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80등이 전교 40등이 되는 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나는 1년이면 충분했다.
중학교에서는 중상위권에서 유지되던 성적이 고등학교에 올라오니 바닥을 쳤다. 특히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우리 지역에서 공부에 대한 열의가 있는 학생들이 지원했는데,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1학년 내내 내 성적은 전교생 200여 명 중 170-180등에 머물렀다. 반에서 거의 꼴찌에 가까운 등수였다. 특히 수학 성적이 심각했다. 모의고사 1,2번 문제(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풀고 나면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수학에 재능이 없다고 단정 짓고, 수학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결국 1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보고 나니 내 뒤에는 네 명 밖에 안 남았다. 전교에서. 사실상 더 떨어질 성적도 없었다. 수학 등수를 보고 충격을 받은 나는, 이렇게 해서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고, 최소한 기본적인 문제만이라도 풀 수 있도록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쯤 나와 같이 다니던 친구의 수학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다니던 학원 덕이었다. 나는 그 친구를 따라 생전 처음 수학 학원을 등록했다. 선생님은 나 같이 기초도 모르는 학생을 가르치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가끔 말을 격하게 하셔서 기분이 나빠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성적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던 것은 아니었다. 딱 학원에서 한 만큼 이해했다. 학원 숙제도 그다지 성실히 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 숙제를 하던 방식이 기억에 남는다. 원칙은 이랬다.
1. 선생님은 우리 문제집에서 답안지만 빼서 가져가고, 몇 페이지를 풀어 올지를 정해준다.
2. 우리는 문제집을 보고, 공책에 각자 문제풀이를 적어온다. (=숙제)
3. 학원에 와서 답을 체크한다.
4. 틀린 문제는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시고, 우리는 그 문제를 다시 푼다.
하지만 전교 꼴등에 가까웠던 성적을 가진 학생이 이렇게 성실할리 없었다. 숙제를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다가 인터넷에서 그 문제집의 답안지를 보며 문제풀이를 베꼈다. 들키면 안 되니, 몇 개는 모르겠다고 체크하고, 몇 개는 일부러 틀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선생님께서는 다 아시면서 봐주셨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올랐다. 학원 수업 덕도 있었지만, 문제풀이를 워낙 많이 보니 그 문제풀이법을 외워버리고, 다른 문제에 적용할 수 있게 된 것도 있었다. 덕분에 내 수학 성적은 점차 중위권에 진입하게 됐다. 당연한 얘기지만 수학 성적이 조금 오른다고 전교 등수가 그렇게 높게 뛰지는 않았다. 이건 그저 '어, 나도 하면 되긴 되나 보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계기에 불과했다.
어중간한 수학 성적과 여전히 바닥을 치는 다른 과목의 성적을 가지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됐다.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 첫 모의고사를 치르고 성적이 나왔을 때 즈음으로 기억한다.) 지리 선생님이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얘들아, 안타깝지만 그게 너희의 수능 성적이 될 거야. TV나 인터넷에서 나오는 '전교 꼴등의 기적', '100등을 올린 학생의 이야기'는 매년 한 두 명 나올까 말 까야. 1%도 안 된다는 말이지. 차라리 지금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교를 찾아보는 게 좋을 거다."
아직도 이 이야기를 왜 하셨는지 잘 모르겠다. 성적이 좋은 친구들을 더 좋은 성적으로 이끌기 위함이었을까? 아무튼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수긍하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100등을 올리는 그 1%, 한두 명 안에 들 수 없다고 생각했지? 내가 그 '한두 명'이 되어버리면 되는 일인 걸!'
그렇게 마음가짐을 가지고 나니, 공부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가능성이 0퍼센트가 아닌데 도전조차 하지 않는 것은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례가 있다는 건, 나도 그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1퍼센트를 기회라고 봤다. 마침 수학 성적도 꾸준히 오르고 있으니, 다른 과목도 그런 식으로 올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기초부터 알아야 이해가 된다, 수학학원 선생님이 항상 강조하던 말이다. 모든 과목을 기초부터 공부했다. 잘 모르겠으면 선생님이나 주변 공부 잘하는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처음엔 아주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게 창피했지만, 그 얄팍한 감정이 내가 몰랐던 문제를 이해하게 되는 성취감과 재미를 이길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가 되자, 나에게 문제를 물어보는 친구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그 친구들은 1학기 때의 나처럼 기초가 부족했던 친구들이었다. 나는 오히려 공부를 아주 잘하는 친구들보다 그 친구들을 더 잘 이해시켰다. 그들에게 어떤 기초지식이 부족했는지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원래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내 경험으로만 봤을 때, 기본적인 것은 알 거라고 생각하고 알려준다. 물어보는 입장에서는 '왜 그렇게 되는 건지'까지 물어보면 나를 무식하다고 판단할까 두려워 더 질문하지 못한다.) 친구들에게 알려주면서 내 수학 성적은 더 잘 오르게 됐다.
하지만 내가 성적을 올리고 싶었던 강력한 동기가 부족했다. 아무리 성적을 올려도 전교 80등 정도에 머물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원래 지망하고자 했던 '중어중문학과'가 과연 내가 진짜 원하는 학과인지 고민했다. 결론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5살 때부터 중국어를 해왔다.) 중국어를 했기 때문에, 그것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착각했을 뿐이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뭔지 고민했다. 그러다 학교에서 보여준 영화, '블랙'을 보고, 연기가 하고 싶음을 깨달았다.
연기로 유명한 학교는 모두 서울에 있었다. 위치만 서울이 아니라, 이름만 대도 다 알 만한 학교였다. 나는 연기과에 지망하기 위해서 실기 준비가 필요한 사실도 모른 채, 연기를 하고 싶은 열망만 가지고 공부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가져본 꿈이었다. 성적을 올리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밤을 새워도, 몸이 아파도 공부를 놓을 수 없었다. 잠시 놀고 싶어 져도 '내 꿈을 위해서 이 정도는 감내할 수 있어.'라고 되뇌며 공부했다. 졸리면 샤프로 손등과 허벅지를 쿡쿡 찔러가며 공부했다. (이 방법은 추천하지 않는다. 혹시 수험생이 본다면 따라 하지 말길.) 나는 그 해 마지막 시험에서 수학 성적으로 문과 등수 4등을 이뤘다. 그때 나는 '지금 정도의 성적이면 그 학교를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고, 정확한 등급컷을 찾아봤다.
아뿔싸, 연기과는 성적만 보는 학교가 없었다. 지금 보면 당연히 이것부터 찾아봤어야 했는데. 당시 내 성적을 밝혔으니 알겠지만 그때는 입시에 대해 워낙 몰랐다. 내 의지는 완전히 꺾였다. 다시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할 때와 앉아 있는 시간은 비슷했지만 성적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내 성적은 문과 전체 20등대에서 40등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여차저차 3학년이 되고, 성적은 다시 그때처럼 오르지 않았다. 수능날에 가까워졌을 때 즈음에 다시 열심히 공부했지만 당연히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심지어 수능 날에는 평소 나오던 성적보다 한 등급이 낮게 나왔다. 선생님은 나에게 재수를 권했지만, 나는 그 성적도 내 실력임을 인정하고, 성적에 맞춰 학교를 찾았다. 연기는 포기했으니 그다음으로 좋아하던 미술과 관련된 과를 가고자 했다. '패션 디자인과'가 눈에 띄었다. 한 개를 제외하고 모든 학교를 패션과 관련된 학과로 지망했다. 명지전문대학교를 제외한 모든 학교에 합격했다. 나는 그중 경기도에 있는 한 대학교를 선택해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