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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Dec 10. 2023

오늘 하루 당신은 기분좋은 감정을 몇 번이나 느꼈나요?

하루를 보람차게 살았다는 건 성취건수가 아닌 웃음의 횟수

어느덧 12월, 올 한 해를 돌아보면 난 참 바쁘게 살아왔다. 복직 후 한 시도 나는 나 자신을 여유롭게 내버려둔 적이 없었으니까.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학교에 출근한 8시 반부터 점심시간, 아이들이 하교하는 두시까지 쉬는 시간에도 교실을 지키며 아이들과 부대끼는 생활을 해왔고, 퇴근 후 두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며 (물론 남편도 함께 하는 일이지만) 정신은 늘 바깥에 둔 채로 헐레벌떡 숨차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나마 쉼이라는 바람이 드는 여름방학에도 난, 학교에서 개최하는 과학캠프에 참가해 아이들을 지도했고, 밀린 지인과의 약속들, 아이들과의 휴가 등 나만의 시간이라곤 1도 없는 나날로 달력을 빼곡히 채웠다.

 2학기를 시작해서는 격주 주말마다 과학영재 강사로, 방과 후에는 일주일에 두어번 수학 진도를 못따라가는 반 아이들을 지도하며 바쁜 삶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 틈틈이 퇴근 후 지인들과 만나 카페를 가고, 아이들 하원 후에는 아이들 친구 엄마들과 키즈카페 모임도 다니는 등 흡사 연예인 스케쥴을 소화하며 버거운 하루들을 보내왔다.

 그렇게 바쁘게 살다보니 잠시라도 쉼이 주어지는 날엔 안절부절 못했다. 책이라도 한 쪽 읽어야 했고, 스쿼트라도 50개는 해야했고 애들 반찬을 두어개 만들어놔야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야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보람차게 쓴 것 같고 하루에 내가 해낸 것 들을 돌아보는 성취감 샤워 후 짜릿함이라는 걸 느끼며 기분좋게 잠자리에 들곤 했으니까.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느꼈고 그렇게 보내는 하루하루 삶이 나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했다. 안간힘을 쓰며 무리하게 10개월을 버틴 탓일까? 12월초부터 나는 심한 감기몸살과 함께 무기력증이라는 쓰나미가 내 온몸을 덮쳐왔다. 학교에서도 텅빈 눈으로 아이들을 맞이하고 늘 의욕적으로 해오던 수업도 겨우겨우 마치기 일쑤였다. 지나가던 동료 선생님이 해쓱한 내 얼굴을 보곤 “너무 피곤해보여요, 얼른 가서 쉬어야겠다”라고 걱정어린 눈빛을 보내시기도 했을 정도니까. 그래도 난 꾸역꾸역 학교에서 수업준비에, 해야 할 일을 마쳐야 직성이 풀렸고 그날도 꽉 채운 하루를 보내고 퇴근했다.

 다음날, 아침 6시반에 일어나 늘 하던 스쿼트를 하려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눈앞이 깜깜해져왔다. 머리가 멍하고 눈앞이 뿌얬다. 평소와 다른 컨디션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다른 것보다 늘 내 루틴인 스쿼트를 못한다는 생각에 속이 상했다. 하지만 속상함 마음에 무리하게 강했했다간 출근마저 못할 것 같아 결국 스쿼트를 건너띄고 30분을 더잤다. 그래도 몸은 개운치 않았다. 겨우 출근 준비를 하고 학교 교실로 힘없이 몸을 밀어넣었다. 다행히 2교시 영어 전담시간, 평소라면 그 시간도 다음 수업준비로 정신없이 보냈을테지만 나는 올해 처음으로 보건실을 갔다. 침상에 누워 40분간을 아무생각없이 눈을 붙였다. 다음 수업준비, 못다한 생기부 작업을 눈을 질끈 감고 냅다 던져버리고선.

 그렇게 쉬고 올라가니 한결 가뿐했다. 하지만 온몸을 휘감은 피로는 쉬이 떠나지 않아 그날은 그냥 일찍 조퇴하고 집으로 가서 침대에 몸을 뉘였다. 저녁에 잡은 지인들과의 약속도 다음으로 미루고 아이들이 하원하기 전까지 몸을 젖은 양말처럼 축 늘어뜨리고 잤다. 토요일인 다음날 스쿼트를 건너띄고 아침 9시까지 침대에 늘어졌다.

 내 성미에 이렇게까지 쉬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쉬었더니 방전된 생체배터리가 20프로 정도는 올라왔다.

 아이들 먹을 카레를 만들 에너지가 생겨나 뚝딱 만들어 해먹이고, 남편에게 세종시의 테라로사 카페를 가자고 제안했다. 평소 너무 가고 싶었지만 일하느라, 밀린 집안일하느라 미뤄뒀던 그곳. 가는 길엔 늘상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놓고 남편의 군대이야기에 실없이 웃기도 하고,차에서 내려서 첫째를 살짝 업어주며 눈을 찡긋하가도 했다.

 카페에 도착하니 평소 눈에도 들어오지 않던 풍경들이 하나둘 시야에 들어온다.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형형색색의 트리들, 은은히 울러퍼져나오는 캐롤들. 삼삼오오 모여앉아 그들만의 이야기에 푹 빠져있는 사람들의 모습들. 그윽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카페 내부인테리어들. 그 모든게 눈에 들어오며 팍팍한 내 머릿속에 기분좋은 감정들이 폭죽 터지듯 하나씩 터져나온다.

 초코바를 먹으며 입가에 검은 자욱을 남기며 나를 향해 웃는 7살 첫째의 모습, 단우좋아 선생님 좋아 어린이집 키즈노트를 혼자 클릭해서 보며 작은 입으로 조잘거리는 3살 둘째의 모습도 하나둘 눈에 들어오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빙긋이 미소가 지어진다.

 “이거다” 마음 속에서 불현듯 깨달음의 말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내가 잊고 있었던 것.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해냈느냐가 아닌, 내가 하루에 기분좋은 감정을 얼마나 느꼈느냐 였다. 성취중독자인 나는 늘 하루를 수치로 매겨왔다. 바쁘게 살아야, 내가 해낸 것이 많아야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는 거라 생각했으니까. 스쿼트를 200개 했느냐, 만족스러운 수업을 몇개나 했느냐, 책을 몇쪽 읽었느냐, 아이들 반찬 두개는 만들었느냐 가 아닌  내가 하루에 얼마나 웃었느냐가 인생의 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 긴 레이스다 보니 중간중간 쉼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쉼이 라는 터닝포인트를 주어야 남은 레이스를 숨차지 않게 달려갈 수 있다. 무리하게 10개월을 보낸 후 내가 깨달은 작은 인생의 교훈이다. 초반 10키로를 무리하게 달리다보면 남은 32키로는 힘없이 질질 끌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결승선에 도달하게 될테니까.

 내게 주어진 주말, 늘어지게 자고 아이들과 남편과 오랜만에 찜질방을 가야겠다. 구운계란을 까먹고 양머리 할생각에 벌써부터 머릿속에 기분좋은 감정의 폭죽들이 터진다. 이 감정들이 오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이 감정들로 마음속 배터리를 넉넉히 충전해놔야겠다. 생기부 입력으로 바쁜 내일을 버티기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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