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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an 22. 2023

이번 설에는 시댁에 가지 않았습니다.

부자관계,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설날 아침, 우리는 떡국대신 계란볶음밥을 먹었다. 평소에도 자주 먹는 떡국이라 물려하는 아이들때문에 굳이 끓이진 않았다. 평소대로라면 시댁에 가서 추도예배 후 둘러앉아 떡만둣국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설엔 시댁을 가지 않았다. 아니 못갔다는게 맞는 표현인건가?

 설에 시댁을 못간 것은 결혼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설전날 우리는 기름 냄새 나는 명절음식대신 기름에 절은 치킨과 맥주를 먹었다. 명절인데 왜 시댁을 안가? 라고 질문해온다면 그 답을 하기엔 한나절이 걸릴 것이다.

 세달전쯤, 사소하게 시작했지만 눈덩이처럼 커진 사건이 하나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서, 예전부터 가고싶었던 사찰에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첫째는 사찰에 가면 절을, 성당에 가면 기도를 하고 싶어하는 호기심가득한 어린아이이다. 걸어가다 법당안에서 절을 하는 사람들을 반짝이는 눈으로 보더니 자기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이의 눈짓에 손을 잡고 들어가 절을 했다. 아이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해보는 절이었다. 그 모습이 예뻤던지 친정아빠가 사진으로 남겼다. 그때까진 몰랐다. 어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우리에게 벌어질줄은..

 집으로 가는 날, 친정부모님은 직접 재배한 고구마를 알이 굵은 최상품으로 골라 박스 포장 후 시부모님께 가져다주라고 하셨다. 여느때처럼 우리는 올라가는 길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장인어른이 고구마 가져다드리래서 들를게요" 남편의 해맑은 목소리에 뒤이어 들린 아버님의 차가운 한마디"그럴거없다, 우린 고구마 많다 너네 먹어라" 하고 전화가 툭 끊어졌다. 좁은 차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영문을 몰랐던 우리는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고 거기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너네 절에가서 절했다며, 아니 교회다니던 애들이 그럴수 있어? 여태 내려가면 절을 가서 절을 했던거야? 우리 장손은 아직 세례도 안받았는데 말이야"

 그말이 너무 황망하게 들렸다. 전혀 예상치못한 답이었다. 알고보니 친정아빠가 우리 모자의 절하는 모습이 예뻐 아버님과 연락중에 사진을 전송한 것이다.(평소 아버님과 친정아빠는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내신다) 그 사진을 보고 오해아닌 오해를 하신 것. 남편은 그에 대해 최선을 다해 해명을 했다. 오랜만에 나들이겸 절에 갔고, 첫째가 절 해보고 싶다고 한 거라고. 자기는 밖에 있었다고"

 그 한장의 사진이 기독교인 시부모님의 심기를 건드렸고, 교회대신 절을 지속적으로 다닌다는 오해를 낳게 했던 것. 남편의 정성스런 해명에 어머님은 오해를 푸셨고, 이제 아버님만이 남은 상황. 몇분 후 아버님은 같은 내용의 카톡을 남편에게 보내왔고, 그 사진에 대해 납득할 설명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조금 날이 섰던 남편은 설명할 것 없다며, 나들이가서 절을 하고 온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미 마음속에 오해의 실타래를 잔뜩 꼬고 계신 아버님은 그 말이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기셨고 남편의 말에 "아빠한테 말하는 태도가 그게 무어냐"라고 답하며 그들의 대화는 끊어졌다.

 남편은 그날 저녁 잠을 이루지못했다.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고 심장이 벌렁거린다고 했다. 왜 그런 오해를 하게 되신걸까? 그리고 무엇이 그렇게 화나게 만들었을까? 머릿속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때 교회를 다녔지만 현재는 다니지 않고 있고 무교인 상황에 절하는게 무엇이 문제가 될까? 그리고 종교선택권이 있는 아이에게 다짜고짜 "할머니할아버지가 기독교이니 절을 하면 안돼"라도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일을 매개로 꾹꾹 누르고 있던 부자간의 과거일까지 소환되며 일이 눈덩이처럼 더 커져버렸다. 자신의 화를 아들에게 풀어내며 살아온 아버님, 영문없이 아빠의 화를 자식이라는 이유로 고스란히 받아낼 수 밖에 없었던 아들. 한장의 사진이 도화선이 되어 터진 속깊이 꾹꾹 응축되어 있던 부자의 문제, 그 문제는 종교문제보다도 더 복잡다단했다. 섣불리 내가 나설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였다.

 그들의 뼈아픈 관계사이에서 안절부절하시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아빠에게 먼저 다가가라 라는 답만 요구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하지만 그전에도 먼저 다가갔지만 "연락하지 마라" 라는 답변을 받은 아들은 트라우마에 갇혀 그리 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원하는 건 아빠에게 "미안하다" 한마디. 그것으로 과거의 모든 아픔을 보상받고 싶은 것이다.

 그 미안하다 한마디. 아마도 아버님에겐 제일 어려운 한마디가 아닐까 한다. 나이든 부모가 다큰 자식에게 미안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아마도 엄청난 결심을 요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아들의 요구는 끝내 들어지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버님의 내면에 꼬이고 꼬인 오해와 억측의 실타래가 풀리지 않는 이상말이다.  

 지켜보는 나로서 그 어떤 것보다 제일 마음 아픈 건. 바로 아버지라는 따뜻함의 부재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 큰 울타리가 되어준 존재. 누구보다도 따스히 바라봐주고 믿어줘야할 아버지라는 존재에게 적대감을 느껴야 하는 아들의 심정은 어떨까? 감히 상상도 못할만큼 시리고 숨이 막힌다. 무엇이 그들 사이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아버님의 내면에 어떤 장애물들이 있어 아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또한 그를 계속 걸려 넘어지게 하는 걸까? 아버님의 아버님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과거까지 거슬러올라가 의문을 품는다.

 무엇이 아버님으로 하여금 자식을 온전히 사랑으로 품지 못하게 했을까? 자식은 왜 그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하고 속울음만 터뜨려왔을까? 그들의 바깥세계에 사는 나는 이렇듯 수많은 의문부호들로 머릿속을 채울 수 밖에 없어 안타깝다.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우리 세대 아버지들은 가부장제라는 우리 사회의 뿌리박힌 관습을 그대로 체득하며 바깥일을 하며 그저 자식들을 부양하기 바빴고,양육의 모든 책임이 엄마라는 존재에게 일임이 되었기에 자식들과 감정적으로 이해하며 대화할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부자간에 갈등이 생길경우 해결책은 요원하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아버님은 과거의 가부장제 사회 속 아버지에 대한 권위를 벗어던지고, 변해버린 세월 속에서 그저 인간대 인간으로 아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진실된 모습을 보고 싶은, 지금은 아버지가 된 아들이 속을 털어놓고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아버지라는 공통주제로 하나가 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 추석에는 같이 둘러앉아 송편을 먹으며 웃을 수 있을까? 부디 서로의 마음에 꼬인 실타래가 한올이라도 풀어지길, 떡국대신 계란볶음밥을 먹으며 아주 작은 소망하나 새해 소망으로 빌어본다. 아버지라는 존재도 결국은 사랑받고 싶은 나약한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해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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