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엄마의 이야기
"이것도 정품이 있어??"
큰 아이가 요즘 갖고 싶어 했던 것이 있다. 한창 인기 있는 '*부부'라는 인형이었다.
내가 봐도 참 귀엽긴 했지만,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가 이걸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아이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인기 많은 아이템이라며, 날 붙잡고 오랜 시간 '*부부'의 인기를 얘기했다.
'얼마나 신나서 자랑을 하던지, 나는 네가 '*부부'인 줄 알았어.'
나는 아이에게 그렇게 좋으면 하나 사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조그만 인형이 꽤나 가격이 나간다는 것이다.
큰 아이는 요즘 이것저것 사달라는 게 많았다. 또 사달라고 하면 잔소리를 한 백 바가지는 부어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6학년 정도 되니 눈치가 생겼다. 자기가 돈을 모아 사겠다고 했다.
모아놨던 비상금에 2주 치 용돈을 모으고 있을 때쯤, 외할아버지를 만나 만 원의 서프라이즈 용돈이 생겼다. 오늘 아침 드디어 아이는 5만 원 남짓을 주고 인형 6개 세트를 주문했다.
큰 아이는 생각보다 돈을 빨리 모아서 빨리 샀다며 신이 났고, 나는 요즘은 인형도 이렇게 비싸냐고 한소리 했다. 이 정도면 자기가 저렴한 걸 정말 잘 구한 거라고, 아이는 나에게 으름장을 놨다. 이번 주 토요일이면 인형이 도착한다고 종일 설레다 늦은 저녁 아이는 영어 학원으로 향했다.
'네가 아무리 다 큰 척해봐라, 아직도 인형에 설레는 너는 나의 베이비다!'
오랜만에 덩치 큰 녀석을 마음껏 귀여워하고 있는데, 학원 끝나고 돌아온 아이는 아닌 척했지만 다급했다.
"엄마, 이거 정품이 아니래."
우리가 주문한 것이 정품이 아니란다. 응?? 인형에도 정품이 있어?? 나는 그 사실이 더 놀라웠지만, 일단 아이가 보여주는 것부터 찬찬히 들여다봤다. '이거 정품 아니에요, 속지 마세요.' 아주 친절한 후기가 올라와 있었다. 어쩜, 이런 건 꼭 주문하고 보이는 것인지. 우리는 서로 당황하지 않은 척, 이까짓 거 결제 취소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하지만 꼭 그렇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니까. 결제 취소는 가능한데, 오늘 점심 때 시킨 배송이 어쩐 일로 저 먼 땅 중국에서 벌써 출발했단다. 그래서 취소 비용은 무려 16000원이란다.
51000원에 주문한 제품의 결제 취소 비용이 16000원. 어마어마했다. 사실 나도 엄청 놀랐다.
초등학교 6학년의 눈동자는 정신없이 흔들렸다. 큰 아이는 아빠, 엄마, 동생 온 가족을 붙잡고 엄마 아빠라면,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쉴 새 없이 물어봤다.
16000원의 결제 취소비 앞에 가족들도 '모르면 몰랐지, 정품이 있다면 정품을 사겠다.'는 의견과 '귀여우면 그만이지 정품이 뭐가 중요하냐.'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하필 의견도 달랐다.
소파에 앉았다 일어났다, 방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혼잣말을 했다, 다시 와서 또 질문을 하고... 그렇게 2시간 가까이 머리를 뜯으며 고민하던 아이는 결국 결제 취소 대신 그대로 인형을 사기로 했다. 물건이 와야 알 수 있겠지만, 혹 정품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했다.
귀여워서 방에 전시해두고 싶은 건데, 정품이면 좋지만 아니어도 큰 상관은 없을 것 같단다. 그리고 이제와 자세히 알아보니 전문 매장이 있는데 6개를 사려면 10만 원이 훌쩍 넘는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쉽게 넘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아직도 마음속에는 잔바람이 불 아들에게 잘 결정했다고 얘기했다. 아이는 정품이 아닌 건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네 방에 전시해 둘 인형이 정품인지 아닌지 내가 누굴 만나 어디에서 비밀을 지켜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알겠다고 했다.
드디어 안심이 되는 건지, 자기도 웃긴 걸 아는 건지 아이는 헤벌쭉 웃었다.
아이는 이제 잠들었는데, 엄마는 여전히 놀란 밤이다.
귀여운 인형을 사는데도 정품이 맞는지 꼼꼼히 따지고 '속지 마세요.'라는 문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니. 유행도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아줌마의 얘기일 수 있지만, 안 그러면 좋겠다. 너무 정이 없잖아.
'어쨌든 다음엔 더 신중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