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유정 Aug 30. 2024

홍차와 꽃부리 5화

동질감

   백영은 홍차의 말에 대꾸하려 했지만, 그때 다른 연구원이 그를 호명하는 바람에 대화가 끊겨버렸다. 앞으로 자주 마주쳐야 한다는 건, 두 인간 모두에게 상당한 피로였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가 필요했다. 백영은 '진짜 인간'이 되고 싶었고, 돈이 필요했으며, 홍차는 다연과 전 애인이 후비고 간 상처를 메꿔야 했다.


   며칠 뒤, 홍차는 연구 투자자들과 미팅을 가졌다. 이브모즈 연구소 소장은 책임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오로지 돈을 바라보고 연구소를 차렸지만, 생각보다 좀비사태가 길어지면서 다른 사업에 손을 대려던 차였다. 홍차는 그런 소장에게 등을 떠밀려 미팅에 참가했다.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투자자였지만, 소장은 투자자 측에서 제시한 거액의 금액을 보고 연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홍차를 내보냈다.


   미팅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투자자들은 수상한 미소와 눈짓을 지었다. 그리고는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때 소장님 하고는 한 번 얘기를 했었는데 말입니다. 이걸 부탁드리려고......."


   건네받은 것은 서류봉투였다. 간단히 칠해진 풀칠을 가볍게 뜯어, 서류를 꺼내 흝었다. 좀비 성매매 사업 본격화를 위한 약물 개발을 제안한다는 내용이었다. 홍차는 구겨지려는 미간과 방금까지 씹어 삼켰던 저녁이 역류하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이건 아직 전달받지 못 한 내용이라서요. 소장님께 한 번 다시 확인을 해봐야......."


   홍차의 말을 끊고,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너무 하얘서 창백하게 느껴지는 낯빛, 탁한 눈, 그와 상반되게도 검고 긴 윗옷 하나를 겨우 걸친 남자.

   

   백영이었다.


   투자자 중 한 명이 백영을 자연스레 그의 옆에 앉혔다. 백영이 앉으면서 그가 입은 옷이 자연스레 올라갔다. 허벅지 안쪽이 보였다. 얼굴과 마찬가지로 차갑고 하얀 모양새였다. 백영은 조금 굳은 표정을 하고 홍차를 모른 체 했다. 홍차도 굳이 그와 일면식이 있다는 것을 티 내고 싶지 않아 입술을 꽉 물었다.


   "홍차씨가 이런 곳에 익숙지 않다는 건 들었어요. 그래도 한 번 직접 보시면 다르지 않을까 하고요. 들어오실 때도 생각보다 음침해 보이지 않았죠? 성매매도 합법화된 마당에, 저희가 부탁드리는 것도 처음엔 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상품성이 꽤 높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좀비장애인들은 진짜 인간과 다르게 기존 약물이 통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좀비에게도 잘 들 만한 약물 개발을 맡아주셨으면 하거든요."


  사실 소장이 홍차를 미팅에 보낸 건 그를 설득하기 위함이었다. 투자자는 현재 좀비 성매매 사업을 시행 중인 회사의 대표들이었고, 좀비 백신 연구에 가장 기여도와 이해도가 높은 그를 다른 연구에도 사용하려 했다. 홍차는 순간 백영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고용인에게 직원으로서가 아니라, 서비스, 혹은 상품으로 취급받는 기분. 고용인의 재산을 불리기 위한 수단이 되는 느낌.


   홍차가 아무 말 않자, 백영을 옆에 앉혔던 이가 백영에게 걸쳤던 옷을 벗을 것을 명령했다. 백영은 고분고분했고, 백영의 맨 몸을 본 홍차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사람에게, 혹은 사람이 쥐었던 무엇인가에 긁히고, 찢기고, 맞은 상처가 가득했다. 겨우 참았던 구역질이 결국 올라왔다. 투자자들은 그런 홍차를 우려하는 흉내를 내며 돌려보내면서도, 제안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을 당부했다. 소장과의 친분과, 홍차의 위치를 강조하며.

이전 05화 홍차와 꽃부리 4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