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Sep 28. 2024

내가 예쁘다고?-예쁜 말이 예쁜 사람을 만든다

누군가에게 해준 예쁜 말은 그 사람에게 예쁜 인생을 선물한다.

잘 살펴보면

나도 예쁜 데가 있는 것 같다

코도 오뚝하고,

눈도 초롱초롱하고,


겉표지에 분홍빛 벚꽃이 그려진 그림책 내가 예쁘다고? 에서 내 마음에 꽤 오래 남았던 문장이다.  같은 반 아이에게 우연히 너 참 예쁘다. 라는 말을 듣고 나서 온 세상이 분홍빛으로 물들어버린 한 남자아이의 귀여운 에피소드를 담은 귀여운 그림책.

 제 아무리 까까머리인 남자 아이라도 예쁘다는 말을 듣고 나서 그 말이 기분좋게 온 몸에 스며 밥도 맛있고 좋은 꿈을 꾸며 내내 행복해했듯이,예쁘다 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참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마법의 말인 것 같다.  내게도 그 말은 언제 들어도 참 기분을 설레게 하는 말이다. 20대를 넘어 30대가 되며 그 예쁘다는 말을 듣는 빈도가 현저히 줄어서인지 가끔 듣는 그 말은 어쩐지 어린시절 개울가에서 잡은 올챙이를 두 손 꼭 그러모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듯 꼬옥 쥐고 싶은 말일 정도니까.

 이젠 그말을 4살 딸을 통해 종종 듣곤 한다. 딸을 데리고  아파트나 상가를 다니다보면 주변 할머니들로 부터 딸래미 참 예쁘게 생겼네 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말을 들으면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몸을 배배 꼬는 딸. 역시 예쁘다는 칭찬은 남녀노소 세대를 불문하고 누군가에게 기분좋게 통용되는 만국공통의 용어인가 싶다.

 책의 주인공도 친구에게 우연히 들은 예쁘다는 말로 인해 자신을 다시 보게 된다. 전까지는 별 생각 없던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자세히 뜯어보며 괜스레 미소짓기도 하고, 누군가의 예쁘다의 말로 한순간에 자신이 예쁜 사람으로 수직상승한 기분을 맛본다. 그림책 속 남자아이를 보니 나도 작년에 한 선생님과의 점심자리에서 들은 기분좋은 말이 일순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날 오랜만의 만남에서 그 선생님은 꽤 멋진 명품 옷을 입고 나오셨는데 그 모습이 참 멋스러워 한껏 칭찬세례를 퍼부었다. 남편이 큰 맘 먹고 생일 선물로 사준 것이라고 했다.  "옷이 너무 멋스러워요, 명품옷은 역시 아무나 소화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라고 부러움을 가득 담은 눈빛을 그 선생님께 비추어보였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손사래를 치시며

 "자기는 뭘 입어도 명품같아 보여, 얼굴이며 몸매며 참 예뻐서 어떤 옷이든 명품처럼 소화해내는 걸? 자긴 사람 자체가 명품이야"

 늘 내게 기분좋은 칭찬을 아끼시지 않는 분. 그날은 내게 오래도록 각인될 기분좋은 칭찬의 향을 내 몸에 잔뜩 뿌려주셨다. 돌아서서 나오면서도 나는 그 말을 품 속에 고이 품고 오는 내내 그 말이 귓전을 맴돌며 기분좋은 향취를 내주었다. 그날따라 돌아오는 차안의 공기며 집안의 공기가 포근하게 느껴질정도로.

 다음날 아침, 갑자기 선선해진 날씨에 입을 옷이 없다고 투덜대다가 문득 어제 들은 그 말이 떠올랐다. 내 자신이 명품같다는 그말. 그 말에 홀린 듯 옷장 속에서 적당한 옷을 빼내어 잘 맞추어 입으니 꽤 근사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림책 속 까까머리 남자아이가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예쁘다고 느끼듯. 그전에는 아무 생각없이 입었던 옷인데 어제 들은 그말을 불러내오니 정말로 내가 명품 옷을 입은 것 마냥 근사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 들은 칭찬향수가 빛을 발했던 것. 지금도 그 말은 내게 입을 옷이 없어 옷장을 서성일 때 마다 출근 준비 5분을 단축시키는 마법의 언어다.

