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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약 Dec 22. 2021

아프니까 환자다 1 - 제가 돼지에요?

약국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아프니까 약을 찾으러 온 것이겠지. 그런데 몸이 아픈 것인지, 정신이 아픈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들도 꽤 보인다. 그 중에서도 대변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민한 축에 속한다. 아무래도 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지속되는 복통도 있지만 묵직한 느낌이 계속 사로잡을 테니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모양이다. 


"제가 돼지에요? 이걸 다 먹으라고요?"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변비 환자가 병원에 갔다가 듀파락이지시럽 180포 처방을 받았다. 하루 두번, 3개월분이다. 듀파락이지시럽은 부피가 꽤 크다. 한포에 15mL씩 되어 있는데, 무려 180포라... 도매상에서 약국으로 오는 듀파락이지시럽은 100포가 한 박스이기에 그 부피가 작지 않다. 


이번 처방을 가져갈 수 있게 큰 종이쇼핑백에 약을 넣어주었다. 그런데 돌아온 질문이...."돼지!"라니!!!!! 


참고.

듀파락이지시럽은 변비 환자들에게 흔하게 처방되는 약이다. 락툴로오스가 주 성분으로 물을 끌어들여서 변을 쉽게 보게 하는 약이다. 위와 장에서 약 성분이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물을 끌어들여서 부드럽게 변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약은 영유아에게도 흔하게 처방되는 약이며, 노인 변비에도 자주 처방되는 비교적 안전한 약으로 알려져 있다. 


당황스럽다. 이건 흡수되는 것이 아니고, 대변을 보기 편하게 만들어주는 약이라고 설명을 해도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약을 먹고 살찌면 어쩌냐고 소리부터 치는 환자라니! 


아마도 다이어트에 수차례 실패한 환자가 아닐까? 혹시나 싶어서 다이어트 약 복용 중이냐고 물었다. 역시나! 다이어트 약을 복용 중인 이 환자는 여러번 요요 현상으로 심하게 마음 앓이를 하는 중이였다. 약 80kg 의 체중을 가진 이 여성은 여러번 시도한 다이어트 실패와 함께 대장의 배변 활동도 망가진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미 이 여성환자는 펜터민 성분과 펜디메트라진 성분의 다이어트 약을 오랜 기간 복용했고, 이 약제에 대한 의존성이 상당히 생긴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플루옥세틴 성분의 항우울제를 다이어트 목적으로 복용했던 것 같다. 현재 상태는 다이어트 실패로 인한 우울증까지 겹쳐서 정신과에서 에스시탈로프람 성분을 비롯한 여러가지 정신과 약제를 처방받고 있는 중이었다. 


환자를 설득해서 약제를 잘 복용할 수 있도록 한 이후 보내긴 했지만, 은근 다이어트 실패 환자들이 이런 식으로 등장하는 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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