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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pr 17. 2024

아들이 잘못해도 화를 참으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음을 읽어준다는 것, 그 어떤 것보다 힘이 나는 행위.

같은 학교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부터 부쩍 우리반 아이들에게도 아들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선생님이 한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에 눈을 반짝이며 얘기를 듣는다.

월요일 아침, 수업 시작 전 항상 스몰토크를 하며 아이들과 주말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그날의 주제는 살면서 겪은 아찔한 일이었다. 나는 마침 토요일에 있었던 일을 아이들에게 해주었다.

 토요일, 아이를 데리고 두달여만에 아이친구 가족과 고깃집에서 만나기로 한 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끄려는 찰나, 뒷좌석에 타고 있던 아들이 문을 쾅 하고 세게 열어 옆 차량에 세게 닿은 것.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당황한 아들의 얼굴. 그리고 그 충격에 얼굴을 붉히며 내린 중년 부부.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나는 당황했다.

 그 순간 얼굴을 붉히며 아들을 향해

. "엄마가 조심히 내리라고 했지. 그리고 엄마가 내리라고 하기 전에 내리면 안되잖아. 왜 말을 안들어서 이 사단을 만들어 " 미간을 좁히며 아들에게 비난을 하는 동시에 중년 부부에게는 고개 숙여 거듭 사과를 했다. 운전자 아저씨는 산지 얼마 안된 외제차라며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었고 급기야는 내 전화번호를 받아가셨다. 그 자리에서 나는 연거푸 사과만 반복했고, 연락달라는 한마디를 듣고나서야 까만색 지프차는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두 달만에 만난 지인과의 약속을 깨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만큼 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화가 안풀린 나는 뒷좌석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  그러니까 평소 엄마 말 잘 들으라고 했지? 말 안들어서 이 사단이 난거야.앞으로는 절대 문 세게 열지말고, 엄마말 잘 듣고 내려야 해,." 만 반복재생하며 날이 바짝 선 내안의 화를 잠재우려 노력했다.

 이윽고 지인과 지인의 아들이 도착했고, 나는 애써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아까 숨죽이며 앉아있던 아들은 친구를 보자 마자 언제그랬냐는 듯 신나게 둘만의 암호를 외치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반가운 표정 뒤에 숨은 씁쓸한 내 미소를 눈치 챈 지인은 내게 전후사정을 물었고, 자신도 얼마전에 아이가 뒷좌석에서 쾅 문을 열어 벤츠 차량에 150만원을 물은 적 있다며 나의 속상한 마음을 마음 깊이 어루만져주었다. 나는 내 마음을 이해받았다는 사실에 비로소 숨을 고르고 고깃집에서 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지인과 도란도란 수다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수리비가 얼마나 나올까 하는 걱정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지만..

 그날 아이는,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고 지인의 아들과 놀이방에서 두시간, 놀이터에서 물총싸움을 하며 그간 쌓인 학교와 학원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린 듯 했다. 나는 그런 아이의 천진한 미소를 멀찍이 지켜보며 그 태연함에 속에서 천불이 나는 동시에, 저렇게 얼굴만면에 띤 신나는 웃음을 언제봤는지 곰곰 생각해보다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까 지인에게 속상한 마음을 위로 받았는데, 아들의 당황한 마음은 누가 위로해줄 수 있을까?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마음을 이해받으며 속상함을 틀곤 하는데, 또래관계도 잘 형성하지 못하고 표현이 서툰 아이들은 누구에게 마음을 이해받을까?라는 생각이 살짝 마음이 아려왔다.

 아까의 흥분한 마음이 가라앉아 "00이도 아까 많이 놀랐을거야.이렇게 될 줄 어찌 알았을거야. 자신으로 인해 엄마가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하는 모습을 차안에서 지켜보며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거야. 라는 생각이 그제서야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일순 미안함이 솟구쳐 올랐다.

 돌아오는 길, 아까의 사건을 잊은 줄 알았던 아이의 마음 속에도 내내 불안이 심어져 있었나 보다. 내게 "엄마 우리 감옥가?. 돈 100만원 물어내야해? 우리 큰일나는 거야? 라며 마음 속에 눌러둔 의문 부호를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뱉어내기 시작했다.

 반 아이들은 이런 나의 스토리를 숨죽이며 들었고. 이야기 중간에 맨 앞에 앉은 발표를 잘하는 00이가 내게 물었다.

 "선생님, 그래서 선생님 아들 많이 혼내셨어요? 아들 혼나서 울었어요?"

라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나는 말을 이어간다.

 나는 아까 아이를 너무 몰아세운 일이 떠올라 차분한 목소리로

 "우리 감옥안가, 혹시 돈을 물게 되면 엄마가 대신 용돈 아끼고,주말마다 영재 수업을 나가서 형누나들 열심히 가르치고 수리비 벌어올테니 걱정마. 하지만 00아,오늘 경험으로 뼛속깊이 깨달았지? 엄마가 내리라고 할 때까지 차 문을 쾅 열어서는 안된단다, 그리고 늘 엄마 말 새겨듣고 행동하려 노력해야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엄마의 말에 오늘 하루 쪼그라든 마음이 펴졌는지, 아들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아침부터 노래부르던 베00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는 말도 아까 사건 이후로 마음 속으로 꾹 삼켰는지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집에 도착 한 뒤 나는 먼저 아들의 손을 잡아끌며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어진 나의 말에 발표왕 00이가 안도의 한숨을 휴우 내쉰다. 알고보니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어 엄마에게 혼이 많이 났다고 한다. 엄마는 실제로 문콕으로 100만원을 물어내셨다고.. 이틀동안 혼이 나고, 간식도 못먹어서 속상했던 그 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아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대입해봤나보다. 자신도 그럴 줄 몰랐고 너무 당황하고 무서웠는데 엄마는 혼만 내서 속상했다고.

 나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엄마도 선생님처럼 미안한 마음이 있으셨을 텐데 다 표현을 못하신거라고 말했다. 반아이는 우리 아들에게, 역으로 나는 그아이의 엄마의 마음에 오롯이 공감하며 서로를 향한 위로를 건넨다.

 아이의 엄마이자 선생님이 되면서부터 나는 아이들의 엄마의 마음에, 반 아이들은 내 아이의 마음에 주로 공감해주고 대변해준다. 그러면서 나는 공감의 폭을 넓혀가고,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마음을 전달해주며 그때마다 교실의 온도는 1도씩 올라간다.

 그날의 감사일기, 발표왕 00이는 이렇게 써서 왔다.

 감사일기: 아들이 잘못해도 화를 참아주신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나는 엄지척을 하며 선생님의 아들에게 전달해주겠노라 말하며 감사일기 사진을 허락맡고 찍어본다.

같은 마음을 가진 4학년 형아의 위로를 받으며 배시시 웃을 아이를 떠올려보며 기분좋게 퇴근길에 오른다.


그렇게 마음을 이해받은 아이는, 또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는 따듯한 가슴을 지닌 아이로 자라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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