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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정 Apr 26. 2023

우울의 시작

초등학교 5학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면, 믿어지는가? 열두 살의 나는 그랬다.

   진단받아본 적은 없지만, 나는 내가 언제 우울증을 처음 겪었는지 안다. 그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나와 친했던 친구 두 명이 있었는데, 이 친구들은 같이 있으면 사이가 좋고, 따로 있으면 앙숙과도 같았다. 나는 그 사이에 껴서 이도저도 못하고, 서로 욕하는 것만 들어주기 바빴다. 지금의 나라면 "너희끼리 해결해."라고 했겠지만, 그때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현명한지 몰랐다. 다만 친구들의 험담을 들으며 맞장구치지 않는 것으로 내 마음을 대신했다.

   두 친구들 사이에 끼어 지쳐가던 어느 날, 우연히 그 둘이 만나면 나를 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원인을 그 친구들이 아닌 나에게서 찾으려 했다. 나만 잘하면 두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되고, 셋은 둘도 없는 사이가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친구에게 "나 어떤 점이 별로야? 고치고 싶어서."라고 물었다. 그 친구는 '너에게 별로인 점은 없어'라고 대답해 줬다. 하지만 당시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만 같아서, 그 친구가 내 별로인 점을 말할 때까지 계속해서 내 단점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가 이렇게 답했다.

   "난 정말 너에게 단점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네가 그렇게 궁금해하니 말하자면, 네가 그렇게 '뭐가 별로냐'라고 묻는 게 별로야. 그냥 나랑 같이 다니자. 왜 그렇게 힘들어해."

   그렇게 말해준 친구에게 고마웠다. 하지만 결국 그 친구랑은 다니지 않았다. 친구에게 폐를 끼칠 것만 같았다. 분명히 나에게 문제가 있는데 친구가 나를 생각해 숨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정도로 나를 믿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문제가 없을 리가 없다.'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이 안 좋은 습관으로 인해 내 상태는 더욱 나빠져갔다.

   이 문제를 가족에게 말한다면, 가족에게 큰 짐을 지우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에게 그 일들을 숨기고 매일 밤 동생들과 함께 자는 그 방에서 숨을 죽여가며 울었다. 나는 규모가 그다지 큰 초등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웃음이 많았던 나는 거의 웃지 않게 됐다. 억지로 웃는 얼굴이 어색해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 두 명의 친구들은 나에게 같은 중학교를 가자며 1,2,3 지망 학교를 통일하자고 했다. 나는 '그러자'라고 말하고 전혀 다른 학교를 썼다. 그 친구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 처음으로 심리검사를 경험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검사였는데, 대부분의 학생이 그 시간에 수업을 하지 않아 좋아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 심리검사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두려움이자 기회였다.  심리검사 질문지에 솔직하게 답변하면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해야 할게 뻔했다. 이것은 나에게 '남에게 내 짐을 지우는 일'이면서도, '이 끝없는 듯 한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솔직하게 작성하기로 마음먹었다.

   검사 결과를 보고 놀란 선생님은 다음 날 체육수업을 듣고 있는 나를 따로 불러내 상담을 하셨다. 나는 "부모님께는 비밀로 해달라"는 말로 입을 뗐다. 처음으로 그렇게 남 앞에서 울며 얘기해 봤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린아이가 혼자서 견디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진다. 14살에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힘듦을 털어놓았다는 건, 그전까지는 한 번도 남에게 힘든 티를 내 본 적이 없음을 뜻한다.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3년간 외롭게 자기혐오와 우울에 갇혀 살았던 것이다. 이후 나는 차츰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할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3년간의 외로움이 금방 씻겨나가지는 못했다. 열두 살에 짊어지기 시작한 우울감을 가끔 적게, 가끔은 많이, 무게만 달리해가며 내려놓지 못할 뿐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나아지는 것 같은 조짐이 보이더라도 그 조짐을 놓치게 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울감은 나에게 당연한 존재고, 내 삶과 우울은 뗄 수 없는 단어라고 느끼게 된다는 뜻이다. 조금 나아지나 싶어도 아주 작은 실패라도 겪으면 금방 자기혐오와 좌절감에 빠져 '내가 우울할 이유 100선'을 만들어 더욱 우울해지려고 용을 쓴다.

이렇게 살던 내 삶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 18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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