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4

결국 부끄러워하고 말았다.

by 정인

가난만큼이나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엄마 아빠의 다툼이었다. 어려서 부모님이 서로 주고받는 말이나 맥락은 이해하지 못했어도, 그 말이 ‘나쁜’ 말이라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아빠는 과묵하게 웃어넘길 줄 모르는 사람이었고, 엄마는 자신의 속내를 내비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었다. 가볍게 시작한 언쟁은 달갑지 않은 아빠의 대답과 끝까지 구시렁거리며 혼잣말로 티를 내는 엄마의 말투로 사나워졌다. 그게 내 눈에는 보였다. 물건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흉측한 물건이 꺼내지기도 했다. 사람대접도 안 해주는 행동을 자식들 앞에서 상대에게 거침없이 했고, 결국에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꽉 잡고 같이 나뒹굴었다. 처음에는 큰 언니 혼자 덤덤했다. 나랑 작은 언니는 늘 작은 이불속에 그 작은 두 몸을 구겨 넣고, 울었다. 숨죽여 우는 게 아니라 목 놓아 엉엉 울었다.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그만 싸워주세요.’라는. 어느 순간부터는 나 혼자 울었고 또 한참 뒤에는 모두가 울지 않았다.

다행이었으려나. 2차 성장까지 한 우리는 제법 어른 흉내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서 그 싸움을 말리기 시작했으니까.

엄마의 알바는 계속됐다. 가난과 싸움의 연속인 집안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없었다. 돈은 각자도생이었으므로 서로 의지할 수 없었고 자신들의 행복을 찾아 각자 노력하는 게 최선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 엄마는 아빠의 학원 운영을 돕던 일을 그만두었다. 일 해봤자 남보다 못한 급여로 장난치는 게 화가 난다는 엄마의 주장이었다. 엄마는 내가 다니던 중학교와 가까운 대형마트 식품 코너에서 청소일을 시작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가 다양한 일을 하는 걸 옆에서 지켜봐 왔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느냐는 나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빠가 학원 원장 선생님이라는 사실이 간혹 어린 친구들에게 자랑거리가 되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직업에 대한 나의 인식이 크게 없었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엄마가 일하는 마트까지 걸어갔다. 중학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던 대형마트라 혼자서도 충분히 엄마를 보러 갈 수 있는 기쁨이 나에게는 더 컸다. 신나서 엄마와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수많은 테이블 중 딱 한 테이블에 같은 반 친구들이 앉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마음이 이상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부끄러움과 복잡함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며 약간의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엄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 엄마가 어른이니까 친구들을 소개해주는 건 너무 당연한 행동이니까. 엄마를 보고 친구들에게 “엄마가 잠깐 아르바이트하는 거야.”라는 말을 덧붙였다. 같이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도 아니었거니와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한 번 더 말했다. “그냥 잠깐 아르바이트하는 거라고!!” 그랬더니, 한 친구가 “알았어! 누가 뭐래?”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대화를 이어갔다. 괜히 뻘쭘해졌다. 그리고 스스로한테 화가 났다. 드라마에서도 책에서도 가난과 부모를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라고 나오는데 왜 나는 부끄러워지는 거지. 괜히 혼자 두근거리는 마음에 친구들에게 과한 질문과 고백을 했다. 그걸 알고 있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냥 나 혼자 부끄러워하고, 수습하고 짜증을 냈다는 걸.

엄마는 그 친구들이 아니라 나의 행동에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사실도. 그래서 그런 나에게도 너무 화가 났고 부끄러웠다. 내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엄마를 부끄럽게 만든 나 자신이 싫었다.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자신 없을 때, 목소리는 더 커지는 법이라는 걸.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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