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확진판정 후 아무에게도 전화하지 않았다. 누구의 목소리라도 들으면 금방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당시 나는 몇 주변인들에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척, "갑상선암이면 천천히 취업해도 되서 걱정 없겠다. 오히려 잘 된 일이지, 뭐."라고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당시 자취를 하던 나에게, 하교를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은 마치 깊은 물에 잠겨 한 숨도 쉬지 못하고 가라앉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의 매일을 울며 보냈다. 한 달을 넘게 울다보니 세상을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왜 하필 나여야 하지? 내가 뭘 잘못했지?'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며 나를 더 깊은 물 속으로 데려갔다. 당시 노트에는 이런 말을 쓰기도 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가만히 있는데 나만 붕 뜬 기분이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첫 수술 날짜는 22년 4월 초로 잡혔다. 수술 날짜가 다가올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됐다.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던 술자리를 줄이고(술자리를 가지더라도 음주는 하지 않았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다. 우울에 갇혀있던 생각이 점차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암이 기회인 것처럼 말해서인지,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이건 기회라고, 수술 후 회복하는 기간 동안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거라고 믿게 됐다. 그 때 말의 힘을 느꼈다.
무사히 수술과 입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수술 후유증으로 약 2주 정도를 고생했다.
금방 고갈나는 체력에, 소리 비슷하게 나지도 않는 목소리가 나를 간지럽혔는지, 몸이 근질거려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집에 있는 텔레비전으로 유튜브를 보는 것 뿐이었다. 한 유튜버가 알고리즘을 타고 계속 내 유튜브 타임라인을 방해하길래 '도대체 무슨 영상이길래 이렇게 알고리즘을 타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그 영상을 처음 본 소감은 - 글쎄, 허무맹랑한 소리를 늘어놓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퍼스널브랜딩, 인스타그램, 경제적 자유, 이것들이 합쳐질 때 어떤 힘이 있는지를 얘기하는 영상이었다.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그 유튜버는 나에게서 잊혀지는 듯 했다.
수술을 끝내고 나니 졸업 동기들이 하나둘씩 취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밀려오는 열등감을 참기가 힘들어졌다. 취업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려던 내 다짐은 수술이 끝난 지 한 달 만에 없던 것이 됐다. 매일같이 취업 포털을 뒤졌다. 친환경 기업 중 채용 공고가 올라온 회사의 리스트를 작성해서, 출근하고싶은 회사 순으로 정리하고 지원했다. 결과는 세 개 중 두 개 회사 합격. 그 중 규모가 조금 더 크고, 내가 환경에 대해 지향하는 가치관과 방향성이 일치하는 회사로 입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