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단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뿡뿡뿡
와 대단해요 아저씨
내 방귀소리가 커서 놀랐지? 미안하구나 이번엔 꼭 고쳐 가야겠다.
왜 고치려는 거예요? 친구들이 이 소리를 들었다면 다 좋아했을 텐데.
지난 주말, 아이와 함께 도서관엘 갔다가 제목이 꽤나 흥미로워서 빌려온 책 엉뚱한 수리점의 일부내용이다. 지난 금요일, 일년간 함께 했던 아이들과 헤어지는 마지막 날 나는 이 그림책을 읽어주며 아이들의 앞날을 조용히 응원해주었다.
그림책에는 소이라는 한 귀여운 여자아이가 등장한다. 책 속 배경은 엉뚱한 수리점. 이 수리점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고장난 것들을 몽땅 수리해주는 마법의 가게다.
부러진 의자부터 시작해서 방귀를 자주뀌는 습관, 마음에 안드는 이름 등 물건뿐 아니라 고치고 싶은 자신의 단점마저도 모두 싹 수리해주는 가게. 이 가게가 문을 여는 깜깜한 밤이 되면 문 앞에서는 자신이 가진 물건이나 단점을 고치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 가게에 줄을 선 어른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하는 소이. 소이는 어른들이 고치려고 하는 이유를 아이의 마음으론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책 속 주인공 소이는 삐거덕 거리는 의자는 재미있는 데 왜 고치려드냐며 따져묻고, 방귀를 자주 뀌는 게 고민이라는 어른에겐 친구들이 좋아할 거라고 오히려 부러운 표정으로 아저씨의 근심어린 얼굴을 천진하게 바라본다. 책을 읽으며 이 아이가 가진 능력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가진 단점에서 잽싸게 긍정적인 면을 캐치해서 돌려주는 이 능력. 살 수만 있다면 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책속에 등장하는 이 아이의 긍정적인 관점이 너무도 가슴에 와닿아 마지막 날 반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기로 결심했다.
최근 있었던 가슴 아픈 사건으로 인해 유난히도 발걸음이 무겁고 가슴 묵직하게 등교하던 이번 주, 어느 새 아이들과 함께 한 날이 마무리되는 봄방학 종업식 날. 등교길 동반자인 에코백에 엉뚱한 수리점 책을 넣고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히 교실로 가져갔다. 아침 1교시, 나는 실물화상기를 키고 아이들에게 엉뚱한 수리점의 책 페이지를 조용히 펼치며 나직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준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읽어주는 마지막 그림책이라는 생각에 몇몇은 눈시울이 살짝 발개진 아이들도 있었다.
그림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닫히고 나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얘들아 너희들은 혹시 고치고 싶은 단점이 무엇이니?" 항상 그러했듯 내 질문에 바로 손을 드는 아이는 없다. 나는 이럴 땐 기꺼이 발표의 첫 주자가 되어준다.
"선생님도 단점이 있는데 바로 강박증을 좀 고치고 싶어. 삼남매의 첫째로 자라서인지 늘 무언가를 열심히 잘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단다.
안괜찮아도 늘 괜찮다. 힘든데도 늘 할만하다 하면서 내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부치는 면이 좀 있어. 운동도 글쓰기도 심지어 너희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가끔은 힘을 좀 빼도 되는데 그렇게 안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아서 무리해서 하다 가끔 앓아눕곤 하지.
선생님은 이런 강박증을 좀 수리하고 싶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26개의 눈동자는 또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뀐다. 그 눈빛을 보내던 아이들 중 한명이 내게 말한다.
"선생님. 그래도 선생님이 열심히 노력하는 그 강박증 덕분에 저희가 지금껏 잘 지내올 수 있었어요. 선생님은 우리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늘 보여주셔서 제가 선생님과 더 헤어지기가 싫어요. 내년에도 담임 선생님 해주세요 네?"
