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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하 Aug 25. 2023

서랍 속 낡은 보석: '거상'과 '군주 온라인'

게임에서의 경제 체계: '거상'부터 '군주 온라인'까지

 초등학생 때, '조이온'이 2001년에 제작한 '임진록 2 조선의 반격'을 푹 빠져 플레이했습니다.

게임 내의 배틀넷에 가입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인지 제 집 주소를 알게 된 회사로부터 CD 한 장이 도착했습니다. 그 CD에는 2002년 '조이온'에서 개발한 신작 MMORPG '임진록 온라인 거상'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게임은 미래에 '부분 유료화'를 최초로 도입한 시스템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온라인 게임도 CD 패키지로 설치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인터넷 다운로드로 게임 클라이언트를 받는 것도 가능했지만, 당시의 느린 인터넷 환경을 감안하면 CD로 설치하는 것이 훨씬 빠르게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보내진 그 CD의 특별함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습니다.


거상 CD : 루리웹 작성자 - 국어대왕


학창 시절, 저는 '조이온'이 제작한 임진록과 거상을 열심히 플레이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1세대 게임 개발자 중 한 명인 '김태곤'씨의 역사 게임인 충무공전, 임진록, 천년의 신화, 거상, 군주 온라인, 아틀란티카, 삼국지를 품다 등을 좋아했습니다. 그가 속해 있던 '엔도어즈'에서 개발한 '군주'에 큰 감명을 받아 그 회사에 입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군대와 대학을 거치며 시간이 흘러 해당 회사나 개발팀의 어려운 상황을 알게 되었고, 현실적인 생각으로 입사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서른이 넘어도, 제가 사랑했던 '천하제일상 거상'과 '군주 온라인' 두 거작을 잊지 못합니다. 이 두 게임은 전투보다는 '경제'에 집중하여 개발되었습니다. '거상'의 배경은 조선 팔도의 교역입니다. 예컨대, 한양에서 짚신을 50냥에 구입해 대구에서 150냥에 팔면 100냥의 이익이 생깁니다. 그러나 한양에서 많이 구매하면 가격은 올라가고, 대구에서 많이 팔면 그 가격은 떨어집니다. '근'이라는 무게 단위와 파티의 짐꾼들의 '힘' 스탯에 따라 물건을 나르는 수량도 정해집니다. 이 가격은 서버 전체에서 공유되어, 한 교역로가 인기 있으면 다른 플레이어들도 그 교역로를 이용하게 되며, 그 결과로 이익은 나눠집니다. 플레이어들은 종종 자신만의 교역 경로를 비밀로 하거나, 최대 이익을 위해 판매 경로를 미리 계획했습니다. 1999년에 대한민국에 수입된 코에이의 '대항해시대4'의 영향을 받아 임진왜란 직전의 배경으로 아시아 대항해시대를 온라인 버전으로 재해석한 것이었습니다.


천하제일상 거상


'천하제일상 거상'은 전쟁을 통해 성을 획득하는 '리니지'와는 다르게, 투자를 통해 마을을 소유하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각 마을의 관청에서는 투자를 할 수 있는데, 거상의 게임 시간으로 한 달(실제로는 24시간) 동안 최고 투자자로서 자리를 지켜내면 그 마을의 소유권을 얻게 됩니다. 투자 시 마을에 투자된 총 금액의 2%에서 10%까지 선택해 투자할 수 있습니다. 내 투자금이 총 투자금의 1% 아래로 떨어진다면, 해당 투자금은 소멸하게 됩니다. 투자는 게임 시간 기준으로 한 달에 한 번만 가능합니다.

투자의 목적은 다양한데, '잡투'는 일반적인 투자, '수투'는 성에서 나오는 배당금으로부터 수익을 얻기 위한 투자, '공투'는 성을 소유하기 위한 공격적 투자, 그리고 '방투'는 공투를 방어하기 위한 투자를 의미합니다.

