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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r 25. 2024

같은 학교라서,공개수업을 못가

첫 1학년 공개수업, 엄마가 오지 못한 반아이를 위로하며 아들을 느껴본다


 초등학교 입학 3주차, 이제 하루에 전화가 안오는 날도 있을 정도로 아이는 자신만의 지도위에서서 몸에 익힌 길을 따라가며 순탄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 공문함 문서에 3월 3째주 공개수업 일정이 올라와있었다.


 “3월 20일 3교시 전학년 동시공개“


컴퓨터에 화면에 뜬 그 문구를 마주하자마자 입에선 나도 모르게 땅이꺼져라 한숨이 새어나온다. 그말인 즉슨 나도 그시간에 공개수업 중이라 아이 입학 후 첫 공개수업을 보러가지 못한다는 사실.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내겐 비극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내 직무를 유기할 수 없으니 다시 어머니께 부탁전화를 드린다. 어머니는 손자의 첫 수업을 볼 수 있단 사실에 반색을 하신다.

 공개수업날 아침, 나는 아들에게 00이 수업열심히 들어. 엄마도 그 시간에 누나 형들 수업 열심히 할게. 우리 같이 화이팅!

한마디를 던지며 아들의 머리를 헝클어뜨린다. 교실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 교실로 터벅터벅 올라갔다.


 2교시를 마치고 쉬는 시간이 되자, 평소와 달리 교실 밖이 분주하다. 공개수업 참관을 하러 온 부모님들이 하나둘씩 교실 안으로 들어와 교실을 둥그렇게 에워싼다. 묘하게 교실 분위기가 바뀐 탓인지 아까 2교시 국어 수업때만해도 활기를 띠던 아이들 표정이 서서히 굳어져간다. 잔뜩 긴장한 아이들의 표정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는 부모님들의 표정을 동시에 보는 나는 마음 속에 묘한 감정이 일었다.


 그날의 수업은 내가 듣고 싶은 말에 관한 도덕수업. 아이가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에 대한 내용의 그림책을 보고 실제로 부모님께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내용. 아이들에게 같은 경험이 있냐고 묻자. 정적 속에서 우리 반 회장이 조용히 손을 든다.


 “넌 4학년이 되어서 책가방도 마구 던져놓니”라고 말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바로 옆에 서계시던 회장의 부모님의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힌다.


 “00이는 그 상황에서 어떤 말이 듣고 싶었어?“

내 질문에 눈을 반짝이며


 “오늘 좀 피곤했구나. 그래도 책가방은 제자리에 놓자”

“이말이 듣고 싶었어요.“


아이의 말이 떨어지자 옆에 서계시던 아이의 부모님의 얼굴에 멋쩍은 웃음이 번지고 주변 부모님들도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지으시며 분위기가 일순 화기애애해졌다.


 나는 수업하는 순간순간 뒤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부모님들에게 내 모습을 겹쳐보았다. 내가 뒤에 서서 1학년 아이의 수업을 보고 있자면 딱 저런 모습일거야 하며. 부모님들의 마음에 내 마음을 겹쳐보며 내가 부모라면 어떤 수업을 원할까? 라는 생각으로 40분을 알차게 보내었다.


 수업 종이 울린 뒤 나는 다시 발에 날개를 달고 2층 아이의 교실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복도에서 선생님께 인사 중인 어머님을 만났다. 어머님 옆에 조심스레 서있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한 눈망울을 가진 동료교사이자 아이의 담임선생님께선 그런 내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씀하신다.


 "저도 아이 공개수업을 6년간 본적이 없어요. 그래도 아이는 쑥쑥 잘 크더라구요. 생각보다 아이들은 부모의 우려보다 잘해내니 너무 걱정마세요. 00이 잘 해내고 있어요. 대신 집에 가서 잘하고 있다. 엄마는 늘 00생각으로 열심히 수업한다며 토닥여주시는 거 잊지 마셔요"


 선생님의 온기품은 그 말에 나는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듯 따스한 미소로 바라보시던 선생님. 갑자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으시며  "어머니 학부모 총회하러 강당가셔야죠" 라는 말을 내던지시며 붉어진 눈시울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으셨다.


 나는 무리지어 강당으로 학부모 총회를 가는 부모님들을 뒤로 하고 4층 내 교실로 다시 돌아왔다. 교실에 오니 유독 슬퍼보이는 표정의 우리반 부회장이자 첫째 아이와 같은 태권도 학원을 다니는 누나. 부모님이 바빠서 못오신 모양이었다. 나는 꼭 1학년 00이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여 내 옆자리로 불러,


“00아, 선생님도 아들 공개수업을 못갔단다. 그래도 씩씩하게 00이 처럼 수업 잘들었대. 오늘 발표 정말 멋졌어"

그 한마디에 아까의 나처럼 눈시울이 붉어지는 부회장 아이. 그 아이에게 내 아이를 겹쳐보며 아련한 눈빛을 던진다.


 퇴근 후,태권도 학원 하원버스가 내게 다가온다. 나는 여느때처럼 아이를 싱긋 웃으며 맞이한다. 그러고선 말한다.


 '  00아 오늘 엄마 수업 열심히 잘 마쳤어. 엄마없이도 열심히 수업 들었을 00이를 떠올리며 수업해서 오늘 정말 힘이 났어. 00이도 그런 엄마 떠올리며 수업 잘들었지? 장하다 우리아들"


그런 말을 하며 아이를 폭 안아주었는데 작은 가슴이 크게 부풀어오르는 것이 느껴져 내 마음이 뭉근해졌다.더 길게 말하지 않아도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엄마 나 잘했으니까 마트가요"


나는 태권도 가방을 덥썩 받아들고 작은 손을 붙들고 마트로 향하며 미완성으로 끝낼뻔 한 그날의 학부모 공개수업을 온전히 마무리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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