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Apr 03. 2024

아이 반 담임선생님은 마치 남자친구의 엄마처럼 불편하다

학교에서 동료교사가 아닌 학부모로 담임선생님을 마주하면 벌어지는 일

 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우려했던 점이 바로 동료교사가 내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된다는 것이다. 우선 많은 분들이 물어보시는게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한데, 초등학교는 상피제(같은 학교에 자녀를 데리고 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 숙명여고 사건 이후 성적조작 문제로 생겨남)가 없어서 같은 학교에 데리고 다닐 수 있다. 평가가 중요시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나, 수행평가의 문제가 있어 평가관련 서약서는 받고 시작한다.


 올해 아이가 2학년이 된 내 대학동기는 같은 학교에서 친한 선생님이 아이의 담임이 되었다며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이유인즉슨 한순간에 아이 문제로 서먹서먹하게 변해버릴까 두렵다고 했다. 그전이라면 좋은 거 아니야? 라고 반문했을 텐데, 직접 경험해보니 뼛속 깊이 그 말을 이해하게 된다.


 학교에서 아이의 담임선생님이라는 존재는 길게는 6시간동안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는 사람이라 아이의 모든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나 가뜩이나 조심스러운 존재인데, 그 존재가 친한 지인이거나 동교교사일 경우 조심스러움이 배가 된다.


 다행히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올해 새로 전근해오신 분이라 친분은 없어서 관계에 대한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동료교사라는 타이틀이 뭔가 모르게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아마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일터.  아이 담임선생님에겐 더욱 조심스러운 학부모의 타이틀을 쓴 동료교사가 아닌가?


 학교급이 워낙 큰 터라 자주 만날 기회는 없지만 어쩌다 복도를 지나가다, 전직원 회의시간에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괜히 머쓱해 눈을 피하기도 하고, 어쩐지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내 아이가 근면성실에다 척척 잘해내는 그런 훌륭한 아이라면 모르겠지만, 미숙하고, 잘 잃어버리고 장난도 곧잘치며 정리정돈이 잘 안되는 아이일 경우 고개는 더욱 땅에 떨어진달까?


 자녀를 가진 선생님도 그렇지만, 선생님의 자녀라는 타이틀을 가진 아이는 좀 더 잘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도 있다. 물론 그런 분들은 없지만 뭔가 잘못하거나, 장난을 심하게 치면 속으로 "쟤는 선생님 아들인데 저렇게 행동하나? 집에서 어떻게 가르치면 그럴까?" 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 마음이 더 쪼그라든다. 그래서 더 아이에게 엄격하게 대하게 되는 면이 없지 않다.


 나도 늘 아이와 등교할 때면 아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당부한다.


  "00아 엄마가 학교에서 선생님이니까 00이는 복도나 계단에서 뛰거나 소리지르는 행동하면 더 안되는거야. 늘 조심해야해" 라고 말하곤 한다.


가끔 학교행사로 인해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만날 떄면 마치 남자친구의 어머니를 마주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얼마전 전직원 신입교사 행사에서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맞은 편에 서게 된 일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의 컵에 음료수를 따르는  내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어색하게 짠을 하고나서 딱히 대화는 나누지 않고 서로의 옆에선 동료교사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순식간에 우리를 둘러싼 공기는 묘한 긴장감이 맴돈다. 대화를 하자니 아이의 학교생활인데, 속시원히 물어보지도 못한다. 괜히 난감한 상황이 생길까봐서. 내가 동료교사라 할말을 더 못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연유로 학부모 상담기간에 전화도 하지 않았다. 한 반에 26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의 상담을 진행하는데 그걸 너무 잘 아는 나까지 보태면 괜히 성가실까봐서. 무엇보다 동료교사가 학부모라 더 불편해할 선생님의 심경이 더 이해가 가서 꾹 눌러참는다. 진짜 문제가 생기거나 아이가 필요로 하면 상담을 요청해야지 하며 궁금한 속을 겨우 달랬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의 마음의 거리가 좁혀진 계기가 생겼다. 아이의 첫 공개수업날, 종이 울리고 헐레벌떡 뛰어간 아이의 반. 수업이 끝나고 어머님과 대화 중인 담임선생님을 보았다. 머리칼을 흩날리며 정신없이 내려온 나를 보며 담임선생님은 나직이 말씀하신다.


 "저도 6년간 같은 학교 데리고 다니며 공개수업을 한 번도 못봤어요. 처음엔 서운해하더니 잘 토닥여주고 하니 2학년때부턴 그걸 잘 받아들이고 씩씩하게 수업듣더라구요. 오늘 00이도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발표 잘 했어요. 잘했다고 토닥여주세요"


 선생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뜻밖의 말에 나는 금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 마음을 후벼파는 위로의 한마디에 가슴 한 구석이 뭉근해져왔달까 . 그런 날 지긋이 보시더니 학부모 총회가 열리는 강당으로 향하는 학부모들의 무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시며 "어머니 총회 참석하러가셔야죠" 하며 만면에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시는 선생님. 그 말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짓고 눈물을 삭일 수 있었다.


 교실에 돌아와서도 내내 그말이 잊히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마치 서로 둘만의 비밀이라도 나눈 사이인 양 마음의 거리가 좁혀진 느낌이 들었고,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아니라 든든한 육아선배언니처럼 느껴졌다.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건 그 사실만으로도 정말 속이 든든해지니까.


 학부모이자 동료교사이자 육아후배로서 나는 이제 더 이상 불편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내 아이의 부족한 점이 있다면 속 시원히 말해달라고 부탁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부족한 점이 있다면 내 손이 닿는 한 열심히 지도하겠노라고. 아이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내보이면서 고쳐갈려고 노력하면 되니까.

 아이에게도 선생님의 자녀라는 감투을 썼으니 더 잘하라고 하는 대신, 너는 있는 그대로의 너이니까 너 자신을 멋지게 가꾸어 가기 위해 더 노력하자고.

 그리고 나 자신도 한 번에 세 역할을 하려들지 말고, 학교행사에서 마주칠 땐 서로의 교육경험을 나누는 동료교사로, 아이의 문제에 대해 상담할 때는 협조적인 학부모로, 가끔 같은 학교에 다니는 고충을 토로하고 싶을 땐 육아선배로 그렇게 한 번에 한 역할로 담임선생님에게 다가가야겠다고.


 포장된 나 자신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속을 보여주며 소통하는 자세가 가장 진실된 소통임을 알기에.



공지) 8화부터 글은 수요일마다 발행하겠습니다. 제글 읽어주시고 좋아요와 따듯한 댓글 달아주시는 독자님들이 있어 피곤하고 힘들어도 글을 쓰게 됩니다. 모두 소소하지만 행복한 나날들 보내세요 수요일에 뵐게요^^




이전 06화 책가방을 들어주듯,네 마음의 짐도 덜어줄 수 있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