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OT 날부터 운이 좋았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친해지고, 그 뒷자리에 앉은 친구들과도 친해지고... 입학을 하자마자 같이 다닐 친구들이 생겼다. 금방 친해진 그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술자리를 가지고 하는 날들이 즐거웠다. 같은 과 친구들만이 아니었다. 우리 학교는 특이하게 입학생 전체 단톡방이 있었는데, 거기서 친해진 친구들과도 틈만 나면 놀러 다닐 정도로 신나는 신입생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과 무리의 친구들 중 한 명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와 그 친구가 함께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로 한 날, 사장님은 우리를 저녁 일곱 시쯤에 불렀다.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사장님은 돌연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직원을 구하려 했다."라고 하며 우리를 거절했다. 별 수없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두운 골목이 보였다. 나는 어렸을 적 어두운 골목에서 낯선 사람이 나를 쫓아왔던 기억 때문에 어두운 골목을 잘 다니지 못한다고, 밝은 길로 가자며 친구를 큰길로 인도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괜찮아. 내가 있잖아."라며 나를 그 길로 끌고 갔다.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가 지켜준다고 했지만, 내 팔을 강하게 잡아끌던 그 친구의 말을 믿기는 어려웠다. 다행히 큰일 없이 그 골목을 빠져나와, 다시 기숙사로 가는 큰 길이 나왔다. 나는 어서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 순간부터 친구가 불편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길가에 있는 벤치를 보더니 털썩 앉으면서, "들어가기 싫다. 잠시 앉았다 가자."라며 한 번 더 내 팔을 잡아끌었다. 팔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그 친구는 내가 장난을 치는 줄로 알았던 건지, 씩 웃으며 더 세게 내 팔을 잡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친구와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과 내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게 "너희 둘이 사귀어?"라던가, "둘이 무슨 관계야?"라고 묻는 일은 더 잦아졌다. 대학 첫 MT 날, 나는 잠시 바깥으로 나와 좋아하던 오빠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따라 나왔다. 통화 내용을 들었는지, 그 친구는 내게 얼굴을 들이대며 "누구야? 누군데?"라고 물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오빠야!"라고 말했고, 그 친구는 당황한 얼굴로 건물로 돌아갔다. 그날 건물에 있던 17학번 선배의 말로는, 그 친구가 그렇게 돌아가고 나서 침울한 채로 있으니 선배들이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그 친구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며칠 후, 같이 다니던 무리 중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네가 그렇게 어중간하게 구니까, 00 이가 오해하잖아. 싫으면 싫다고 해. 그게 뭐야, 어장도 아니고." 황당했다. 나는 분명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음을 얘기했고, 위의 사건 이후로 그 친구를 피해 다녔는데. 그래서 나는 나를 좋아하던 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는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래서 앞으로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지나치게 하고 다니거나, 지난번 같은 행동들은 지양해 줬으면 좋겠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내가 너를 안 좋아했으면 어쩌려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냐"면서 화를 냈다. 그리고 그 친구와는 점점 멀어졌다. 정확하게는 그 친구와 친했던 학과 친구들과 모두 멀어졌다.
그럴수록 나는 다른 과 친구들과 더 자주 만났다. 그리고 대학 첫 연애도 시작했다. 학과 친구들과 멀어진 상황에서 나는 연애 상대에게 점점 집착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약속이 있을 때면 하루 종일 우울해하기 바빴다. 과제도, 친구도, 가족도 모두 잊어버리고, 그 사람과의 관계에만 신경을 쓰니, 성적은 고사하고 나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 친구들도 모두 같은 과 친구들이 있으니 내가 그 친구들에게 도움을 바라기도 염치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대학 1년을 보냈다. 나는 다시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의 내가 되어 매일 몰래 울었다. 기숙사 룸메이트가 있는 날이면 숨을 죽이며 울고, 없는 날에는 펑펑 울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내다 보니, 이렇게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학년이 되고, '계속 이렇게 혼자 다니며 힘들어할 수는 없어'라는 생각에, 19학번 후배들과 새롭게 친해졌다. 교직이수를 하며 나를 챙겨주는 고마운 친구도 만났다. 그러면서 첫사랑과 헤어졌다. 처음으로 그렇게 깊게 좋아해 봐서 그랬는지, 대학교 2학년을 지내는 동안 나는 이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그럴 뻔했다.
교직이수를 같이 하던 그 친구는 나를 거의 매일 불러냈다. 나는 그 친구와 같이 식사도 하고, 그 친구의 자취방에서 자기도 했다. 내가 과제를 하지 않고 있으면, 그 친구는 어김없이 나를 불러내, 과제를 안 하면 어떡하냐며 핀잔을 주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부분은 도와주기도 하면서 나를 회복시켰다. 나는 그 친구 덕에 점차 학교에 다시 적응하게 됐다. 가끔 우울해져도, 연락할 사람이 있음에 위안을 얻었다.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도 다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중학교 때부터 친했다가 내가 첫사랑에게 너무 빠지는 바람에 멀어졌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중 한 친구가 내 생일에 전화를 걸어왔다. "너는 평생 우리랑 연락 안 하려고 작정했냐?". 나는 그 친구의 평소 같은 말투에 그만 눈물을 흘렸다.
이 친구들 말고도 나에게 손 내밀어 준 사람이 많았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감사한 만큼 다시 열심히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나를 완전히 다시 회복시켜 줄, 팬데믹 사태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