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Dec 03. 2023

집에서 빈둥거리다보니 깨닫게 된 사실들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도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 못지 않게 중요하다.

지난 이주간 두 아이를 괴롭히던 지독한 감기, 이젠 내게로 옮아왔는지 이번 주 내내 두통과 기침으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보냈다. 출근해서도 멍한 상태로 하루를 보냈고, 열정을 토해내던 수업도 바람빠진 풍선 마냥 힘없이 끝내기를 반복한 한주였다.


 한주의 마무리인 금요일, 두 건의 약속이 잡혔다. 커피약속 ,저녁 술자리. 평일의 빼곡한 스케쥴 탓에 지인들과의 약속은 대부분 다음날 부담이 없는 금요일이다. 하지만 쉴새없이 새어나오는 기침과 멍한 상태로는 도저히 찬바람을 뚫고 누군가와 온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없을 것 같아 정중히 두 건 모두 거절하고야 만다.


 11월을 쉴틈없이 바쁘게 보낸 탓인지 왠만해서는 감기에 대해 강철면역을 자랑하는 나도 이번엔 감기에 패잔병 신세다. 주중에 쌓인 피로가 진드기마냥 착 달라붙어 내 몸을 무겁게 해도,주말이면 두 아이들을 데리고 무조건 밖으로 나서는 내가 이번엔 집에 있는 쪽을 택할 정도면 말 다한거라고 보면 된다.


 토요일, 첫째 아이의 주말문센수업으로 인해 옷을 추슬러 입고 겨우 한시간 가량 외출하고 아이의 성화에 마트 내부로 들어간다.아이는 오늘은 집에 있을 거라는 나의 힘없는 목소리에 부리나케 집에서 보낼 아이템들을 똑소리나게 집어온다. 브레드 이발소 초콜렛 만들기키트, 5가지 색 아이클레이 , 공룡스티커북, 스케치북, 투명슬라임 한개.

 평소라면 한두개만 살리고 나머지는 도로 갖다놓으라 엄포를 놨을테지만 집에서 보내는 게 얼마나 무료하고 갑갑한지 알기에 눈을 반짝이며 초록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아이의 손을 물끄럼 바라만 본다. 마침 오늘따라 남편이 1년만에 만나는 친구들 모임이라 4시 부터 외출이다. 일주일 전,남편이 들뜬 목소리로 내게 구두결재를 맡았고 그땐 흔쾌히 승인을 해줬기에 지금에 와서 반려하기엔 맥이 빠질 것 같았다. 머리를 살짝 긁으며 “금방 올게” 작별인사를 건네는 남편에게 미간은 찌푸리고 입꼬리는 억지로 살짝 올린 우스꽝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첫째 아이는 마트에서 산 물건을 흰 대리석 식탁에 죽 늘어놀으며 미션을 수행하듯 하나씩 해낸다. 둘째 아이는 면박을 받으면서도 옆에 붙어 오빠가 만든 작은 하트초콜렛을 낼름 받아먹으며 꺄르르신난 비명을 질러댄다. 그렇게 한 시간여쯤 흘렀을까? 이제 5시, 나는 굼뱅이 처럼 흐르는 시간에 노여워하며 거실바닥에 흐트러진 아이클레이 조각을 물티슈로 훔친다.


 그러다 문득 읽지 않은 메세지들로 가득찬 카톡방을 주욱 훑는다. 어제 부득이 하게 거절한 동네 언니가 밤에 결국 나가서 술을 마시고 왔다는 이야기,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분위기 좋은 카페에 다녀왔다는 초딩동창의 메세지, 가족들이랑 아울렛 나들이가서 먹은 점심이 맛있었다는 서진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까지. 나빼고 모두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은근한 질투와 조바심이 났다.


 지난 한 주간 아픈 탓에 집학교만 쳇바퀴돌듯 생활한 나는 바깥 약속이, 바깥 사람이 그리웠던 것이다. 늘 꽉한 일주일을 보내왔고, 빈틈이라도 생기면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뭐라도 해야 성에 차는 사람이었으니 지난 한주가 우울함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잠시의 상념에 빠져들 새도 없이 첫째는 얼마 전에 로켓배송으로 산 우봉고 보드게임을 가져온다. 힘없이 허송을 응시하던 내 눈빛을 알아챘는 지 “엄마 보석 많이 줄게 나랑 얼른 하자”라며 나를 부추겼다. 우봉고게임방법을 잘 모르는 내게 첫째는 차근차근 게임방법을 설명해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처음으로 엄마가 모르는 것을 자신이 설명해준다는 생각에 어깨가 한층 솟아 있었다.

 정해진 칸에 주사위를 던져 나온 퍼즐 조각을 누가 먼저 맞추는 지 겨루는 게임인데 맞추다보니 은근 재미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게임에 빠져들었다. 학교에서 가끔 아이들이 보드게임을 하는 것을 곁눈질로만 보고 저들이 왜저리 환호하는 지 몰랐는데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퍼즐 조각이 남은 빈칸에 딱 들어맞는 순간이란? 설명할 수 없는 쾌감이다.


 그렇게 아이와 웃다가 탄식하다가 하며 보내니 한 시간이 훌쩍 다갔다. 보석 수는 내것이 훨씬 많았는데 평소라면 자기가 진 것에 대해 씩씩대며 판을 엎으려고 했을 첫째가 이날만은 웃으며 엄마가 이겼구나, 엄마 축하해. 라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자신이 설명해준 개임에다, 엄마가 푹 빠져들어 해서인지 그 즐거움이 게임의 승패보다 더 값지다고 느껴서 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아이가 게임하자고 할 때 난 늘 집중하지 못하고 엄마 이것만 하고 책 좀 읽을게, 남은 설거지 좀 할게, 컴퓨터로 학교 일좀 할게 라며 그 순간을 회피해왔던 것 같다.


 늘 나는 시간에 빈칸이 생기면 보다 다른 할일로 꽉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으므로 하릴없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덧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서 아이와 집중해서 놀고, 집이다 보니 아이의 표정 하나하나 지켜보고,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는 이 순간. 나중에 돌아보면 더없이 소중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온갖 외부자극이 많은 바깥보다 어쩌면 서로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집이 어쩌면 아이와 내밀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알찬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말마다 두아이를 끌고 밖을 다니며 아이의 표정을 보고 웃어주기보단 조심히 다녀, 조용히 해, 왜그러는 거야. 라고 호통치는 일들이 더 많았으니 말이다. 날이 추워져서, 아파서 못나가는 상황을 탓하지 말고 집에서 알찬 시간을 보내는 연습을 조금씩 해나가야 겠다. 그만큼 아이의

마음 속엔 따뜻한 집안의 공기와 어우러진 엄마와의

추억이 아로새겨질 것이므로..


 집에서 머무르며 푹 자고 어제보단 가뿐히 아침을 맞이한다. 거실에 흩어진 여남은 우봉고 조각이 내 눈에

들어온다. 부스스한 눈으로 일어난 아들에게

 “엄마 오늘은 설명안듣고 잘 할 수 있단다, 오늘은 네 칸 도저언”

  신나서 모래시계를 세우던 아들이

“엄마, 오늘은 어디 안나가? 어젠 집에서 놀았으니 나가자“

역시 역마살있는 내 피는 어디 안가나보다. 오늘은 슬 나가볼까?

작가의 이전글 내가 할 잔소리를 아이들 스스로 하게 했더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