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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pr 10. 2024

어느날, 내 휴대폰으로 손가락 욕이 날아들었다

욕설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면 ....

 여느 때와 같이 5교시 수업을 마친 어느날, 아들에게서 온 문자 하나가 봄기운에 몽롱해져있던 내 정신을 퍼뜩 깨웠다. 정확히 1시 58분에 날아든, 중간 손가락을 내밀고 있는 아이폰의 이모티콘.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그 이모티콘을 멍하니 바라봤다. 찬물 한모금을 마시고 아이에게 물었다.


 "이거 00이가 한 거 아니지?"


초조하게 답을 기다렸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수만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학교에서 근무하다보면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아이들이 무심결에 하는 욕들을 몇 차례 들어본 터라 언젠가는 내 아이도 하겠지 라는 막연한 우려 속에 살아왔는데, 이리도 빨리 그 순간이 찾아오다니. 머릿속이 순간 새하얘졌다.


 냉정을 찾은 후 아이가 그 욕을 어떻게 접했을까 곰곰 머릿 속을 굴려보았다. 영어학원을 오가는 버스 안인가? 태권도 수업을 듣기 전 아이들끼리 모여있는 자유시간일까?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았나? 다양한 생각이 꼬리를 물며 내 머릿속은 더 복잡해져갔다.


그러다 ‘휴대폰을 왜 사주었지. 학원은 내가 직접 픽드랍을 했어야 하나’ 나 자신에 대한 원망에서 부터 시작해 특정치 않은 대상을 향해 공연히 비난을 퍼부어본다.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싶은 마음에 시계만 바라보며 퇴근 시간만 기다렸고, 태권도 학원 버스를 초조히 기다렸다. 씩씩하게 인사하며 내리는 아이에게 문자의 내용을 보여주며 채근하기 시작했다.


 "00아 이거 네가 보낸거야?"


볼이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채근하는 내게 아이는 아무렇지 대답을 한다.


 "응 엄마, 근데 왜?"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당황했고 두근대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재차 묻는다.


 "이거 뜻 혹시 알고 한거야?"

 " 몰라, 내가 보낸 문자 엄마가 안봐서 위에 있는 문자보라고 손가락 표시 눌렀는데”


헤실웃으며 너무도 해맑게 말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00아, 이거는 나쁜 뜻을 가지고 있는 이모티콘이야. 앞으로 절대 써서는 안되는 거야. 손가락 표시하려거든 검지를 들고 있는거 누르면 돼. 이거“


나는 얼른 검지 손가락이 솟은 이모티콘을 문자창에 입력해 보여주었다. 아이는 무슨 영문이냐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손가락표시를 헷갈려 잘못 나간 이모티콘에 다행이다 싶다가도 마음 속엔 뭔가가 걸린 양 찜찜했다. 그러다 갑자기 어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내 아이를 포함해 아이들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까 문득 궁금해져왔다.  이번 사건은 손가락 표시를 헷갈린 해프닝으로 끝났다해도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특히 학원 두개를 오고가는 아이에겐 그런 시간이 꽤 많이 주어질테고, 그에 비례해 아이가  비속어나 부적절한 용어에 노출되는 시간도 길어질거란 생각에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언젠가는 아이도 욕을 분명 접하고 입밖으로 내는 날이 올 것이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다음 날, 전 날 아이의 일이 신경쓰여 반 아이들과 욕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서부턴 아이의 마음이 궁금할 때 마다 반 아이들에게 대신 묻곤 하는데, 그날은 언제 욕설을 처음 접하게 되었냐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했다. 유튜브 영상, 놀이터나 학원 쉬는 시간 언니오빠형들에게 배웠다거나 라는 답변이 나올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놀랍게도 부모님으로 부터 접했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물론 부모님이 욕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아이들도 많았다. 다수가 그런건 아니지만 원인은 멀리서만 있는게 아닌 아이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 부모였다.


 한 아이는 아빠가 운전을 하다 습관적으로 내뱉은 시*이라는 욕을 듣고 머리를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쁜 말인지는 알지만 자기도 모르게 부모님이 쓰니 그 말을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 슬며시 비집고 들어왔단다. 그 아이의 답변이 물꼬를 틀며 줄줄이 소세지 처럼 아이들의 첨언이 이어진다.  


 우리반 얌전이 여자아이는 "엄마가 중학생 오빠 공부 안한다고 야이 *발 *끼야 라고 말해서 너무 놀랐어요"

라고 말했고 한 동안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지각을 자주 하는 맨 앞자리 남자아이는 "아빠가 친구와 통화 중에 욕을 해서 심장이 두근 거렸어요" 라고 말을 한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필터를 거치지 않은 아이들의 적나라한 고백에 나는 당황스런 기색을 애써 감추며 아이들에게 추가 질문을 이어나갔다.


 "부모님이 욕하는 모습을 보거나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나의 말에 평소 발표를 많이 하는 남자아이가 미간을 좁히며 검지손가락을 들어 관자놀이 옆분분으로 가져가 빙글빙글 돌리며 "약간 이상한 사람 같아보여요" 라는 다소 충격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그 외에도 "내가 알던 부모님이 아닌 것 같아요. 어른이 아닌 것 같아보여요. 심장이 두근거리고 충격이예요"

 욕하는 것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욕만큼 부정적인 감정을 시원하게 드러낼 수 있는게 또 있을까? 인간이라면 당연히 화가나면 욕이 솟구쳐 오를 수 있고 부모도 사람이기에. 나도 가끔 극도로 화가 나면 속으로 오만가지 욕을 시전하지만 겉으로 내뱉지만 않을 뿐이니까.


