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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Dec 24. 2023

크리스마스는, 어린아이들처럼...

뿌까인형을 사고 햄버거를 먹으며 행복해하던 시절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며

 매해 다가오는 설레는 크리스마스. 문제는 그 설렘의 강도가 나이가 들 수록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내 주변 지인들도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면서 모든 것에 감흥이 떨어진 다고들 하는데, 다들 하나같이 입모아 말하는 것이 바로 크리스마스에 대한 감흥이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어슴푸레한 내 기억 속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은 다섯살 쯤이었던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냉장고 위에 뿅하니 올려진 흰색 케익상자가 내 눈길을 끌었는데 엄마는 밤새 산타할아버지가 놓고 간 것이라 했다. 그 당시 케익이라 하면 생일에나 먹을 법한 귀한 음식이라 흰 상자를 보자마자 좁은 집이 울릴 만큼 방방 뛰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유치원생을 기점으로 산타의 참모습을 알게 되는데 나도 그 정상적인 수순을 밟았다. 7살 유치원 크리스마스 행사날. 산타할아버지가 좁은 창고 안에서 수염을 뜯고 물을 마시는 모습을 열린 문틈새로 우연히 접한 뒤 나는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더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


 산타가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사실을 안 이후로도 매해 돌아오는 크리스마스는 늘 내게 설렘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선물같은 날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엔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카드와 작은 인형, 곱창머리끈,소소한 문구등을 주고 받으며 과자 한봉지를 사서 과자파티를 열며 나름의 크리스마스 의식을 치뤘다.


 중고교 시절의 크리스마스날은 친구들과 대구 동성로 시내 가는 날로 공식이 박혀있었다. 시골에 살아 변변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기에, 우린 그날만 되면 부모님께 일주일 전부터 허락을 받고 청도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표를 끊고 설렘도 함께 싣고 기차에 올랐던 기억이 있다. 대구역사로 나와 쭉 걷다보면 맞닥들이게 되는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크리스마스 풍경


 캐롤에 나오는 가사처럼 오색찬란한 거리거리의 성탄빛, 가게 앞마다 장식된 대형 트리, 그 당시 거리를 포근히 감싸던 크리스마스 캐롤 등.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위해 나온 인파들에 휩쓸려 거리를 죽 걷다보면 마치 동화 속 풍경을 거니는 듯한 착란이 일기도 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백화점 맞은 편에 위치한 ,빨간 코 인형이 반기는 햄버거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햄버거 세트를 사먹고, 중앙로 지하상가 교보문고에서 그 당시 유행하던 뿌까인형이나 엽기토끼 캐릭터가 들어간 다이어리 세트를 사서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세상을 다 가진 것 처럼 행복했었다.


 성인이 되고 맞이 한 첫 크리스마스는 난생 처음 남자친구라는 존재와 함께 한 특별한 날이었다. 영화관에서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나온 옴니버스식 영화를 손 꼭붙들고 보며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미리 준비한 머플러와 장갑 같은 선물을 주고 받으며 수줍게 웃던 기억이 아스라이남아있다.


 결혼을 한 뒤 부턴 크리스마스에 뭘하며 보냈는지 기억도 흐릿할 만큼 감흥이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가 왔다는 건 출근길 라디오에서 듣는 캐롤송으로 겨우 체감할 수 있을 정도까지.


 그러다 다시 크리스마스에 대한 감흥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한 기점은 바로 아이 둘을 낳고 부터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일주일 전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선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라는 공지가 오고 그날만은 빨간 옷을 입고 작은 소품을 준비해달라고 한다. 아이들의 선물을 고르고 빨간 색 뽀로로 포장지로 정성껏 포장을 하며, 옷가게에 들러 빨간색 니트와 원피스를 사며, 사그러들었던 크리스마스에 대한 감흥이 서서히 꽃피어오르며 내 마음도 몽글몽글해져간다.


 어제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아름 받아들고 하원한 아이들 덕분에 불현듯 어린시절 느꼈던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이 내 온몸에 퍼져나갔다. 맞아 내게 크리스마스는 이런 날이었지.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고, 이 날만은 모든게 용서될 것 같고, 누군가에게 한없이 관대해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날.


 어린시절의 나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구름위를 떠다니는 것 처럼 보냈고, 거리에 울러퍼지는 캐롤을 흥얼거리며 크리스마스만이 내풍기는 포근한 분위기에 흠뻑 취했던 행복한 아이였다. 어떤 기대도 기적도 바라지 않고 그저 그날에 집중해서 보내던 천진난만한 소녀.


 아무리 감흥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크리스마스 날 만큼은 모두에게 특별한 날이 었으면 한다. 종교를 떠나 이 날만큼은 선물로 여기며  어린 시절 처럼 빨간색 옷도 꺼내입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시내거리도 걸어보고, 우연히 들어간 문구점에서 나 자신에게 작은 문구 선물같은 거도 해보고 크리스마스 케익도 사서 조촐히 파티를 하며 내게 작은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

 점점 크리스마스 감흥이 떨어지는 어른들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선물같은 날. 크리스마스는 특별하지 않다며 그저 그런날로 치부한 채 불행한 감정에 젖어드는 대신 말이다.


 어쩌면 어른이 될 수록 크리스마스에 대한 감흥이 떨어지는 이유는, 특별한 날이라 특별한 일이 일어나야할 것 같은 큰 기대를 해서이지 않을까? 복권에 당첨이 된다던가 , 내가 산 집 값이 폭등한다 던가, 명품선물을 받는 다던가 그런 큰 기대말이다. 그에 반해 어린아이들이 크리스마스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어른과 달리 큰 기대없이 그저 내가 원하는 작은 선물, 친구들이 준 과자꾸러미 하나에도 행복해하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이 팍팍하고 살기가 힘들어질 수록 아이들처럼 크리스마스에 대한 감흥을 키워야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복권당첨이 되고 비싼 선물을 받고 고급레스토랑에서 밥먹는 날이 아닌 크리스마스라는 날 자체에 푹 빠져보는 것. 일부러라도 포근한 크리스마스 캐롤을 찾아 들으며 노곤한 분위기에 취하고 작은 조각케익이라도 사서 촛불을 불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다보면 잊고 있던 어린시절 크리스마스 기억이 하나둘 피어오르며 행복감이 온몸을 타고 돌게 될테니까.


 크리스마스 이브날, 나는 아들이 산타할아버지께 받고 싶다는 미니카메라를 포장하고, 빨간색 니트를 입고 저녁에 먹을 작은 케익을 사오며 어떤 소소한 행복들이 나를 기분좋게 할까 생각하며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맞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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