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Jul 01. 2023

유치원 발표회에서 느낀 자신감이란...

우렁찬 목소리가 아니어도 좋아, 그저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면 돼

서진이의 자신감 발표회

우렁찬 목소리가 아니어도 좋아, 그저 최선을 다하면 돼

 이번 주 내내 수영교육 인솔로 인해 피로가 덕지덕지 쌓였지만 금요일만큼은 가뿐한 마음으로 출근했다. 바로 서진이의 자신감 발표회가 있는 날이기 때문. 미리 교감님께 말씀드려 점심시간을 빼고 학교에서 5분거리인 서진이 유치원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점심을 먹는둥마는둥 했지만 배고픔마저 잊었다. 코로나로 인해 5.6살 자신감 발표회는 늘 영상으로만 접하다 올해는 처음으로 직관할 기회가 왔다. 졸업전에 볼 수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남편도 조퇴를 달고 함께 참석했다. 우리는 기대에 찬 눈빛을 주고 받으며 서둘러 강당으로 내려갔다. 이미 많은 엄마아빠들이 앞자리부터 꽉채워 앉아있었다. 시작전 부원장님께서 하신 “유치원이 에버랜드인줄 알았어요”말씀이 웃음을 자아냈다. 아이의 발표회를 보러 오픈런을 하듯 줄을 길게 늘어선 모습을 우스갯소리로 표현하신 것.

 그만큼 엄마아빠들의 열정이 가득했다는 뜻이다. 설렘반 초조함반으로 서진이의 차례를 기다렸다. 모여있는 모든 부모들은 같은 마음으로  한명한명의 아이들을 무조건적인 지지와 박수로 응원했다. 수줍어하며 말못하는 아이부터 씩씩하게 큰소리로 해내는 아이 모두가 꼭 내 아이같아서 부모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유치원아이들이기에 무대에 올라와서 하지못하고 다시 들어가는 아이들, 울먹거리기직전인 아이들. 형제자매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선생님의 손을 꼬옥 잡고 자신의 입대신 선생님의 입을 빌려 발표하고 내려간 아이들. 아직 어리기에, 이런 무대가 처음이기에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짠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한 양가감정들. 그런 감정을 그러모아 객석에 앉은 모든 부모들은 한마음으로 더 크게 응원하고 박수쳐주었다.

 작고 딱딱한 의자에 장시간 앉아있다보니 엉덩이가 아파왔지만 무대를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을 아이들의 떨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발표회 시작 한시간 10분여 만에 서진이의 차례가 돌아왔다. 아침 등원길에도 차안이 터져라 연습하던 서진이는 무대를 걸어나오자 마자 표정이 굳어졌다. 나는 속으로 “못해도 좋으니 으앙 울지만 마라”라는 작은 기도를 하며 서진이가 입을 떼기만을 기다렸다. 연단기본자세 준비 라는 우렁찬 부원장님의 구호와 함께 서진이는 발구름으로 시작했는데 그 발재간이 얼마나 귀엽던지. 굳은 표정과는 달리 조금씩 곁들이는 동작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지만 연습한 대사를 까먹지 않고 끝까지 이어나가는 목소리. 그 모두가 기특했다. 평소 수줍음 많은 서진이가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래도 제 할일을 해내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따끔거렸다. 1분 남짓되는 서진이의 발표를 숨죽여 지켜보던 나와 남편은 서진이의 “감사합니다”끝인사에 비로소 안도했다.

준비한 발표를 마치고 돌아가는 모습에서 방금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듯한 서진이의 개운한 표정이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1분 발표를 위해 얼마나 연습했을까.처음으로 많은 사람 앞에서 무대에 올랐을 때 얼마나 심장이 떨렸을까. 그 모든 것을 다 해치우고 났을때 얼마나 행복했을까?

 자신감발표회를 위해 연습하고 무대에 오르고 내려오며 서진이는 어쩌면 인생의 짧은 축소판을 맛보았는지도 모른다. 연습을 아무리 해도 정작 큰 무대에 올라가면 긴장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연습만큼 잘 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도망치고 싶지만 일단 무대에 올라섰기에 최선을 다해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틀려도 울어도 실수해도 자신을 향해 비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서툴러도 무조건적인 지지와 박수를 보내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런 지지속에 작은 목소리지만 어쨌든 할일을 해내고 내려와서 느끼는 개운함은 그 어떤 것과도 맞바꿀 수 없다는 것.

 자신감은 처음부터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울어도 보고, 실수도 해보고,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그 과정에서 조금씩 마음 속 싹을 틔우듯 길러나가는 것이라는 걸. 이번 발표회를 통해 깨달았으리라 짐작해본다.

 앞으로 네게 주어진 세상이라는 무수한 무대 위에서 잘하지 못해도 좋으니 오늘처럼만 꿋꿋이 제할일 다하고 무대밖으로 내려오며 그렇게 빙긋이 웃을 너를 기대하며..

“엄만 네가 남들앞에서 잘하지 못해도 좋아. 그저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리고 세상은 좀 더 냉혹해서 오늘 받은 부모님들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열띤 박수가 없더라도 엄마아빠가 너를 향해 백명분의 몫을 할게. 니가 가진 속도와 힘으로 천천히 세상을 향해 나아가보자

작가의 이전글 가끔은 새롭게 아침을 시작해보는 일이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