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필연적으로 고유한 역할이 있다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은 때때로 버겁고 지루하기도 하지만 탄탄한 삶의 근간과 익숙함을 준다.
익숙함은 곧 예측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이는 편안함을 동반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성향의 나에게 정돈된 일상이란 그 자체로 유토피아요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말이 정돈된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꽤나 엉망진창의 매일을 간신히 살아내고 있었지만 여기에선 차치해 보자.
매일의 루틴에 포함된 해야 할 일, 그에 따른 안온함과 불안을 모두 나의 일상에 남겨두고 떠난다.
막상 모르는 곳으로 가려하니 불안감이 스멀 퍼져온다. 에어컨 바람이나 쐬면서 집에서 뒹굴뒹굴할걸 괜히 떠난다고 했나. 자그마한 크기의 불안이 후회로 변하고 점점 덩치를 키운다.
이미 티켓은 끊어놨고 아무 생각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집을 나서버렸다.
충전을 잊은 이어폰은 챙기지도 않았으니 멀뚱히 앉아서 주변을 살피다 챙겨 온 화장품을 찍어 바른다.
경주까지 2시간 10분. 어딜 다녀본 적이 거의 없으니 오래 걸리는 건지 금방인 건지 감이 안 온다.
화장을 마쳐도 시간이 한참 남아 주변에 귀를 기울여본다. 사실 귀를 기울일 것도 없이 앞자리 아주머니들의 목소리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쩌렁쩌렁하다.
요즘 세대의 친구들은 기차 기적소리를 알까 싶다가. 내 귀에만 크게 들린 건 아니었는지 주변 사람들이 힐끔거리기 시작하니 일행인 듯한 다른 분이 기차 화통 아주머니를 제지시킨다.
멀어지는 기적소리처럼 말소리는 점차 옅어지고 잠에 슬며시 빠져든다.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니 마음이 한결 산뜻하다.
집에서 멀어질수록 거리에 비례해 머릿속이 개운해진다. 떠났다가 돌아올 때는 좀 더 가벼워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