그 아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맙게도 여기저기서 맞아요 제발요 등 격한 동의의 수런거림이 내 귓가에 들려왔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의 단점을 그렇게 봐주어 고맙다고 거푸 말한다. 그간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이 아이들이 그런 나의 노력을 알아주는구나 싶어 가슴 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차올랐다.
지난 한 해 나는 참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다. 위에도 언급한 것 처럼 내겐 일종의 강박증 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인지 매해 담임을 맡으면 모든 에너지를 소진할만큼 전력을 다하는 편이다. 복직한 첫 해 퇴근 해서도 매일 수업준비할 거리를 싸들고 와서 남편에게 타박을 듣기도 했고, 주말에도 이런저런 수업자료를 검색하느라 옆에서 놀아달라 떼쓰는 두 남매를 무심한 눈길로 돌려보낸 일도 어려번 있었으니까. 올해는 그러지 말자 결연하게 다짐했지만 그 성격은 어디 안가는지 늘 무언가 새롭게 시도하고 아이들에게 적용해보려 하고 내가 가진 에너지를 학교에서 온전히 쏟아부었다.
그러다보니 주말에 온전히 쉬는 게 오히려 어색했다. 글이라도 써야했고 책이라도 읽어야했고 아이들에게 알려줄 명언이나 좋은 수업자료 검색이라도 하고 있어야 속이 편했다. 멍하니 있는 시간이 사치로 느껴졌달까.남편과 지인들은 그냥 좀 맘놓고 푹쉬어.라고 귀에 인이 박히도록 내게 말을 하지만 한 번 몸에 밴 습관을 한 순간에 바꾸기란 참 쉽지가 않다. 천지가 개벽해야만 가능할까. 쉬면서도 마음은 늘 불안할 때가 많았으니까.
그래서 늘 고치고 싶다고 생각했던 단점인데 반 아이의 발표로 나는 관점을 바꾸게 되었다. 나의 강박증이 가르침에 있어서는 빛을 발하는구나 싶어서. 하지만 그 강박증이라는 말도 좋은 습관은 아니니까. 올해는 조금 달리 마음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달려는 나가되, 중간중간 멈춤을 하며 마음에 여유를 주며 길게 가는 것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에 골몰해있을 때 아이들도 나름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생각을 하는 눈치였다. 수업 말미에 조용히 손 든 한 아이. 태어날 때 부터 귀가 좀 약해 잘 들리지 않아 귀가 늘 먹먹해 답답하다고 말했다. 조용히 자신의 단점을 고백해준 아이에게 나는 그림책 속 소이의 마음이 되어 말했다.
"많이 답답하겠다. 그래도 보면 수업시간에 누구보다 더 열심히 귀기울여 들으려 노력하는 네 태도가 참 멋지더라. 잘 안들린다는 단점이 오히려 누군가의 말을 더 잘들으여 귀를 쫑긋 세우는 경청습관을 길러준 것 같구나. 그리고 귀가 많이 불편하면 꼭 병원에도 가서 치료받기!"
혹여나 걱정이 되어 나는 마지막에 현실적인 조언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림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림책 속 엉뚱한 수리점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오픈런까지도 마다하지 않을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리지 않을까? 모두가 나름의 단점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내가 가진 강박증, 우리 반 아이가 가진 귀가 잘 안들리는 신체적 특징 등. 늘 단점에 파묻혀 진짜 자신이 가진 참모습을 모르는 우리에게 그림책 속 소이는 말한다.
그걸 왜 수리하려고 해요?
당신이 남들과 다른 특별한 점인데 말이예요. 단점이 있다면 그걸 좋은 쪽으로 수리해보세요
그렇게 고치고 싶었던 단점이 가장 큰 장점이 될 수도 있을거예요.“
물론, 내 힘으로 안되는 시급히 고쳐야 할 점들은 누군가의 힘을 빌려서라도 고쳐야하는 건 당연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