 말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다보니 추석 명절날 엄마에게 들은 말이 문득 떠오른다. 친정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엄마 친한 친구 얘기가 나왔다. 엄마 친구는 얼마 전에 사위를 보았는데 s전자에 다니며 돈을 참 많이 번다고 쉴새없이 자랑을 늘어놓더라는 것이다.

 몇 번 듣다가 귀에 딱지가 앉은 엄마는 속으로는 하고 싶은 얘기인 돈이 다가 아니다 라는 말을 꿀꺽 삼키고, "자네가 인품이 훌륭하니 돈 많이 버는 사위를 두었나보다" 라는 듣기 좋은 말로 돌려주었다고 했다. 그 말에 신이 난 엄마 친구는 계절마다 손수지은 농산물을 엄마에게 보낸다고 했다. 상대가 듣기 좋은 말은 어른들에게도 당연히 통하는 법이다.

 얼마전, 일기 검사를 하다가 이런 예쁜 말의 중요성을 절감한 사례가 또 있었다. 음악시간에 노래 부르는 모습이 참 예뻐 "00아 어쩜 그리 고운 목소리와 밝은 표정으로 노래를 잘 부르니, 너 참 예쁘다"라고 흘리듯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 아이는 그 칭찬이 뇌리에 박혔는지 일기장에 그 칭찬을 언급하며 "집에서는 노래부른다고 시끄럽다는 타박만 받았는데 선생님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예쁘다고 칭찬해주셔서 기분좋았다고" 나는 그 문장을 한 동안 응시하며 그 당시 칭찬해준 나 자신이 한없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26명의 아이들과 옥신각신 바쁘게 지내며 매일 칭찬을 할 여유가 없을 때가 많지만 그 이후 나는 일기장에라도 꼭 아이들에게 이 예쁜말을 선물해주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면 그 아이는 그 예쁨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보인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예쁜말이 예쁜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아이들을 통해 느낀다.

 이런 저런 사례를 통해 나는 상대방이 듣기 좋은 기분좋은 말이 주는 큰 힘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내가 받은 기분 좋은 말을 누군가에게도 전달해주며 그 사람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크게 돈들이지 않아도 한 순간에 누군가의 얼굴에 미소를 피어오르게 하는 가장 가성비 있는 행위는 바로 누군가를 향한 예쁜 말. 누군가가 듣고 싶어하는 기분좋은 말이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 누군가가 너무 힘들어 주저 앉고 싶은 순간에 기적처럼 몸을 일으키게 해주는 큰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다시 그림책 속 주인공의 이야기로 돌아와본다. 마지막에 조금 반전이 있는데 알고보니 친구가 벚꽃을 보고 예쁘다고 한 것을 자신에게 하는 말로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상심한다. 한 순간에 그 아이의 분홍빛 세상은 잠시 잿빛으로 변하는 듯 했지만,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흐드러지게 만개한 분홍빛 벚꽃을 보고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속상할법도 한데 이내 꽃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그 것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그 아이. 작가는 어쩌면 예쁜 것을 보며 예쁘다고 인정하는(자신이 아니라 질투할 법도 하지만), 그 아이의 마음이 진짜 예쁘다는 것을 책의 마지막에서 알려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예쁜것을 보고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예쁜 사람이니까.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 그림책이 시사하는 점은 분명 있다.

 누군가가 무심하게 툭 던진 예쁘다는 한 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예쁘다고 하면 그 사람의 인생은 그 전과는 다르게 예쁜 인생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그만큼 누군가에게 들은 한 마디는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각인될 예쁜말을 남겨보는게 어떨까? 들을 때 뿐 아니라 듣고 나서도 오래도록 여운이 남고 오래도록 내 몸 속 피와 살이 되어 떠돌 힘이나는 그말을. 그래서 그 전과는 좀 더 다른 인생이 펼쳐질 수도 있을 그 예쁘고 아름다운 말을.

 나는 이번 기회에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남편,아이들에게 늘 입속에서만 뱅뱅 돌고 쉽게 꺼내지 않는 그 말을 해주며 그들의 기분을 한껏 추어올려주어야지. 스스로를 멋진 남자,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느낄 수 있게 말이다.

 "당신 참 멋지다, 얘들아 너희들 참 예쁘고 사랑스러워."


이전 07화 새빨간 질투-질투라는 감정에 대응하는 나만의 비법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