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가장 긴 밤이 건네는 위로
12월의 끝자락,
해가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 온다.
동지.
어둠이 가장 깊은 날인데
이상하게도
조상들은 이 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설이라 부르며
새로운 시작의 문턱으로 여겼다.
밤이 가장 길다는 것은
이제 더 길어지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오늘이 지나면
해는 다시 조금씩 길어진다.
보이지 않게, 그러나 분명히.
팥죽 한 그릇에 담긴 마음
동짓날이면 어김없이 팥죽을 쑤었다.
붉은팥은 액운을 막는다고 했고
따뜻한 죽은
추운 겨울을 건너는 힘이 되어주었다.
팥죽은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니었다.
“이만큼 잘 버텼다”
“이만큼 살아냈다”
서로를 향한 말 없는 인사였다.
새알심을 나이 수만큼 넣어
한 숟갈씩 떠먹으며
사람들은
올해의 무게를 내려놓고
내일을 조심스럽게 맞이했다.
어둠의 끝에서 시작되는 것들
동지는 음이 가장 깊은 날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깊음 속에서
양은 다시 태어난다.
삶도 그렇다.
가장 어두운 시간을 통과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다시 시작할 힘을 얻게 된다.
지나온 시간들이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동지는 조용히 알려준다.
요즘의 동지
이제는
팥죽을 직접 쑤는 집이 줄어들었지만
그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따뜻한 팥죽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올해를 돌아보는 저녁,
무사히 지나온 하루들에
감사하고 고맙다.
잘 해냈다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가장 긴 밤을 지나며
동지는 말한다.
지금이 가장 어두운 순간이라면
곧 빛이 온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 만큼은 서두르지 않는다.
긴 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 안의 작은 불씨를 조용히 지킨다.
동지의 밤은 길지만 그 끝에는
반드시 아침이 온다.
미리 먹는 동지 팥죽이 더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