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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Oct 22. 2024

전자칠판 고장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위기의 순간이 와도 나만의 정답을 부단히 찾으며 헤쳐나가는 것

 어제 아침의 일이다.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으레껏 전자칠판의 버튼을 켜려고 하던 찰나, 빨갛게 들어와야 할 불빛이 마치 불씨가 사그라들고 재만 남은 듯 잿빛을 띄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해 전자칠판 안쪽의 코드를 몇번을 뺐다 꽃았다 반복해도 꺼진 불씨는 돌아오지 않는다. 속으로 작게 외쳤다.

"망했다"

미술시간에 가끔 들려오는 망했다 소리를 진절머리나게 싫어해 매번 바로잡아주던 나였는데 그냥 속으로 욱하고 올라오는 내면의 소리는 막을 길이 없다. 학교담당 기사님은 화요일마다 정기적으로 오시기에 갑작스레 부를 수도 없다. 일단 정보부장님께 전화해 전자칠판 전원이 안켜지는 문제를 접수한 뒤 그냥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지난 번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는 과학실로 옮겨가 수업을 이어갔었는데 오늘은 월요일에다 그럴 여력도 생기지 않는다. 마음에 빨간 불이 마구마구 들어온다. 이럴 땐 심호흡이 최고다. 숨을 몇 번 고르고 오늘은 맨손 수업을 하기로 한다.

 수업이 시작되자 마자 우리는 늘 긍정확언을 외치고 시작하는데 전자칠판이 안되니 아이들 머릿속 장기기억 창고를 믿어보기로 한다. 총 10개의 문장을 이어가야 하는데 아이들은 3번째 문장에서 고사하고야 만다. 하는 수 없다. 내가 선창하고 아이들이 따라하게 하는 수 밖에. “나에게는 좋은 일이 일어날 자격이 있습니다“로 끝나는 긍정확언. 긍정확언의 마지막문장을 읽을 때면 늘 생각하는 거지만 괜스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1교시 하필이면 설명할 내용과 자료가 많은 사회 수업. 나는 컴퓨터에서 벗어나 아이들 앞으로 다가간다. 자 얘들아 오늘은 선생님 머릿속에 있는 지식으로만 수업해볼거야. 라고 선언한 뒤 아이들 자리로 가까이 다가선다. 오히려 나를 옭아매는 컴퓨터와 전자칠판이 없으니 몸이 홀가분한 느낌도 든다. 현명한 선택에 대한 수업이었는데 나는 얼마전 니트를 충동구매하고 입지 않는 경험을 들려주며 아이들에게도 물건을 구입할 때 현명한 선택을 하라고 조언한다. 내 이야기 후 아이들의 경험도 줄줄이 소세지 처럼 따라온다.

 얼마전 편의점에 가서 산 간식이 생각보다 맛없어서 돈 낭비한 작은 일부터 오월드 1년 이용권 끊었는데 두 번가고 지겨워져서 돈이 아까웠다는 이야기 등. 아이들은 자신이 한 잘못된 선택의 경험을 하나 둘 꺼내놓으며 교실을 경험담으로 농밀하게 채워간다.그렇게 아이들과 나의 이야기만으로도 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이들은 오히려 전자칠판이 꺼져서 좋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서로에게 오히려 집중할 수 있고 선생님의 말이 더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3교시가 시작되고 내 목소리가 살짝 갈라진 마찰음을 낼 쯤 구원의 손길이 내게 뻗쳤다. 기사님이 오신 것이다. 다행히 5분 만에 잿빛 전원버튼은 다시 빨간 불꽃을 피웠고 다행히 3교시, 영상자료 보여줄 것이 많은 과학수업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도 희망은 존재한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 어제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갖가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내게 닥쳐와도, 다 이겨낼 힘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위기의 순간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내안의 큰 힘에서 나오는 것이니 늘 내 안의 힘을 기르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하기도 하고..


요즘 하루하루  내가 맞닥뜨리는 일들에 교훈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오늘은 어떤 문제를 맞이하게 될 것이며 어떻게 해결하고 또 그속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낼 것인가는 아마 오늘 하루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헤쳐나가야 알 수 있겠지?


 일상이라는 정답없는 문제지를 받아들고 고민을 거듭해 최대한 좋은 나만의 답안을 찾으며 부단히 애써야겠다. 일단 오늘 아침엔 내게 처음으로 주어진 이 1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비오는 화요일, 아침부터 반쯤 영혼이 나간 듯 피곤한 눈을 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라는 1번 문제를 말이다. 일단 음악 한 곡 듣고 시작해야지. 비오는 날엔 어울리지 않지만 선곡은 소녀시대의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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