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만난 다정함

우는 아이를 순식간에 잠잠하게 만드는 선생님의 마법

by 이유미

아침마다 나를 늘 애먹이는 과제가 하나 있다. 바로 둘째아이와의 등원이다. 유순했던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그때그때 기분이 달라져서 어떨 땐 등원이 수월하지만 수가 틀리면 감당해낼 재간이 없을 정도로 나를 자주 침울하게 만든다. 바로 며칠 전 월요일이 내게 그런 날이었다.


정신없이 옷입히고 머리묶여 계란찜으로 아침을 먹여 등원하는 길. 오빠가 자기보다 먼저 엘리베이터 1층 버튼을 눌렀다고 앙칼진 소리를 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둘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속으로 무거운 뭔가가 쿵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엘리베이터에서 안내린다고 성화다. 분초를 다투는 아침시간에 그런 시위를 맞닥드리면 마음이 더욱 다급해진다.


어르고 달래도 안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 나는 발버둥치는 아이를 안고 유치원 문 앞까지 냅다 달렸다. 불편한 출근복이 그날따라 더욱 나를 옥죄어오는 느낌이었다. 겨우 아이를 내려놨지만, 아이는 그런 강압적인 내 행동에 질세라 저항하듯 유치원문과 반대되는 곳으로 총총 뛰어간다. 속으로 불길이 화르륵 솟구친다. 유치원 정문 앞에 서서 고개를 틀고는 눈물지으며 악을 쓰는 둘째.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통에 분출하는 화를 겨우 심호흡으로 내리누르고, 아이를 향한 애처로운 눈빛을 쏘며 다시 한 번 달래본다. "엄마가 유치원 끝나고 00이 좋아하는 꼬깔콘 사줄게. 얼른 들어가자"


평소라면 비장의 무기처럼 단번에 통했을 말이 아이의 세찬 고개짓 몇 번에 그날따라 허공으로 허무하게 튕겨나간다. 시계를 보니 출근시간인 8시; 30분까지 단 5분.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때까지 팽팽하게 조이고 있던 이성의 끈이 느슨하게 풀려버린 나는 나는 아이의 두손을 꽉 쥐고선 솟구치는 화를 그대로 분출하고야 만다. 나의 갑작스러운 호통에 놀란 아이는 서러운 듯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고,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를 안아 올린 뒤 유치원 문 앞에 다시 세워두었다.


그때 유치원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매일같이 아침맞이 해주시는 선생님의 따스한 목소리가 문밖으로 울러퍼졌다.


"우리 공주, 왜 울어. 뭐가 그렇게 서러웠어. 일루와 선생님이 안아줄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는 선생님의 품에 안겨졌고, 눈물이 잦아들었다. 나는 뭐라고 감사표현을 할 새도 없이 고개만 꾸벅하고는 출근길에 잽싸게 올랐다.


다행히 근처 학교인지라 지각을 겨우 면한 나는 교탁에 앉아서야 그간 참고 있는 숨을 한 번에 몰아쉬었다.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오자 아까의 일이 떠오른다. 귓가에 따스하게 감겨들던 아이를 향한 선생님의 다정한 목소리. 그리고 아이를 번쩍 안아올리던 손길. 선생님이 아이에게 내보인 다정함이 내게 옮아왔는 지 별안간 마음이 따스해졌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스치듯 본 아이의 얼굴. 잔뜩 힘이 들어간 얼굴이 사르르 펴진 모습이 어슴푸레 떠오르며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해졌다.


아이를 제대로 달래주지 못한 채 출근길에 올라 마음에 내내 뭐가 걸린 듯 불편했는데 선생님의 그 다정함을 떠올리자 무거운 뭔가가 쓱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휴대폰을 들어 감사표시를 전했다.


"000선생님 감사합니다. 아침에 출근해야 해서 00이가 울어서 걱정이었는데 따스하게 안고 달래주시고. 유치원과 멀어지며 그 모습을 보는 데 가슴이 참 뭉근해졌어요. 덕분에 저도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고 직장에 무사히 와서 반 아이들과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랑으로 지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바로 선생님께 이어온 답장.


"우리 애기 안아주니 눈물을 뚝 그치더라구요.따뜻한 문자에 저도 행복한 하루 시작입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다정함에 기대어 가뿐한 하루를 보냈던 그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날은 선생님이 보여준 다정함으로 , 나만 믿고 교실에 와서 일제히 나를 쳐다보며 아침을 시작하는 25명의 아이들에게 열과 성을 다해 수업을 할 수 있었달까? 유치원 선생님에서 시작된 다정함이 나의 다정함을 만들고, 또 이런 다정함은 25명의 반 아이들에게도 전달되어 세상으로 퍼져나갈테다.


이렇듯 다정함의 선순환은 이렇게 누군가의 손에서 조용히 퍼져나가 울퉁불퉁 모난 세상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다.

특히나 월요일 아침에 발휘되는 다정함은 아득한 우주를 뚫고 나갈만큼이나 큰 효력을 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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