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나의, 먹고사는 이야기
그까짓 계란이 뭐라고, 계란 한 알에 내 인심이 드러나 버렸다.
분명 장을 봤는데 냉장고를 열면 텅 빈 이 느낌, 기분 탓일까? 싶지만 사실이다. 높은 물가 탓에 가득가득 채워 넣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방학을 맞은 두 아들들의 실력이 어마어마하다. 채워놓으면 먹고 채워놓으면 먹는다. 그렇게 냉장고가 텅 빈 시간이 점점 늘고 있다.
아이들이 꼭 먹고 싶어 했던 계란이 올라간 함박 스테이크가 있었다. 어제 아침에 그걸 먹기로 했는데 마침 계란이 떨어졌길래 큰 아이에게 집 앞 가게에서 계란을 사 오라고 했다.
10알에 7000원. 일반 슈퍼이다 보니 대형마트나 인터넷 쇼핑몰보다 가격이 비싼 건 당연한 줄 알면서도 새삼 놀라웠다.
'계란 한 알에 700원인 세상이라니! 너무한다, 진짜!'
아니 솔직히 너무 한 거 아닌가? 난각 번호에 항생제까지 계란 하나 사 먹으면서도 생각할 것들이 많아 골치 아파 죽겠는데, 나날이 계란 값이 오르고 있다.
밥 하기 싫은 날 간장 넣고 비벼 먹던 계란밥, 반찬 없는 날 김이랑 같이 먹던 계란 프라이였는데! 이젠 아무 때나 대충 해 먹을 수 있는 그런 반찬 취급을 하기엔 만만한 가격이 아닌 세상이 됐다. 물가가 정이 없다, 정말!
근데 또 뭐 계란을 꼭 매 끼 먹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먹는 밥 상에 이 정도 투자를 못하냐 싶은 거다. 내가 좀 쪼잔했던 것 같아 후다닥 화난 마음을 깊숙이 집어넣고 다시 아침을 했다. 반숙 프라이를 완성해 아이들 함박 스테이크 위에 올려주었다.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니 무척 뿌듯했다. 잘 먹는 아이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참 예쁘다.
그날 저녁밥을 차리는데, 아이들이 간단히 전자레인지에 만들 수 있는 보들보들한 계란찜을 해 먹자고 했다. 6알을 꺼냈다.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며 아이들은 신나게 계란찜을 먹었다. 나는 간신히 맛만 보았다. 아이들의 먹성에 슬쩍 부족할 양인 걸 나는 진작에 알았지만, 그 계란이 뭐라고 더 넉넉히 꺼내서 팍팍 깨질 못했다.
'더 해달라고 말하면 어쩌나... 계란 좀 아껴야 되는데.' 자식이 먹는 걸 보고 이런 생각도 하다니, 스스로 내가 쪼잔해 보이기도 하고 묘했다. 다행히 추가 주문 없이 저녁은 마무리가 됐다.
그러다 늦은 밤 돌아온 남편이 라면 한 그릇을 먹고 싶어 했다. 아마도 일찍 먹은 저녁이 조금 부족했나 보다. 스프랑 면을 넣고 파도 썰어 넣었다. 보글보글 끓는 라면에 마지막으로 계란을 넣으면서 나는 또 이런 생각을 하는 거다.
'계란 한 알 남았네!'
진짜 밥을 할 때마다 나는 하루 종일 그놈의 계란만 세고 있었나 보다. 인심 후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먹는 것 앞에서 그것도 고작 계란 한 알 앞에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니! 헛웃음이 났다.
터무니없는 물가 앞에서 인심 좋은 사람 되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정답이다. 그런데 이 물가에 어떻게 곳간을 가득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계란 한 알에 드러난 내 인심이 스스로 민망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남편에게 계란 하나는 펑펑 먹고 지냈던 시절이 문득 그립다며 떠들어댔다.
하루 종일 계란 타령만 했던 날이다. 평생 할 계란 생각을 이 날 다 해버린 것 같다.
'당분간 계란 얘기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