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언어
“나는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을 만날 거야.”라는 말 다음으로 나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말은 “딸의 자존감은 아빠의 사랑으로부터 결정된다.” 는 말이다.
그 말 역시 내가 결핍을 느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빠와의 관계가 그렇게 중요한 줄은 미처 몰랐다. 20살 중반에 이르러서야 그 차이를 느꼈던 것 같다. 솔직히 사람이 가지는 결핍은 모두 비교에서 시작된다. 비교의 대상이 없다면 애초에 결핍을 느낄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잘 사는 환경이어도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에게 나오는 분위기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아빠와 유대관계가 좋은 친구들을 나는 이길 수 없었다.
몇 안 되는 연애 경험을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나는 혼자일 때 더 강한 사람이다.
곁에 남자친구가 생기는 순간 더 의존적으로 변하게 된다.
때로는 그런 나의 모습이 참 구질구질하다 싶을 만큼 없어 보여서 그냥 혼자인 게 낫다고 판단할 때도 숱했다.
그러다 우연히 가정 심리학 전문의가 말하는 짧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아빠와 유대관계가 잘 형성된 딸일수록 이성에 대한 눈이 높다. 이성에 대한 안정감이 높고, 이미 좋은 남자(아빠)가 있기 때문에 연애의 필요성을 잘 못 느낀다.”
그 말을 듣고 떠오르는 친구 2명이 있었다.
초등학교 친구 A와 고등학교 친구 B
A는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낸 단짝 친구다. mbti와 가치관이 비슷해서 친구로 만나는 동안 싸운 적이 없다. 그런 A와 나의 차이는 아빠와의 관계다. A의 아버님은 드라마 속에 나올 법한 ‘친구’ 같은 아빠였다. 주말마다 캠핑을 꼭 다니시고, A와 장난과 농담을 자주 주고받았다. 정말 신기했던 건, 엄마보다 아빠와 더 친해서 비밀도 아빠에게 더 많이 말하고, 엄마와 다툰 후에도 아빠와의 대화 시간이 길었다. 나로서는 너무나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컸으면, 딸이 학교에서 힘들다는 문자 한 통에 달려오실 정도였으니까.
B는 고등학생 때 같이 다니던 무리 중 한 명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3년 동안 짝사랑하던 친구가 똑같이 3년을 좋아했던 여자가 B였다. 그렇지 않아도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도 호불호 없이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런 자잘한 비교들도 나를 위축시켰지만, ‘부럽다.’는 마음이 들만큼 충격이었던 건, 아빠와의 관계였다.
야자가 끝나고 같이 교문을 향해 걸어가는데 운동장 턱에 서 있던 한 남성분이 ‘아가’라고 외치셨다. 그리고 친구는 달려가서 손을 잡았다. 마주 잡은 손과 맞닿은 어깨,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B를 바라보시던 아버님의 눈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다.
‘아, 이 친구는 아버지와의 관계까지도 나를 뛰어넘는구나.’
그래서 내가 짝사랑한 그 친구 눈에도 B가 더 빛나 보였을까.
그런 결핍은 정말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노력해도 변할 수 없다.
애초에 어떤 방식의 사랑인지 알지 못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고향에 있던 작은 놀이공원
회전목마를 탔고, 앞에 벤치에 앉아서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는 핫도그를 들고 왔다.
정말 맛있었고 행복했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이면, 주어진 점심시간 나와 작은 언니는 빠르게 학원으로 달려갔다.
원장실 옆, 작은 교실에 들어가면 책상이 모여져 있었다.
그 위에는 치킨, 피자, 도넛, 음료가 가득했다.
배 터지게 먹고도 남은 간식들을 들고 다시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그게 우리 아빠의 사랑이었다.
말로는 “사랑해”라고 들어본 적 없어도 알았다.
그게 사랑한다는 뜻이라는 걸.
‘사랑스러운’, ‘아가’라는 말을 직접 듣지 못해도
나의 연애와 옷차림을 걱정하며 혼내는 말이 대충 ‘소중함’을 담은 표현이라는 것도 알았다.
늘 말에 숨겨진 뜻을 찾아 헤맸다.
내가 찾지 못하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돌려 말하는 것에 소질이 없고 싫어한다.
말에 의도나 의미를 숨겨놓는 걸 싫어한다.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더 큰 용기를 내보려 한다.
아빠를 보며 사랑한다 말할 수 있기를.
텍스트가 아니라 내 육성으로 마음에서 토해져 나오는 그 말을 아빠의 귀로 전달할 수 있기를.
아빠의 사랑을 받아 이런 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