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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r 27. 2024

이젠 오픈하기로 했다. 너와 나의 관계

학군지에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벌어지는 일들

 교사들을 지칭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바로 돈못버는 연예인. 직업 특성상 그만큼 일거수일투족을 알게 모르게 감시당하게 되기 때문. 거기다 학군지에 살게 되면 그 별명을 피부로 체감하는 날들이 숱하게 많아진다.

 아이가 같은 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 나는 아침등교길을 매일 아이와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다. 도보로 5분 남짓 거리, 내가 이사온 아파트는 초품아로 불리는 곳이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곳에 산다. 그래서 내가 가는 등교길엔 무수히 많은 학생들과 마주치게 된다.


 혹여나 등교길에 같은 반 아이를 만나게 될까 3주간 이른 시간에 출발을 했다. 코로나때보다 더 철저히 쓰는 마스크는 필수다 . 이른 시간에 나와 학교에 도착하면 아이의 1학년 교실은 늘 불이 꺼져 있다.


 빈교실에서 안전사고가 날까 두려운 담임선생님꼐선 하이클래스(교사와 학부모 소통창구 알림앱)알림장으로 8시 15분까지 등교하라고 하셨지만,학기 초이기도 했고 선생님께 사정을 말하고 조금 이른 등교를 한다.    

8시 5분 도착. 옆반 선생님께 비밀번호를 물어 아이에게 전달해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일주일 그동안 훈련했더니 곧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보다 5분 늦게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 19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선다. 나는 살짝 긴장하기 시작한다. 누가 들어올까? 등교시간인데 아는 아이면 어쩌지? 속에서 불안감이 엄습한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아이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다. 우려가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다.


“어 선생님, 안녕하세요"


 눈이 휘둥그레진 남자아이가 나를 보고 인사한다. 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우리반 회장 남자아이였다. 나는 순간 동공지진이 왔지만 이내 평정심을 유지하고. "어 oo이구나, 여기 사니? 선생님 올 2월에 여기로 이사왔어"

 아이는 놀란 토끼눈을 하고서 나를 보더니 옆의 아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과묵한 스타일의 아이라 더는 묻진 않았지만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다시 정면을 응시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나는 한 손으로는 아들의 손을 잡고 작년 우리반회장인 아이와 나란히 등교길을 걷는다.


 나는 무슨 일급비밀이라도 되는 양 그 아이에게 "선생님 여기 사는 것 작년 반아이들에겐 비밀!" 검지를 입에 갖다대고 간곡히 부탁을 하고 교문 앞에서 헤어진다.

  작년 아이들은 나를 결혼도 안한 아가씨로 알고 있다. 시시콜콜 내 얘기를 하지 않아서 어쩌다보니 그런 오해를 산 것. 아마 그 회장아이는 말은 안했지만 속으론 깜짝 놀랐을 것이다.


 며칠전, 5교시 수업을 마치고 한숨 돌리려는 찰나, 갑자기 아들에게 전화가 온다.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엄마, 나 교실에 태권도 가방 두고 왔어"

그말을 듣는 순간, 분명 교실인데 머리 위에서 번개가 치는 듯한 착란이 일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나이스에서 외출 30분을 결재올린다. 그리고 2층 1학년 교실로 한달음에 달려간다. 책상위에 덩그러니 놓인 태극기 그림이 그려진 아이의 가방. 담임 선생님께 구하고 들어가 가방을 어깨에 둘러 매고 긴 머리칼을 세차게 휘날리며 학교 근처 5분 거리인 태권도장에 도착한다.

 

태권도 가방을 아이에게 전달하는데 갑자기 익숙한 낯빛의 여자아이가 "선생님"하고 나를 부른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시선을 옮기니 , 의외의 곳에서 만나서 놀랍다는 듯 놀란토끼눈을 한 현 우리반 여부회장이 서있었다. 나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고, 아이가 엄마 엄마 하는 소리에 그 여자아이는 나와 아들을 번갈아 쳐다본다.

 

나는 체념하고 그 아이에게 또 일급비밀을 전달한다. "00아, 오늘 선생님 여기서 본 것 우리 반 아이들에게 비밀"  아이는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고선 도장으로 뛰어들어간다.

 

다시 학교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길, 6교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5학년 아이들을 마주한다. 나는 마스크를 코까지 올려쓰고 먼 산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맞은 편에서 작년에 우리 반여자아이로 추정되는 아이가 나를 향해 반갑게 다가온다. 그러더니 내게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선생님 ,00아파트 사세요? 지난 번에 **이가 아침에 학교가는 길에 00동에서 어떤 남자아이랑 나오는 거 봤대요"


 이쯤되면 이제 일급비밀은 효력이 없음을 깨닫는다. 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그리고 마스크도 벗어던지고 말한다.


 "맞아, 선생님 올 2월에 여기로 이사왔어. 1학년에 아들이 있는데 아침마다 같이 학교 다닌단다. 같은 아파트 살아서 반가워 종종 보자"


 아이는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를 보더니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친구들 무리로 유유히 섞여들어갔다.  이제 아이들의 놀란 토끼눈, 그리고 가슴 철렁하는 경험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이젠 그들의 동네주민이자 선생님이자 학부모로 투명하게 살아가고자 결심했다.


 다음날 반아이들이랑 대화를 하다 가족얘기가 나왔다. 선생님 애기 있냐는 질문에 나는 투명하게 나를 내보이기로 한다.


 "선생님 아들 여기 초등학교 1학년에 다녀. 얘기 안하려다가 학교에서 마주치면 아들한테 "엄마 아니야 저리가"  이렇게 말하면 아들이 상처 받을 까봐 얘기하는 거야. 너희들도 엄마가 그러면 상처받겠지?"


  나의 실감나는 꽁트에 더해진 그말에 아이들이 웃으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그리고 선생님도 한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그들과 더 없이 가까워지게 만들었는지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미묘하게 바뀐다.


 아까 만난 작년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동네주민인 것을 커밍아웃하고 나니 내게 보내는 눈빛이 더 없이 친밀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드러내보이면 불편한 점도 많겠지만 작년 아이들에겐 동네주민, 올해 아이들에겐 선생님이자 엄마로 다가가면 좀 더 그들에게 따뜻한 존재로 내비춰지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진실됨으로 좀 더 아이들과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고 나름의 위안을 삼는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만고의 진리는 통할 것인가? 나는 더이상 동네주민인 것과 1학년 학부모인 것을 숨기지 않고 투명하게 드러내 보이기로 했다. 갑자기 움츠러든 어깨가 살짝 솟는 기분이다.


  “아들아 이제 눈치보지 말고 엄마라고 부르고 싶으면 부르렴. 덩달아 너도 000선생님 아들이라는 호칭이 새로 부여되었으니 복도에서 뛰어다니진 말고.

엄마도 이제 쓰레빠끌고 한 손에 아이스크림 물고 동네에서 어슬렁 돌아다니는 것도 조심해야 할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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