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우기로 했습니다.
내 선택을 믿어보자!
나는 행동하기 전에 주변에 내 결정이 맞는지 줄곧 묻는 버릇이 있었다. 아마도 자신감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질문을 받아주는 사람들이 내게는 든든한 보호막이 돼 주었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온전히 편하지는 않았다.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이건 아니잖아!'
가장 큰 피해자는 남편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질문을 했다. 세차를 맡기려는데 어느 곳이 더 나을지, 황당한 말을 한 동네 한 아주머니에게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애들이 말을 너무 안 들어서 내가 화를 냈는데 나는 화를 낼 만했는지 등등 수도 없었다. 이렇게 적다 보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싶어 문득 미안하다.
그런 질문 중 가장 황당한 질문이 문득 생각났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던 내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이 상황 말이야. 나 기분 나쁜 게 맞는 거지?"
아니 내 기분을 왜 남편에게 물어봤을까? 만약 남편이 이건 기분 나빠할 상황은 아니라고 하면, 마음을 풀 참이었을까? 그럴 수 있었던 걸까? 돌이켜보니 이 질문을 덤덤히 받던 남편 속은 어땠을까 싶다. 남편은 줄곧 "그럼, 그럼."이라고 답을 해줬다. 때론 얼마나 귀찮았을까? 가끔 남편에게 서운하거나 불만이 생겨도 금세 잊어버리는 건, 그 시절 남편이 내 마음에 쌓아 둔 마일리지 덕분이다.
다행인 건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다. 아침 메뉴는 뭘 해야 할지, 어떤 옷을 입고 나갈지, 밥부터 하고 빨래를 돌릴지 빨래를 먼저 돌려놓고 밥을 시작할지 등등 아주 사소한 것부터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이 모여 삶이 되는데, 나는 그걸 혼자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자신감이 부족했고, 또 모든 선택에는 가장 좋은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감이 부족해서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불현듯 깨달은 거다, 모든 선택과 결정에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열심히 고민해서 선택하고,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 되도록 내가 만들어나가면 된다는 그 흔하고 당연한 이야기를,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늦게 깨우쳤다.
어제 아이에게 속상한 일이 있었다. 아이와 상의 끝에 나의 방식으로 웃으며 잘 해결하였다. 다른 방식이 더 좋지 않았을까, 순간 내 선택을 의심하려는 순간 나는 내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는데 전처럼 후회나 회피로 내 마음속에 숨겨놓지 않았다. 꺼내서 솔직하게 덧붙여 해결했다. 아이도 나도 상대방도 편안한 밤을 맞이했다.
나 잘한 거 맞냐고, 남편에게 안 물어봤다면 거짓말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어른들 말씀 틀린 게 없다. 그건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달라졌다. 그저 물었지 전처럼 의존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 내가 달라졌음을.
아니 근데, 나를 키우기로 마음먹었으면 이건 스스로 칭찬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싶었다. 내 선택을 믿어보자 마음먹고, 잘 해결했다. 질문도 많이 줄였다.
"수고했다. 거의(?) 혼자 힘으로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