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가슴에서 나온 댓글이 주는 힘을 믿기에
"선생님, 일기 언제 줘요?"
월요일 오후시간이 되면 내가 아이들에게 으레껏 듣는 단골질문이다. 4학년 아이들과 꼭 같게 6학년 아이들도 월요일 오후만 되면 일기검사, 정확히는 그들의 일기장 아래에 달리는 나의 댓글을 손꼽아 기다린다.
국 수 사과 주요 교과가 집약되어 있는 마라맛 월요일, 책상 한 귀퉁이에 탑처럼 쌓인 일기장을 보며 솔직한 심정으로 한숨이 비실비실 새어나오지만, 아이들의 기대에 찬 눈빛은 그런 한숨을 꿀꺽 집어 삼키게 만드는 묘약이다.
아이들이 내는 일기장에 정성스레 댓글을 달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에 선생님들이 한 줄씩 달아주시던 빨간 글씨 댓글이 주는 힘을 절감해서다. 일기장 아래 선생님이 한 줄씩 달아주던 그 댓글이 어찌나 달콤하던지. 그 달콤함에 이끌려 나는 매일 빠짐없이 일기를 쓰는, 소위 일기왕이 되었다.
얼마 전, 친정에 들렀다 낡은 일기장을 몇 권 발견했다. 오래된 유물을 발견한 듯 기분이 짜릿했고, 집에 돌아오는 길 가방에 두 어권의 일기를 챙겨왔다. 월요일 출근길 아이들에게 일기지도를 할 요량으로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일기를 가져와서 읽어주었다. 별 뜻없이 읽어준 나의 일기는 아이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하루도 빠짐없이 쓴 일기에 아이들은눈이 휘둥그레졌고, 흐트러짐 없이 쓰인 글씨체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이후 아이들은 엄마에게 우유를 달라 보채는 아기처럼 틈만 나면 내 일기를 읽어달라 애교섞인 눈빛을 지어보였다. 나는 그때마다 누렇게 변색된 낡은 일기장을 한 장씩 펼쳐보이며 아이들과 함께 추억에 잠기며 월요일 아침을 아련하게 시작했다. 일기를 읽어준 덕분인지 그 전까지는 형식적으로 내던 아이들의 일엔 어느 새부턴가 진심이 담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내는 일기에 나는 보통 네댓줄의 댓글을 달아준다. 한 줄은 뭔가 정이 없어보여 한 줄씩 더 추가하기 시작하던 것이 기본 네 줄이 되었다. 손으로 꾹꾹 눌러쓰다 15명째 위기가 올 때 쯤엔, AI나 제미나이의 힘을 빌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때가 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마음을 담은 손글씨는 아이들의 마음에 닿을 것을 알기에 손목을 한 번 풀고 다시 일기 검사에 박차를 가한다.
일기장에 쓰는 댓글은 단순히 아이들의 주말에 있었던 내용에 대한 코멘트가 아니다. 일기장에 아이들에게 평소 못했던 칭찬이나 속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고쳤으면 하는 행동에 대해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내용을 쓰는 등. 아이들과 나 사이의 비밀 교환 일기장 같은 느낌이 들게끔 활용하고 있다.
한 번은 우리 반 소연이가 쉬는 시간에 힘없는 목소리로 내게 다가와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 저는 운이 없는 것 같아요. 뽑기를 하든 퀴즈를 맞추든 다 저를 비켜가서 한 번 도 상을 타본 적이 없어요"
그 말에 어쩐지 애잔해져서 나는 23층 일기장 탑에서 연두색 소연이의 일기장을 맨먼저 빼들었다. 서랍을 열어보니 마침 사탕이 하나 있었고, 금빛 표지의 카라멜 사탕을 붙여주곤 이렇게 멘트를 썼다.
"소연아, 마침 사탕이 하나 있었는 데 운좋게 소연이가 떠올랐네. 오늘 소연이 계탔다."
일기 검사가 끝나고 일기장을 조심스레 펼쳐보며 배시시 웃음을 짓던 소연이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 나와 마음이 이어졌는지, 소연이는 그 후 내 주위를 자주 맴돌며 도움의 손길을 자주 내민다. 일기장 아래 달린 빨간색 댓글을 보며 선생님과 가까이 연결된 듯 행복해하던 초등학생 시절의 내가 겹쳐 보여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근해진다.
나는 매주, 할일을 제쳐두고서라도 일기장 댓글에 정성을 쏟는다. 내가 팔이 아프고 손이 많이 가는 이 일기검사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이만한 행복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음악 미술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계같은 학교생활 속.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여유조차 없는 팍팍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 일기장 댓글은 아이들과 나의 마음을 연결하는 끈이자, 어떤 충격에도 포근하게 감싸는 쿠션의 역할을 해준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교실에서 머리로 아이들을 만났을 때 아이들도 머리로 답했다. 내가 교실에서 가슴으로 아이들을 만났을 때 아이들도 가슴으로 답했다."
언젠가 학교생활에 지쳐 방황하며 교직을 그만두고 싶다고 느꼈을 때 내게 힘을 주었던 한 선생님의 책 속 글귀다.
일기장을 통해 아이들을 가슴으로 만나니, 아이들도 가슴으로 교사인 나의 가르침에 답하고 있다.
일기장을 조심스레 펴들고 일기장 댓글을 확인하는, 몇 아이들의 얼굴에 피어오르던 미소는 또 나를 다시 가슴으로 그들을 대하게 한다.
토요일이지만, 우리 반 지용이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다.
"선생님, 일기 언제줘요?"
6학년도 선생님의 애정어린 댓글에 목마른 순수한 아가들이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