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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선 May 22. 2024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 서다


숙소 펜트하우스 천장 유리를 두드리는 빗소리에 눈을 떴다.

어제저녁 친구의 건강 문제 때문에 긴장한 탓인가?

제대로 깊은 잠에도 들지 못하고 새벽 기상을 한다.

마무리 못한 그림에 색을 입히고 대충 아침 준비를 한다.

커피 내리는 소리에 혹여 잠들을 깰까 싶어 나름 조심을 하지만

친구는 약기운에 10시간째 깊은 잠에 빠져있고

많이 피곤했던 듯 동생도 움직임이 없다.         


하지만 일어날 시간이다.

9시 12분 버스를 타고 

우리는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숙소 방명록에 적는 동생의 감사글 위에 

그림카드 하나를 올려놓고 숙소를 나온다.

비는 그쳐 있지만 금방이라도 다시 쏟아져 내릴 듯 

회색 구름이 낮게 하늘을 가리고 있다.     

비로소 순례길의 끝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한껏 부풀어 있다. 

설렘이다.


예정 시간 보다 40분 늦게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 안에는 이미 많은 여행객들이 타고 있다.

다들 우리처럼 버스 타고 산티아고? 

설마.....

버스는 중간중간 정차하며 순례자를 내려놓기도 하고,

또 태우기도 하며 푸릇푸릇한 숲 사이를 시원하게 달린다.

대장정의 마지막 구간인 만큼 버스 안에서 꼼꼼히 산티아고 길을 익힌다.

언젠가 반드시 다시 올 곳이기에....


이내 버스는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해 또 한차례 순례객들을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커다란 돌비석이 세워진 로터리를 돌고,

순례자 동상이 있는 로터리를 또 돌아

주택가들이 늘어선 도로로 접어든다.

산티아고라는 푯말이 또렷하게 들어온다.



아르수아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나 시내에 도착했다

우리는 곧장 숙소를 찾아

배낭을 팽개치듯이 던져놓고 주 광장인 '오브라이도로' 향한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도착한 순례객이 많지 않아 거리는 조용하다.

마지막 길을 걷지 않고 들어섰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지만 그래도 나는

별들의 들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 당당하게 선다.

그런데 불현듯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나의 삶에 있어서 이 산티아고에서의 지금의 이 순간, 이 느낌은 

멋진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란 걸......

비가 오락가락 내린다.

이 비는 순례길의 마지막에 벅차해 하는 이들을 반갑게 맞아 준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이는 이들,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해 하는 이들

고단한 순례 후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멍하니 성당만을 바라보는 이들

젖은 돌 위에 누워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주고 있는 이들

긴 시간의 힘듦이 고행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며 서로를 보듬는 이

각자의 방식과 각자의 의지로 도착한 이 대성당 앞에서

순례자들은 자신들의 가슴속에 담아온 별들을 꺼내 온누리를 밝게 비추는 순간이다.


오락가락하던 비가 이내 가랑비가 된다.

비를 흠뻑 맞은 채 줄 서서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만

보고 싶었던 향로 미사는 시간 차이로 볼 수 없다.

성당 내부를 둘러보는 내내 엄숙함이 흐른다.

성당을 나와 온다리비아에서 산티아고 우체국으로 보낸 짐을 찾는다.

골목마다 넘쳐나는 기념품 가게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비로소 종착점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서일까?

식당마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는 순례자들의 얼굴이 사랑스럽다.



온갖 감정이 뒤섞여 휘돌아 치는 마음을 나름 정리한다.

그런데 성당 한 쪽에서 버스킹 하는 악사의 연주 소리가 내 마음을 다시 흩트린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챈 동생이 조용히 말문을 연다.

“우리의 지금까지의 여정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는 거에 대한 무거운 압박감과 

걸어야만 완성을 한다는 부담감

그것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

때로는 걸었고

또 때로는 버스나 기차를 탔고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마을에서는 며칠이든 머물렀고......

그때 우리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잖아!

별이 빛나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가야 한다는 그 목표......


갈 수 없을 거라 우려했던 ‘용서의 언덕’을 넘었고

택시를 타고 가서라도 비바람 속에서 ‘철의 십자가’를 보았고

아르수아에서 카미노가 되어 걸어야만 했던

그 모든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품고 있는 장소가 바로 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아닐까?“

그래, 

나도 이 여정을 통해 그동안 내 마음속 깊이 들어앉아만 있던 묵은 생각이 

이제는 새로운 희망과 용기로 승화됨을 스스로 느끼고 있어.


사리아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온전히 걷기로 한

우리 여정의 끝은 바로 이곳이다.

순례자에서 이제 여행객이 되기 위해 나는 캐리어를 구입한다.

그리고 부엔 카미노를 새기며 이 여장의 마침표를 찍으러

0.00km 표지석이 있는 땅끝마을 피네스데레와 묵시아로 발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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