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웃는 얼굴로 헤어지자

13년만의 6학년과 고군분투한 개학 첫주.

by 이유미

"12월 31일, 웃는 얼굴로 헤어지자"

대망의 개학 첫 날, 내가 학급소개 자료 맨 뒷면에 굵은 글씨로 적어둔 올해 우리 반 학급 목표다.


이주 전, 새학교에 방문해 6학년 담임이라는 사실을 안 뒤로 폭풍전야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맞은 개학 첫날,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무거운 마음으로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5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 시야에 들어온 몇 여자아이들. 최대한 무심한 표정으로 컴컴한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저 사람이 내 담임이구나 인지한 여자아이들이 수군대며 교실에 앉는다. 나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내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다른 학년과는 다르게 6학년은 첫 날 기선제압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작년 6학년 담임을 했던 전 학교 동료의 말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둔 탓이다. 그 친구는 첫 날 호피무늬 치마와 검정색 가죽잠바를 입고 뒷문을 걸어잠근 뒤 앞문으로 아이들을 들어오게 했단다. 한명씩 인사를 시키며 기선제압을 톡톡히 했단다.


호피무늬 치마를 사야하나 개학 일주일 전부터 고민하다 나는 그만 포기하기로 했다. 평생 손대본 적이 없는 호피무늬 치마,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개학 첫 날을 불안정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깔끔한 블라우스와 뷔스티에 치마를 입고, 검정자켓을 걸친 뒤(그래도 검정색은 있어야 무게감이 있어보일 듯하여) 6학년 3반 교실에서의 첫날을 맞이했다.


8시 30분이 가까워오자 하나 둘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사는 중요시하는 지라 최대한 무표정으로 인사하고 들어옵니다. 라며 말을 흘렸다. 이름표만 덩그러니 붙어있던 책상이 하나 둘 제 주인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긴장되는 한 아이의 등장, 작년에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는 한 남자아이가 조심스레 자리에 착석한다. 모니터를 보는 척 하며 그 아이를 향해 계속 곁눈질 했다. 생각보다 왜소하고 귀여운 인상의 남자아이였다. 속으로 내심 안도했다.( 그 전에 들어온 한 덩치 하는 남자아이가 자리를 착각하고 그 아이의 자리에 잘못 앉았는데 나도 모르게 심장이 벌렁거렸기 때문에)


23명의 아이들이 모두 착석하고 본격적인 개학식이 시작되었다. 새로온 선생님 소개에 내 이름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그 방송을 통해 내 이름을 처음 접했다. 교가가 마지막으로 흘러나오고 시업식 방송은 바로 꺼졌다. 그 후 침묵과 긴장이 동시에 감돌았고 내 심장은 다시 요동쳤다.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속으로 호흡을 고르고 나는 첫 시간부터 아이들에게 올해 우리 반의 목표를 크게 일러준다.


"12월 31일 졸업식날, 웃는 얼굴로 헤어지자"


내내 텅 빈 눈빛을 하고 있던 아이들의 눈에 살짝 빛이 스쳐갔다.

아이들의 눈빛이 일제히 나를 향하자 나는 다음의 말을 잇는다.


"과거에 너희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그건 과거의 일이야. 오늘 6학년 3반 교실에 온 이후 새로운 날들의 시작이야. 너희들의 과거로 너희들의 지금을 판단하지 않겠다. 선생님의 제자로 이 반에 온 이상 나는 교실의 평화가 깨어지는 것을 절대 원치 않아. 철없이 사고치던 과거는 잊고 지금부터 우리는 단 한가지만 보고 앞으로 가는 거야. 12월 31일 웃으며 졸업식 맞이하기."


그 말에 몇 아이들의 눈빛이 유독 빛났다. 그 눈빛에 나는 잠시 희망을 걸어본다.


그 뒤 나는 교실의 평화를 지키고 졸업식의 그날 웃으며 헤어지기 위한 학급 규칙에 대해 2시간이나 떠들어댔다. 이미 6년 째 학급규칙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을 터라 나는 칠판에 간단히 예의와 책임, 선이라는 단어 세개만 적어주고 이 세가지만 유의하자고 몇 번을 강조했다.


첫 날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두 시간 내내 꼿꼿한 자세로 나의 일장연설을 들어주었다. 지난 2주간 너무 겁먹었던 탓일까? 예상보다 아이들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3년 내내 4학년만 해와서 그런지 내 눈엔 몸만 살짝 큰 4학년 아이들처럼 보였다. 속으로 조금 안도했지만 마음 한 구석엔 "첫 날이라 그럴거야, 언제 또 사고를 일으킬지 몰라. 늘 촉수를 세우고 긴장하자" 라는 생각이 깊게 뿌리내렸다.


학급 규칙 안내와 첫 학년의 다짐을 쓰다보니 어느새 다가온 점심시간, 복도이동규칙도 열심히 설명한 터라 아이들은 큰 잡음없이 1층까지 잘 내려왔고, 점심도 조용히 잘 먹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나 작년에 문제를 일으켰다는 한 남자아이가 다른 반아이와 시비가 붙어 눈물이 그렁한 채 내 옆으로 왔다. 잠시 6학년을 얕보았단 아까의 나 자신을 책망했다. 옆 반 아이를 불러 사정설명을 듣고 서로 사과를 시키고 돌려보냈다. 다행히 아이들은 자신들 사이에 벌어진 일에 대해 자신이 저리른 잘못을 흔쾌히 인정하고 사과까지 한 뒤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잠시 숨을 고르는 데, 갑자기 교실 인터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지킴이 실인데요, 6학년 3반 아이가 하교 후 집엘 안가고 학교를 여기저기 누비고 뛰어다녀서 아주 골치가 아팠어요"


전화를 끊고 나니 내 골치가 더 아팠다. 개학 첫 날 부터 혹독한 신고식이라니. 역시 6학년이야 라는 생각을 하며 우울한 기분으로 집으로 왔다. 잠자리에 들기 전, 어찌하면 그 아이를 제대로 훈계하지 라는 방책을 궁리하다 밤잠을 설쳤다.


다음 날, 첫 날보다 더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마침 그 남자아이가 떡 하니 자리에 앉아있는 게 아닌가? 나는 아이를 조용히 불러 좌초지종을 물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니?"


시치미 떼고 딱 잡아떼면 어쩌지 속으로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이는 순순히 자신의 일을 자백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앞으로 그런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지킴이 아저씨께도 사과하러 갈게요"


6학년 답지 않은 순수한 표정에 나는 그만 마음이 사르륵 녹고 말았다.

"그래 앞으론 그런 장난하지마. 그리고 너의 잘못 바로 인정한 건 용기있는 행동이야 멋있어. 그렇게 6학년 일년을 잘 보내는 거야 알겠지?"


이 아이들, 생각보다 괜찮은데? 라는 생각을 하며 개학 이틀 차, 나는 가뿐한 마음으로 퇴근을 했다. 물론 마음 속에는 "언제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낼지 몰라. 늘 예의주시해야 해" 라는 경고등이 자리하고 있지만 조금은 안심이 된다. 이 아이들도 몸만 컸지 마음은 4학년 아이들 처럼 선생님 칭찬 받기 좋아하고 사랑받길 원하는 아이들이라는 것을 은연 중에 느꼈으므로.


언제 드러낼 지 모르는 발톱을 두려워 하는 대신, 지금 내 눈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순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저 아이들의 보드라운 털을 자주 발견해 쓰다듬어 주어야지. 라며 여전히 두근대는 내 심장을 다독이며 개학 첫 주를 마무리해본다.


새학기 첫 날 급식으로 나온 두바이 쫀득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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