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의 정체성은 아빠로부터.

by 정인

딸은 정서적으로 아빠와의 유대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이 있다.

나로서는 근거가 불충분한 이야기였지만, 듣자마자 마음의 고개가 끄덕여진 건 왜인지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서였다.

아빠를 떠올리면, 아주 좋았던 기억과 최악의 기억으로 나뉜다.

사춘기에는 그 이유가 참 발목을 많이 잡았다. 한쪽으로 정확히 치우쳐진 전제라면 도망갈 수 있었을 텐데, 어중간한 사이와 이유가 완전히 버릴 수 없게 만들었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어찌나 차별이 심하다고 느꼈는지, 나는 배신감이 들 정도였어.”

큰 언니를 낳고도 아빠로서 자격이 없을 정도로 무신경한 남편의 모습에 온 정이 다 떨어졌는데, 막내를 낳고 그냥 사고를 쳐도 헤실헤실 웃는 모습이 얄궂었다고 했다.


장을 봐야 하니 만 원만 달라해도 없다며 주억거리던 고개가 “아빠 떡볶이 사 먹게 천 원만”하면 지갑에서 쑤욱 쑤욱 꺼내지더라고 입이 닳도록 말하던 일화였다.

그렇게 아빠의 사랑을 먹으며 자랐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도 아빠와 껴안고 ‘응애응애’ 하며, 꿈틀거렸다.

그런데 도무지 어디서 어긋나기 시작한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빠는 동네에서 꽤 큰 학원을 운영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학원 체인점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동네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다. 정확한 학습 프로그램보다 동네 삼촌 같은 원장 선생님에게 교육을 받는 게 익숙했다. 그 사람이 우리 아빠였다.


동네 삼촌이라고 하기에 꽤 무섭고 엄해서 ‘무서운 학원’으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나도 무서운데 오죽했을까. 공부에 있어서 엄했던지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로 자주 혼이 났던 것 같다. 어려서는 학교 학원 집이라는 반복이 뭐가 그리 문제인지 몰랐는데, 노는 재미를 깨닫고 난 뒤로는 ‘억압’을 느꼈다.

학원을 운영하다 보니 사교육을 받을 필요 없고, 공부할 공간이 무료로 제공되는데 왜 하지 않는지 이해를 못 하는 아빠의 가치관 속에서 세 명의 딸 중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던 내가 튕겨나간 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였을지도 모른다.


사랑의 매를 허용하던 아빠 덕분에 많이도 혼나고 맞았다. 그 강도가 강해서 웬만한 남자아이들보다 겁도 없고 깡도 샜다.

그래도 여렸다. 상처를 받으면 골이 깊어졌다. 생각이 많던 아이라서 한 번 받은 상처를 오래도록 품고 살았다.

에둘러 표현하자면, ‘대화’가 되지 않는 순간들이었다. ‘폭력’으로 허용되던 것들이 많았다. 훈육이라기에 가히 폭력적이었다.


FM대로 자란 언니들과 다르게 나는 화장이며 이쁜 옷 등 치장하기를 좋아했다. 엄마 아빠도 부모가 처음인지라~ ‘이 아인 이런 기질이구나~’ 이해하는 게 아니라, ‘이 아이는 왜 이럴까.’ 생각하며 내가 가장 별나고 특이하다고 정의를 내렸다.


친구들 다 끼는 컬러렌즈를 끼고 부반장이 되어서 가야 했던 학부장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아이러니하게 그런 아이였다. 부반장은 되었고, 꾸미기도 좋아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대뜸 아빠가 거실로 불렀다. 짐이며 옷도 풀지 못하고 아빠와 대면했다. 주제는 똑같았다. ‘공부’.

겁이 없어서 혼이 나도 대답은 다 했다. 나의 주장을 아주 논리 정연하게 펼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걸 어른들은 말한다. ‘말대꾸’라고.

그런 아빠는 심사가 뒤틀렸고, 마침 눈에 들어온 건 마주 보던 나의 눈동자 속 컬러렌즈였다. 그걸 시작으로 대화의 주제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고, 아빠는 바닥에 있던 접의식 상을 들었다.


웃기게도 그 뒤로 기억이 없다.

내가 정신이 돌아왔을 즈음에 엉엉 울며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는 인식이 서서히 잡히고, 큰 언니 방에서 엄마 품에 안겨있었으니까.

엄마는 ‘정인아, 너 그 말도 계속하고 있어. 얼른 정신 차려야지.’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내 정신이 돌아왔을 즈음 근처 대학 응급 병원으로 갔다. 이유는 ‘넘어져서’.

기억이 사라졌다고 감정까지 사라진 건지. 아빠에 대한 악감정이 없었다. 머리 뒤쪽이 부어서 목이 경직되었다. 순간 뇌가 놀라서 일어난 해프닝으로 끝났다.


물렁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아빠에게 말하고 며칠 후 병원에 가서 피를 뽑았다.

아직까지 땜빵처럼 흉이 남아있다. 그 자리에는 머리카락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그리고 아빠랑도 잘 지낸다. 여느 가정처럼.


너무 돈독해 손도 잡고 포옹도 하는 그런 사이는 아니지만, 같이 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


그렇게 내가 되었다. 반곱슬에 풍성한 숱과 반비례하게 얇은 머리카락, 반곱슬에 윤기가 흐르지만, 그 안에 더 이상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 땜빵이 하나 있다.


살면서 아주 가끔 무수한 머리카락 사이에 그 구멍처럼 마음에 구멍을 마주하는 날은 엉엉 울어버리고 나머지 무수한 날들은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지내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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