝이는 나를 이대로 무너지게 둘 수 없다.
잠이 오지 않아도 약을 먹으며 잠을 청하고,
먹고 싶지 않아도 밥을 집어넣고,
움직이고 싶지 않아도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끊임없이 공원을 돌았다.
피아노를 치고, 내가 좋아하는 꽃을 사고, 그 꽃을 그리고 돌봐주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했다.
‘너무 힘들었지? 고생 많았어. 근데 너 인생은 이게 다가 아니야. 앞으로 넌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어. 너에겐 꿈이 있잖아. 겨우 이런 걸로 무너지기엔 넌 너무 소중해.’
사실, 자서전을 써보는 것도 내 꿈 중에 하나가 되었다. 최근에 친해진 약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나에게 모든 것을 해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중, 이 브런치라는 사이트를 추천해 주셨고, 거기에 조금씩 너의 이야기를 올려보는 건 어떻냐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를 켰다. 그리고 시작해 보려 한다.나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