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로하는 방법은 피상적인 힘내보다 실질적인 위로가 필요하다
어제 퇴근 후 작년 동료였던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났다. 둘째 출산으로 육아휴직을 들어간 뒤 현재 11개월 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는 중이라 집으로 방문을 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얼굴이 무척이나 수척해보였다. 이유인즉슨 두 아이들이 한달내내 감기와 폐렴을 달고 살아 매일 밤 병수발로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하고 끼니도 제때 챙기지 못했던 것.
나는 그녀에게서 삼년 전 내 얼굴이 겹쳐져 금세 애처로운 눈빛이 되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11개월 아가. 짱짱한 다리로 호기롭게 걸어가는 뒷모습에 잠시 가슴이 몰랑해진다. 그와 동시에 그 짱짱한 다리는 엄마가 밤낮없이 고생한 흔적인 것 같아 다시금 마음이 저릿해온다. 이곳에 와서 나는 잊고 있었던 둘째 육아의 현장이 어제일처럼 생생히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둘째가 이유식을 매일 뱉어내 끊임없이 닦아내던 그 시기. 병원에서 영양실조가 올 수 있다며 겁을 주는 바람에 손으로 밥풀을 몇개씩 뭍혀가며 아이의 입에 넣어주던 그 시기. 손에 물마를 날 없던 그 치열하던 시기가 섬광처럼 떠오르며 잠시 몸서리가 쳐진다. 아이가 아플 땐 어떠랴.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번개가 치는 듯 절망의 순긴이었다. 두 아이가 번갈아가며 아픈 바람에 물수건을 늘 침대프레임에 걸어두어 침대프레임 나무에 곰팡내가 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데 아이를 재우고 나온 그녀가 미안하다며 나왔고, 드디어 마주앉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린 탄산수 두 병을 앞에 두고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두 아이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 지 이제야 알았다며 쌤은 어떻게 그 시기를 잘 지내왔냐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나는 아까 회상한 그 치열한 육아 시기를 찬찬히 허공에 늘어놓으며 같은 고난의 길을 겪었음을 알린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금씩 편해진다고. 그리고 참 고생이 많다고. 그 힘듬을 누구보다도 오롯이 안다며. 지금은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또 다른 정신적인 힘듬이 있다고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
그 말을 듣더니 생기없던 그녀 얼굴에 잠시 빛이 들어왔다. 과거 자신의 힘듬을 오롯이 느꼈던 누군가가 있어 위안이 되었던 것이리라. 그러면서 나는 그 치열한 시기를 지나와서 지금이 있는 것 같다며 애 둘맘이라면 누구라도 다 지나는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뭐 지금도 다른 힘듬은 계속 된다며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이다.
힘들 때 힘내라는 말보다 중요한 건 바로, 나도 한때 같은 힘듬을 겪었다는 것을 말하며 위안을 주는 것. 그리고 그 힘듬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있음을 눈으로 증명해주며 당신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스미게 하는 것이 아닐까?
배고픈 사람에게 힘내! 라는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는 허망한 위로보단 빵하나를 건네는게 도움이 되듯. 누군가에게 필요한 진심을 담은 위로를 해주는 것이 진짜 위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나도, 10키로에 육박하는 아들을 안고 곧 하원하는 첫째를 위해 땀흘리며 계란말이를 만드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괜스레 두 발에 힘이 들어간다.
“나도 집에가서 아이들을 위해 계란말이를 만들고 저녁을 차려야지“ 하고 작게 마음 속으로 외치며 말이다.
서로의 모습을 보며 힘을 낸 어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