  하지만 아이들 앞이라면 좀 다른 문제가 된다. 아이들은 시각과 청각은 늘 부모를 향해 닿아있으므로 부모의 언어사용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스민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부모님이란 존재는 우주다. 그런 우주가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욕설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내비친다면 그 아래에 사는 아이들도 그 그림자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일례로 나는 말 끝에 헐 이라는 말을 자주 붙이는 데 첫째도 나의 습관을 무의식중에 흡수하고 있었다. 언젠가 대화를 나누다 아이가 헐 이라며 무의식 중에 내뱉은 말에 깜짝 놀라 당황한 기억이 있다. 평소 내 말습관을 아이를 통해 들으니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내 말습관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져 다시 되돌려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학교에서 근무하다보면 아이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자연스레 엿보고 듣게 된다. 특히 아이들이 그들끼리 있을 때 나누는 대화. 주로  쉬는시간, 점심시간 등 선생님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욕을 내뱉는다.


 얼마 전, 아이들이 하교 한 뒤 복도를 지나가다 방과 후 수업을 기다리는 한 무리의 5학년 남자아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복도에서 휴대폰 게임을 신나게 즐기고 있었는데 내가 지나가는 그 찰나 시원하게 들려오는 욕한줄기가 내 귀에 흘러들었다.


 “아이 씨*, 왜이렇게 안되는 거야.“

 작년에 같은 학교에서 다른 반 교사가 다른 반 아이를 혼내다 아동학대로 몰아갈 뻔한 일이 있어 살짝 망설여졌지만,교사로서 그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이를 불러 세워 방금 한 말에 대한 잘못을 깨닫게 하고 주의를 주었다. 다행히 아이는 잘못을 인정하고 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조심스레 자리를 뜬다.


 이틀 전엔, 우리반 아이가 학원에서 시* 욕을 했다고 누군가가 고해바치기도 했다. 평소 얌전한 이미지의 아이라 살짝 충격이 일었지만 한편으로는 요즘 욕을 안하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그런 의문을 품는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시*이라는 욕은 언제 들어도 적응이 안될만큼 가히 충격이라 한동안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다른 아이가 욕하는 것을 들어도 심장이 요동치는데, 내 사랑하는 아이가 욕하는 순간을  직접 목도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까 부모님이 욕했을 때 들었던 감정을 온 몸으로 표현하던 아이들의 모습보다 더 큰 충격으로 얼어붙을 내 모습이 선연히 그려진다.


 교사이지만 학부모인 나조차, 아이의 욕설 문자에 애써 부정부터 하게 된다. 얘가 보낸 것이 아닐거야, 누군가에게 배웠겠지. 유튜브 영상에서 배운 걸거야. 하며 주로 욕을 배운 공을 남에게 전가한다.


 다수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은 모두 부모나 어른들이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들이 아이들에게 흡수되어 은연 중에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어느 책에서 본바에 의하면 ,사람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20년 동안 보통 가정에서 14만 8천번이나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메세지를 샤워하듯 받으며 자란다고 한다. 20년간 욕설 샤워를 받으며 자란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입밖으로 욕을 내뱉게 될 것이고, 습관으로 자리잡게 되면 화남 슬픔 아픔 등 모든 부정적 감정이 욕설 하나로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 지도 모른다.


 언젠가 내 아이도 욕설을 접하게 되고 자연스레 체득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이를 언제까지고 바른말 고운말로 뒤덮인 안락한 온실 속에서만 키우는 게 불가능하다면 현실을 직시하고 아이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다양한 표현을 알려주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른인 나부터 욕설대신 그런 다양한 감정 표현을 아이 앞에서 쓰며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요즘 애들 다 욕하는데 뭐. 그정도야 뭐. 라고 아이들의 욕을 누구나 다하니까 괜찮다고 치부해버린다면, 이 아이들이 커서 만들 미래에는 다양한 감정표현 대신 욕설 하나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의 거울인 아이가 반사하는 욕설이라는 따가운 빛을 내가 정통으로 맞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욕은 나쁜 거야, 쓰면 안돼 라는 수백마디 보다 내가 앞장서서 욕을 대신해 내 부정적인 감정을 다양한 단어로 표현할 방법을 알려주는 것. 화나. 서러워. 억울해.우울해. 성가셔. 질투나. 분해 . 미워 등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다양한 이름표를 붙여주며 나부터 연습해 자연스레 아이에게 스미게 해주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 나도 헐 대신 당황스러워 정도의 표현으로 바꾸어 쓰도록 연습해나가야겠다. 적절하지 못한 언어로 아이가 온몸을 샤워해버리기 전에 말이다. 세상에는 이토록 다양한 말의 빛깔이 존재한다. 그 빛깔을 무시하고 욕설과 험한 말이라는 어두운 색으로만 칠해버린다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생각만 해도 고개가 저어진다.


 그리고 학교어딘가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가만히 스치지 말고 내 아이 바라보듯 바라보며 잘못된 점 이란 건 인식하게 해주어야겠다.

 조금 더 피곤해지겠지만. 미미한 변화라도 변화라는 건 좋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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