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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래왔으니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한 명이라도 변할 수 있다면 어른으로서 마땅히 할 얘기는 해주기

by 이유미

우리 학교에는 전동과 후동사이에 작은 책방이 하나 있다. 이름하야 모퉁이 책방이라고 불리는 그곳. 지금으로부터 5년 전,그 당시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하셨던 분께서 복도의 빈공간을 의미있게 활용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내시어 한 선생님의 피땀어린 분투하에 설립되었다. 이름만 들으면 다들 안온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떠오른다고들 한다. 쉬는 시간, 방과 후 잠시 들러 초록 노랑빛의 아늑한 소파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아이들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처음의 설립?의도와는 달리 그곳은 모퉁이 피씨방으로 전락해버렸다. 방과 후, 그곳을 지나면 휴대폰 게임 속 현란한 배경음악이 귀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모두 데칼코마니처럼 비스듬이 앉아있거나 누워서 작은 휴대폰 속으로 빨려들어갈 듯 한 눈빛을 하고 있다. 나는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그러다 몇 번 지나는 길에 큰 소리가 나면 아이들을 불러세워 이곳의 설립의도를 또박또박 일러주며 훈계를 하곤 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가고 다시 다른 무리의 아이들로 교체되면 그 훈계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복되어야만 했다. 나는 그곳을 지나며 자주 그런 풍경을 목도하지만 나의 에너지와 목소리 보호 차원에서 가끔 흐린 눈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제, 피하고 싶은 그 가시밭길을 지나가다 한 무리의 남자아이들이 모여 휴대폰 게임을 하는 소리가 복도를 크게 울렸다. 아이들이 게임을 하던 도중 큰 고성이 좁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아이를 불러 일침을 놓았다.


"이곳은 모퉁이 책방이야. 이곳에서는 책을 읽고 조용히 있어야 하는 곳이지. 그러니 조용히 이곳을 사용하렴"

그 말을 하고 뒤로 돌아가려는 찰나. 등뒤로 흘러드는 아이의 조롱섞인 목소리.

"그럼 조용히 춤을 춰도 되겠네"

그 말이 내 머릿속에 번개를 치게 만들었다. 다시 아이를 불러세우곤 방금 한 말을 복기하게 했다. 아까와는 다른 낮고 차가운 어조로 "방금 뭐라고 말했니?" 아이는 나의 낮은 어조에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바로 반성을 하는 모습에 누그러져 말을 차분히 이어간다.

"다른 아이들이 이곳에서 다 게임하고 고성지른다고 해서 너도 그래야하는 건 아니야. 아마 너도 이미 알고 있을거란다. 이곳에서 휴대폰 게임을 하고 고성을 지르는 건 잘못된 행위라는 걸"

훈계를 하고 나는 교실로 돌아온다. 사실 나도 그 모퉁이 책방을 지나며 늘 생각했다. 늘 그래왔는데 굳이 내가 에너지를 빼가며 혼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하나 훈계한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을텐데. 괜한 힘만 쓰는게 아닌가? 라는 의문을 품고 지나왔다. 그러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다 모퉁이 책방을 또 건너가다 한 명이 조용히 앉아 책을 읽는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생각을 한다. 늘 그래왔듯이 넘길게 아니라 나라도 훈계를 해서 이렇게 한 둘씩 책읽는 아이들이 늘어난다면 말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고.


아침에 특별한 이유없이 학교 안 엘리베이터를 타는 한무리의 아이들을 한 선생님이 훈계하는 모습을 보며 또 다짐한다. 늘 그래왔으니까 그냥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한 명의 마음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늘 그래왔으니까의 틀을 깨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물론 교사들의 조금의 훈계도 아동학대로 내몰리는 현실을 바꾸어야 이런 노력에 더 힘이 실리겠지만 말이다.


모퉁이 책방이 창으로 가득 들어오는 햇살아래 아이들이 초록 노랑 소파에 잠시 등을 기대어 책을 읽으며 밝은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꿈꾸는 공간이 되길 소망한다. 그러려면 나라도 그 곳을 더이상 가시밭길이라 생각하지 않고 당당히 통과해내며 열심히 그곳의 의미를 설명하는 투사가 되어야지. 늘 그래왔듯 휴대폰을 꺼내드는 아이들이 늘 자연스레 책을 꺼내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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