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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글 Jan 01. 2024

후회보다는 위로를-'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

[서평]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 - 질리언 매캘리스터

타임슬립물은 영화, 소설, 드라마에서 꽤 자주 쓰이는 소재이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대부분의 주인공은 후회되는 일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만약 나라면 어떨까. 후회되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까. 아니면 내가 건너온 현재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가만히 있을까.





10월 말의 새벽. 엄마인 젠은 열여덟 살이 된 아들 토드를 기다리고 있다. 창문 밖으로 토드를 보고 있던 젠은 토드가 어떤 남자를 칼로 찔러 살해하는 장면을 본다. 젠은 남편 켈리와 토드에게 달려간다. 빠르게 달려온 경찰차에 연행된 토드. 젠은 변호사이지만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들은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다음 날 눈을 뜬 젠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방에서 나오는 토드를 보고 깜짝 놀란다. 토드, 켈리와 대화를 하며 젠은 자신이 하루 전으로 돌아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렇게 시작된 시간 여행은 살인 사건과 관련된 단서가 있는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루, 며칠, 몇 주, 길게는 몇 년을 뛰어넘으며 젠은 살인의 이유를 찾게 된다.








플롯의 신선함

책을 처음 펴고 본 목차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이런 목차는 정말 처음 봤다.


목차에 나온 것처럼 젠은 강제로 7230일 전까지 시간여행을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몇 번씩이나 똑같은 말을 하며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젠은 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 전의 과거로 간다. 결국 젠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시간여행을 하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책이 전개되다 보니 몰입감이 뛰어났고, 독창적이었다. 목차에서부터 대놓고 7230일이라는 시간을 말한 대담함이 괜한 허세는 아니었던 것이다.


에필로그 앞, 본편의 마지막에는 '히스테리성 힘'이라는 설명이 추가되어 있다. '히스테리성 힘'은 인간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극단적인 힘을 보여주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아기를 구하기 위해 자동차를 들어 올린다거나 하는 일 말이다. 타임슬립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들도 언급된 바가 있다고는 하지만 입증된 경우는 없다고 한다. 그 어떤 타임슬립에서도 구체적으로 왜 타임슬립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경우는 없었는데, 신선한 마무리였다.




가족애

타임슬립이 결합된 추리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는 '가족애'이다. 변호사인 젠은 워킹맘으로 항상 아들에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커다란 마음의 짐은 자신의 부족한 양육으로 아들이 살인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젠은 이전과 다르게 흘려 들었던 아들과의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거나, 아들을 진심으로 대하며 아들을 더욱 이해하게 된다.

사실 가족에 적용되는 자명한 진리 중 하나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사람과는 달리 내가 편하게 대해도 나를 언제나 사랑해 줄 사람들. 내가 어떻게 보일 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나를 한도 끝도 없이 이해해 줄 사람들. 하지만 늘 그렇듯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나의 무심함에 서운하진 않았을지, 편하다고 생각해 마구 나온 말로 상처받진 않았을지 돌이켜 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현재에 집중하라.

시간을 거슬러가며 젠이 크게 달라진 부분이 있다. 반복되는 일상 속 스쳐 지나가는 일들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것은 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아들을 관찰하고, 남편을 관찰하며 생긴 것이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젠은 자신이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어느 순간 책에서는 '평화로운 이 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젠의 모습이 종종 나온다.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지라도 젠은 그 순간을 즐기고 싶어 한다. 심지어 돌아가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젠은 아버지의 죽음을 되돌리려고 노력하기보다 아버지와의 평화로운 순간을 즐기려고 노력한다.


사실 '현재에 집중하라.'라는 내용은 타임슬립물에서 주로 등장하는 주제이긴 하다. 특히나 영화 '어바웃 타임'과 많이 유사한 부분이다.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은 똑같은 하루를 여러 번 살아간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주변의 사람을 더 생각하고 배려한다. 그리고 현재도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우리는 모두 과거의 시간을 쌓으며 오늘을 살아간다. 과거의 내가 후회될지라도 이미 지나간 것을 어찌할 수는 없다. 나의 과거에 후회보다는 잘했다고 격려를 해주고 싶다. 과거를 후회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내가 살고 있는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만약 제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그냥 서서 제 인생에 일어난 여러 일을 진실하게 온전히 목격할 겁니다.
378쪽


우리는 운 좋게 우리를 지나쳐 간 일보다는 운이 나쁘게 닥쳐온 일들만 생각한다.
4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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