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만난 다정함

일면식 없는 타인에게 받은 다정함의 위력

by 이유미

퇴근 후 들른 마트, 과일가게를 일차로 들른 터라 한 손엔 이미 짐이 한 가득이다. 겨우 한 손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낑낑대며 야채코너를 지나가는 데 마침 파프리카 하나에 1200원이란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가격에 하나를 겨우 집어든다. 주변에 마땅히 보여야 할 비닐봉지가 보이지 않는다.


미어캣마냥 두리번 거리며 살펴보는데 구석진 곳에 비닐이 보인다. 그나마 여유가 있는 한 손으로 비닐을 뜯으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쉽지 않다. 찰나의 순간 누군가의 손길이 그런 나를 훅 치고 들아온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비닐봉지가 뜯겨나가고 불쑥 내 손으로 쥐어주는 한 아주머니.


나는 갑작스레 훅 치고 들어온 아주머니의 말없는 다정함에 잠시 얼떨떨했으니 혹시 지나쳐가실까 얼른 감사함을 표시했다. 아주머니는 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가는 길을 재촉하신다. 자신이 살 것도 아닌데 지나가는 행인의 어려움을 눈여겨 본 그 정성에 감격의 쓰나미가 한 차례 지나간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에게 받는 호의는 상상이상으로 가슴에 온기를 선사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전혀 모르는, 이해관계가 손톱만큼도 없는 그런 타인이 내게 무심결에 건네는 다정함. 조금 과장하자면 이런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건넨 조건없는 사랑?과 궤를 같이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얼마 전엔 주말에 한 대형마트에 아이들을 데리고 간 적이 있다. 시식코너가 즐비한 지하 식품코너. 한 바퀴를 도느라 흐리멍덩해진 아이들의 눈빛에 일순 활기가 돈다. 멀찍이 보이는 젤리시식코너. 이미 수많은 인파들이 줄을 서 있다. 젤리가 마침 한정수량 시식이라 몇 번은 앞쪽을 흘깃 보며 마음을 졸인다.


줄이 줄어들 수록 젤리도 함께 훅훅 줄어가고 우리 앞에 딱 한 아주머니가 남은 상황. 점원의 애석한 말이 들려온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10분 뒤 오셔야 해요. 그 말에 둘째의 눈에서 눈물이 터지기 일보직전, 아주머니가 마지막 남은 젤리를 말없이 아이손에 들려주신다.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지으시더니 유유히 다른 인파 속으로 사라져가시는 아주머니. 그 분의 무심한 듯한 그 배려는 마트에 있는 내내 떠오르며 가슴을 뭉근하게 적셨다.당연한 배려가 아님을 알기에 더 감사한 타인들의 다정함들. 이 외에도 아직 내 가슴 속에 살아 숨쉬는 타인들의 배려는 수도 없이 많다.


몇 년이 흘렀음에도 선명히 각인된 이유는 아마 일면식 하나 없는 타인들의 배려가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이리라.마트에서 받은 호의를 떠올리다보니 아이를 한 창 키울때 받은 배려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한창 둘째가 젖먹이시절, 유독 배려들이 선물처럼 쏟아지던 시절이 있었다. 아기띠를 하고 은행볼일을 보러 갔을 때 바로 옆 아저씨가 한 참 뒤인 내 번호표를 자신의 번호와 바꿔주신 일. 두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갔을 때 유모차에 있는 둘째를 잠시 봐주겠다며 볼일보러 다녀오라셨던 청소부 아주머니. 두 아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아이 키운다고 고생많다 라며 누군가들이 내게 따스함 어린 눈빛을 쐬어주셨던 일.


이렇듯 타인에게서 받은 예상치 못한 호의들은 늘 내게 인류애를 샘솟게 한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보여준 다정함은 또 쉽게 내게로 옮아와 나도 얼결에 다정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세월이 지나도 그 다정함들이 쉬이 뇌리를 떠날 수 없는 이유는 아마 댓가없는 무언가라서가 아닐까.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선선히 내어주는 타인들의 다정함이란,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조건없는사랑과 같은 종류라고 감히 확신해본다. 앞으론 나도 마트나 어떤 장소엘 가게 되면 무심히 지나지 말고, 나도 그 조건없는 사랑을 베풀 일들이 뭐가 있을까 유심히 관찰해봐야겠다는 인생의 교훈을 또 새긴다.


이름도 직업도 전혀 알길이 없는 누군가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각인될 따스함으로 남는 건 대단한 무언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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