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면, 믿어지는가? 열두 살의 나는 그랬다.
진단받아본 적은 없지만, 나는 내가 언제 우울증을 처음 겪었는지 안다. 그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나와 친했던 친구 두 명이 있었는데, 이 친구들은 같이 있으면 사이가 좋고, 따로 있으면 앙숙과도 같았다. 나는 그 사이에 껴서 이도저도 못하고, 서로 욕하는 것만 들어주기 바빴다. 지금의 나라면 "너희끼리 해결해."라고 했겠지만, 그때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현명한지 몰랐다. 다만 친구들의 험담을 들으며 맞장구치지 않는 것으로 내 마음을 대신했다.
두 친구들 사이에 끼어 지쳐가던 어느 날, 우연히 그 둘이 만나면 나를 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원인을 그 친구들이 아닌 나에게서 찾으려 했다. 나만 잘하면 두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되고, 셋은 둘도 없는 사이가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친구에게 "나 어떤 점이 별로야? 고치고 싶어서."라고 물었다. 그 친구는 '너에게 별로인 점은 없어'라고 대답해 줬다. 하지만 당시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만 같아서, 그 친구가 내 별로인 점을 말할 때까지 계속해서 내 단점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가 이렇게 답했다.
"난 정말 너에게 단점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네가 그렇게 궁금해하니 말하자면, 네가 그렇게 '뭐가 별로냐'라고 묻는 게 별로야. 그냥 나랑 같이 다니자. 왜 그렇게 힘들어해."
그렇게 말해준 친구에게 고마웠다. 하지만 결국 그 친구랑은 다니지 않았다. 친구에게 폐를 끼칠 것만 같았다. 분명히 나에게 문제가 있는데 친구가 나를 생각해 숨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정도로 나를 믿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문제가 없을 리가 없다.'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이 안 좋은 습관으로 인해 내 상태는 더욱 나빠져갔다.
이 문제를 가족에게 말한다면, 가족에게 큰 짐을 지우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에게 그 일들을 숨기고 매일 밤 동생들과 함께 자는 그 방에서 숨을 죽여가며 울었다. 나는 규모가 그다지 큰 초등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웃음이 많았던 나는 거의 웃지 않게 됐다. 억지로 웃는 얼굴이 어색해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 두 명의 친구들은 나에게 같은 중학교를 가자며 1,2,3 지망 학교를 통일하자고 했다. 나는 '그러자'라고 말하고 전혀 다른 학교를 썼다. 그 친구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 처음으로 심리검사를 경험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검사였는데, 대부분의 학생이 그 시간에 수업을 하지 않아 좋아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 심리검사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두려움이자 기회였다. 심리검사 질문지에 솔직하게 답변하면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해야 할게 뻔했다. 이것은 나에게 '남에게 내 짐을 지우는 일'이면서도, '이 끝없는 듯 한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솔직하게 작성하기로 마음먹었다.
검사 결과를 보고 놀란 선생님은 다음 날 체육수업을 듣고 있는 나를 따로 불러내 상담을 하셨다. 나는 "부모님께는 비밀로 해달라"는 말로 입을 뗐다. 처음으로 그렇게 남 앞에서 울며 얘기해 봤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린아이가 혼자서 견디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진다. 14살에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힘듦을 털어놓았다는 건, 그전까지는 한 번도 남에게 힘든 티를 내 본 적이 없음을 뜻한다.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3년간 외롭게 자기혐오와 우울에 갇혀 살았던 것이다. 이후 나는 차츰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할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3년간의 외로움이 금방 씻겨나가지는 못했다. 열두 살에 짊어지기 시작한 우울감을 가끔 적게, 가끔은 많이, 무게만 달리해가며 내려놓지 못할 뿐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나아지는 것 같은 조짐이 보이더라도 그 조짐을 놓치게 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울감은 나에게 당연한 존재고, 내 삶과 우울은 뗄 수 없는 단어라고 느끼게 된다는 뜻이다. 조금 나아지나 싶어도 아주 작은 실패라도 겪으면 금방 자기혐오와 좌절감에 빠져 '내가 우울할 이유 100선'을 만들어 더욱 우울해지려고 용을 쓴다.
이렇게 살던 내 삶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 18살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