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직원의 친절이 그날 내내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을 떠나지 않게 만들었다
지난 일요일의 일이다. 날씨도 쌀쌀하고 마땅히 갈 곳은 떠오르지 않았던 그날. 나와 남편은 두 남매를 데리고 근처 어린이도서관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키즈카페가 아닌 도서관이라는 말에 볼멘소리를 냈지만 막상 어린이 도서관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난 표정을 지어보였다. 우리가 방문한 도서관은 다른 여타의 도서관과는 달리 상시로 만들기 체험을 하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두 남매는 한껏 들뜬 표정으로 만들기 체험부스로 향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체험 시간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열한시 사십분. 이미 열한시 타임 만들기가 시작된 지 40분이나 지나있었고, 그 후론 점심시간이라 당분간 참여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잔뜩 고양된 두 아이들을 향해 지금은 어렵다며 조금 기다렸다고 하자고 말을 하니 둘이 동시에 세상을 다잃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안경을 쓰고 말쑥한 차림의 도서관 직원이 아이들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지금 체험해도 10분 밖에 못하는 데 괜찮겠어?"
직원의 말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던 두 아이의 눈빛에 반짝 생기가 돌았다. 아이들은 입꼬리를 쓰윽 올리며 밝은 목소리로 "네"하고 대답하고는 직원으로부터 파랑색 분홍색 만들기 바구니를 받아든 채 만들기 공간으로 부리나케 이동했다. 9살인 첫째는 큰 아이답게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자동차 만들기 재료를 1분도 안되어 바구니에 담고 남은 9분을 오롯이 만들기에 집중했다.
그에 비해 겨우 5살난 둘째는 만들기 재료를 고르는 데만 5분이 넘는 시간을 소요했고 체험을 하던 아이 둘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는 순간에 본격 만들기에 돌입했다. 나는 시계와 이제 만들기에 돌입한 아이를 번갈아보며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새 첫째는 종이컵 자동차를 다 완성해서 동생과 나를 향해 자랑스레 흔들어보였고 5살난 둘째는 그 모습에 약이 바짝 오른채 자신의 만들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둘째가 종이접시에 눈을 하나 붙이는 데 만들기 종료시간을 알리는 도서관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당황한 둘째의 손이 다급해졌다. 급한 마음에 눈을 붙이다 바닥에 떨어뜨리자 이내 울상을 지었다. 나는 괜찮다고 못하면 집에가서 완성하자고 살살 달래었지만 둘째의 귀에 그 말이 들어갈리가 만무했다. 평소 고집이 세고 오빠에게 뒤처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지라 그 상황을 더 견디지 못할 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적막이 감도는 도서관을 둘째 아이의 까랑한 울음으로 깰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도 손을 걷어부치고 열심히 아이의 작품완성에 힘을 보탰다.
바로 그 때, 도서관 직원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5분만이라도 더 시간을 달라고 애걸해볼까 말하려던 찰나 내 예상과는 달리 직원은 우리 쪽에서 멀어지며 책장을 향했고 비어져나온 책들을 정리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이가 무사히 나머지 눈과 장식을 붙이며 마무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도서관 직원의 책정리는 10분이 넘게 이어졌고 그 시간 동안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은 다행히도 없었다. 아이의 작품이 완성될동안 내 신경은 온통 도서관 직원의 행동에게 쏠려있었지만 말이다. 드디어 마지막 눈을 붙이고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이는 딸. 나는 말대신 쌍엄지를 추켜올려주며 완성을 축하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아, 도서관의 적막을 깨는 울음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겠구나 조용히 되뇌이며.
시계는 어느덧 12시 5분을 가리켰고 나는 재빨리 아이의 손에 아까 처음 받아온 분홍색 바구니를 들려보냈다. 핸드백 속에 늘 넣고 다니던 초코쿠키도 잽싸게 빼내어 얹어주며. 멀직이서 지켜보니 도서관 직원은 아이에게 따스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분홍색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따뜻한 온기로 적셔짐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신의 작품을 오빠의 얼굴에 들이대며 배시시 웃음을 지어보이는 딸을 보며 나는 아까의 그 따스한 광경을 되살려냈다. 아이가 작품을 다 완성해낼 때까지 아무 말없이 옆에서 책장 정리를 하던 직원. 분명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감지하고 턱끝까지 차오른 말을 속으로 꾹 눌러냈으리라. 그렇게 자신의 점심시간 5분을 헌납하고 아이가 무사히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준 직원. 그 행동이 당연한 것이 아닌 마음 속으로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감사한 마음이 가득 피어올랐다.
그날 그 어떤 기억보다, 내겐 그 광경이 한 폭의 따뜻한 색채를 자랑하는 수채화 처럼 남았다. 햇살이 유독 따스하게 스며든 아늑한 도서관을 배경으로 한쪽에선 고사리 손으로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는 아이의 모습, 그리고 그 근처를 맴돌며 서가의 책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묵묵히 기다려주는 도서관 직원의 모습. 그렇게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건네는 다정함은 이토록이나 누군가의 마음을 오래도록 진하게 울릴 일이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인류애가 풀 충전되는 하루였다.
아이의 마음 속에도 은근히 그 다정함이 스몄나보다. 집에 와서도 자신이 만든 작품을 꼭 끌어안으며 "엄마 오늘 키즈카페보다 재밌었어"라고 조잘대는 것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