최고 투자자가 되면 성 내의 공지사항 수정이나 마을 발전 등의 권한을 갖게 됩니다. 상가 건설과 강화를 통해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이 공성전에 의해 함락된다면 성의 모든 시설이 파괴되기 때문에 투자하기 전에는 전반적인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최고 투자자가 아니더라도, 마을 내에서 투자한 지분에 따라 일정한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플레이어들은 활발한 교역로를 갖는 마을에 투자를 고려합니다. 그리고 투자금을 회수할 때는 투자한 금액의 1/3만큼만 돌려받기 때문에 어느 마을에 투자할지는 신중한 결정이 필요합니다.


군주 온라인


2004년 1월, '엔도어즈'는 '군주 온라인'이라는 게임을 선보였습니다. 기존 '거상'의 임진왜란 배경의 무거운 톤에서 벗어나, 어린 아이들과 여성 유저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밝고 캐주얼한 톤의 게임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경제 시스템은 '거상'보다 더 복잡하고 세밀하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이 게임에서는 무기, 방어구, 음식, 탈것 등 모든 아이템은 유저들의 제작을 통해 생산됩니다. 사냥을 통해 얻는 것은 완제품이 아닌 재료에 불과합니다. 유저들의 직업은 전투와 제작의 두 가지 주요 분류로 나누어집니다. 예를 들면, '도끼'를 사용하는 '부술' 기술을 통해 전사로 활동하면서도 '말'을 교배하거나 양성하는 '말 조련술'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유저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아이템은 '장인' 플레이어들에 의해 생산됩니다. '거상'에서는 특정 '장날'에만 마을의 아이템 수량이 변동되지만, '군주 온라인'에서는 유저들이 직접 시세를 안정화하거나 독점을 통해 가격을 조절하는 등의 경제 활동이 더 다양하고 활발하게 진행됩니다.


군주 온라인


군주 온라인'의 마을 소유와 경영은 '주식' 시스템을 통해 '거상'보다 더욱 세밀하게 다루어졌습니다. 마을의 주인은 '대행수'라는 타이틀로 불리며, 마을의 주주들은 주주총회를 통해 대행수를 선출할 수 있습니다. 대행수는 마을의 인테리어 변경, 경비용 소환수 지정 등의 권한을 가지게 됩니다. 주주들은 마을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정 부분을 월급으로 받게 되므로, 효율적인 경영이 중요하며, 그에 따라 주가도 변동됩니다. 잘못된 경영으로 대행수는 해임될 수 있고, 심각한 경우 마을은 파산하기도 합니다. 마을은 '상단'이라는 이름으로 길드의 역할까지 수행하며, 경제와 커뮤니티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합니다. 실제로 '거상'에서는 마을에 투자된 총 금액의 2%를 냈어야 했으나, '군주 온라인'에서는 저렴한 가격의 주식으로 많은 유저들이 마을 경영에 참여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특정 레벨의 최소 조건만 충족하면, 서버를 통치하는 군주 선거에 투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군주 온라인'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서버 내에서의 군주 선출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군주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후보 등록과 50 레벨 이상의 유저 30명의 추천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선거 유세를 진행해야 합니다. 30 레벨 이상의 유저들이 투표를 통해 군주가 결정되며, 선출된 군주는 특별한 권한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 육조판서 임명, 전용 의복 착용, 그리고 모든 마을 배당금의 1% 획득 등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Microsoft Bing

지금까지 수많은 게임들이 유저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복잡한 경제 시스템이나 사회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복잡한 시스템이 개발사의 초기 의도에 따라 설계된 것은 아닙니다. 대신, 유저들이 그 게임에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되면서, 비공식적인 애드온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게임 내 경제나 사회의 흐름을 스스로 조절하게 됩니다. 이러한 유저 주도의 활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유저들의 높은 참여와 애정을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슈퍼마리오나 젤다의 전설 같은 일본의 클래식 게임들에 감명받아 자라온 개발자나 기획자들은 그 영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게임을 창조해 나가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거상이나 군주 온라인처럼 경제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게임에 영향을 받은 현대의 게임 개발자나 기획자들이 그 영향 아래 새로운 경제 시스템 기반의 게임을 설계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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